저는 남의 집 아이에 대한 뒷말은 되도록 삼가는 편입니다. 남의 아이의 잘못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흉을 보고 나면 언젠가는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우리 아이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더라고요. 그런 일을 몇 차례나 겪고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들 수 밖에요. 자식 가진 부모는 절대 입찬소리 하는 거 아니라는 옛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이 선생님(오현경)의 딸 해리(진지희)의 버르장머리 없는 언행이 심히 언짢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게 사실이랍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야 다 컸다 해도 혹여 나중에 손자에게서라도 그런 버르장머리가 나타나면 큰일이잖아요. 게다가 어머니께서 규율을 담당하는 체육교사시니 오죽 알아서 잘 하시려니 했죠 뭐.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선생님에겐 해리의 증세가 별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해리의 배변 습관 때문에 걱정을 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버르장머리 때문에 걱정하는 건 도통 본 적이 없으니 말이에요.

정말이지 해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늦둥이 고명딸을 두고 타박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터놓고 얘기해보자고요. 솔직히 해리처럼 밉상인 애는 저는 보다 처음 봅니다. 매끼 빼놓지 않는 반찬투정 하며,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께도 반말은 기본, 말대답까지 해대는 거 하며, 어른 몰라보고 번번이 도끼눈 뜨는 거 하며, 어쩜 그리 두루두루 싹퉁바가지인지 원. 그래도 ‘이건 시트콤이야, 악녀가 워낙 대세인지라 양념으로 넣어둔 캐릭터일 뿐이야’ 하며 저를 세뇌시켰다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번 일은 경우가 다릅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이라 저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네요. 지난번 해리가 신애(서신애)의 따귀를 때린 적이 있는데 그거 모르고 계셨죠?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답니다. 낯선 아이가 자기 방에 들어와 인형 좀 만졌다고 대번에 따귀부터 올려붙이는 아이가 세상천지에 몇이나 될는지요.

신애가 세 살 때 엄마를 잃고 최근에 아버지와도 헤어져 언니(신세경) 하나 의지하고 살아가는 가여운 아이라서 감싸주자는 게 아니에요. 이건 신애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요. 그저 버릇 좀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잖아요. 게다가 먹을 거 가지고 구박을 하질 않나, 더럽다고 무시를 하질 않나, 시대극에서 못돼 먹은 주인집 딸이 식모에게 부릴 법한 행패를 요즘 어린애가 부리고 있으니 도대체 납득이 가야 말이죠. 가장 이상한 건 이 선생님을 비롯한 그 집 어른들이에요. 불벼락이 떨어져도 수백 번 떨어져야 마땅하거늘 꼭 남의 집 아이 타이르듯 ‘그러면 못 써’ 라고 몇 마디하고 마는 게 저로서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 선생님도 교육학을 들으셨을 테니 아이가 그리 된 게 죄다 부모 책임이라는 거, 아마 알고 계실 거예요. 부모 두 사람의 유전자에서 기인했든, 부모를 보고 배웠든, 부모가 잘못 가르쳤든, 어쨌거나 모든 건 다 부모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자식을 그리 키운 탓에 그 집 식구들이 돌아가며 애먹는 거야 그 집 사정이니 어쩌겠어요. 그러나 다른 이에게까지 파편이 튀어서야 되겠느냐고요.

더 이상 해리를 방치해두지 마세요

신애에게는 물론 예전 일하는 아주머니를 향한 방자한 태도로 유추해볼 때 해리가 밖에서 어찌 행동할지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잖아요.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고, 그러다 결국 해리가 기피대상이 되어 가는 걸 그냥 두고 보실 생각이세요? 세상 어느 부모가 해리와 자기 자식을 어울려 놀게 하겠습니까. 혹시라도 그 되바라진 말본새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한 마디라도 배울까 두려워 어떻게든 멀찌감치 떼어놓으려 들걸요. 이 선생님에겐 아버지(이순재)의 연애보다 아들 준혁(윤시윤)의 성적보다 더 중요한 선결과제가 해리임을 왜 깨닫지 못하시는지 답답합니다. 이왕지사 말 꺼낸 김에 좀 더 기분 나쁘실 얘기를 하나 보태자면, 해리의 안하무인이 어머니 이 선생님에게서 온 건 아닐까 의심이 간다는 점도 짚어두고 싶네요. 집안 어른이신 아버지께 버럭질하는 건 다반사이고, 남편(정보석)은 늘 대놓고 무시하고, 무엇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매몰차니 아이가 뭘 보고 배웠겠습니까. 맺고 끊음이 확실한 것도 좋지만 너그러움과 포용력도 아이에게 가르쳐주셔야 옳지요. 그래서 부디 해리가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로 찍히지 않게 어머니께서 마음을 써주시기 바래요. 그러자면 어머니부터 먼저 바뀌셔야 될 텐데, 그게 쉽지 않아 보이니 문제네요. 에휴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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