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슈퍼스타 K>는 자주 <아메리칸 아이돌>과 비교되지만 사실 <인간극장>에 더 가깝다. 켈리 클락슨, 캐리 언더우드, 클레이 에이컨 등 팝스타를 배출해낸 <아메리칸 아이돌> 시리즈 또한 참가자 개인의 가족사나 인생 역정을 등장시키긴 하지만 방점은 결국 그들이 만들어낸 ‘쇼’였다. 오디션보다는 ‘쇼’라는 것에 대한 자각을 잃지 않은 프로그램은 매회 참가자들의 공연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두었다. 반면 시청률 7%를 넘나드는 <슈퍼스타 K>의 인기의 원동력에는 감동코드가 자리 잡고 있다. 가정불화와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개인과 치열한 경쟁보다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는 참가자들의 동료애는 <악동클럽>, <배틀신화>, <쇼바이벌>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던 스타 탄생의 재미에 <인간극장>류의 감동까지 제공한다. 새로운 한국형 오디션 프로그램의 선례가 될 <슈퍼스타 K>를 <10 아시아> 강명석 기자와 김교석 TV평론가가 냉정하게 심사했다. /편집자주

대국민 오디션 <슈퍼스타K>는 매순간이 벼랑 위의 사투다. 이미 70만 명이 돌아갔고 한 달 후면 7명은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눈앞에 다가온 일생 한 번의 기회. 노래에서 행복을 얻는다고들 말하지만 스타가 되기 위한 열병을 몸에 품은 이상 행복은 사치 중의 사치다. 참가자들, 지켜보는 시청자 모두 이 지독한 열병에 사로잡혔다.

냉정한 경쟁의 세계를 뛰어 넘은 그 무언가

아이돌 걸 그룹 팬이 늘었다고 하지만,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안타까울 정도다. 인스턴트 음식처럼 3~4분 간격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화려한 무대를 모두 지켜보는 시청자는 별로 많지 않다. 그런데 <슈퍼스타K>는 케이블 채널임에도 7%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이 열병에 전염된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수많은 출연자들이 펼치는 소박하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이를 받쳐주는 무대 밖의 실제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는 베에스텔부터 교도소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하는 이루리, 가정환경 때문에 삐딱해졌지만 노래에서 희망을 본 김현지, 기억 속에서 소환된 구슬기의 눈물 등은 민망할 정도로 신파 일색이다. 어찌 보면 유치하기도 하지만 이 신파는 그들이 꼭 살아남아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는 장치다. 우리는 그들의 눈물을 보고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냉혹한 현실 안에 서 있는 그들의 상황을 즐긴다. 감정이입과 동시에 드라마를 원하는 것. 심사위원의 센 멘트를 기대하면서 울분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좋은 콩을 고르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기에 이제 목에 좋고 몸에 좋은 두부를 만드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카메라만 없을 뿐 사실 우리 삶 자체가 서바이벌이다. 등수가 나열되는 시험을 치르고,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직장을 가질 수 있다. 좋든 싫든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슈퍼스타K>는 극단의 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는 것의 의미를 확장시키면서 시청자의 마음 속 이상향을 언뜻 보여준다. 이것은 노래와 그 하모니 속에서부터 시작되기에 그 진폭이 훨씬 크다. 그래서 슈퍼위크에서 흘린 이효리의 눈물은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다. ‘심장이 없어’를 열창하는 여인천하 조의 노래에 촉촉해진 눈시울. 생애 처음으로 비장애인들과 한 팀을 이룬 김국환은 승패를 떠나 자신을 받아주고 자신을 위해 발라드 곡을 선택한 팀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기꺼이 팀원들을 위해 화음만 넣었던 정슬기까지 이들의 하모니는 감동을 전해줬다. 심사위원들이 약간의 뜸들이기 끝에 내린 결정은 시청자들이 꿈꾸는 해피엔딩에 가까웠다. ‘스트롱 서바이브’라는 현실 앞에서 공생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한 참가자들이 냉정한 경쟁의 세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슈퍼스타K>만의 독창적인 신파

이것이 진짜 생방송 서바이벌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진정으로 모두가 보고 싶은, 현실적으로라는 단서조차 저 멀리 내던져버리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팀 과제로 ‘무조건’을 선택한 조장은 자신 때문에 조원들이 무더기로 탈락했다며 눈물을 흘리고, 주찬양의 조는 모두가 경쟁자인 상황에서 그에게 리드보컬 자리를 선뜻 내놓는 초현실적인 이타심을 선보인다. ‘이를 악물고 무조건 이기겠다’는 김주왕은 ‘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며 겸손해졌다. 누구 하나 남을 비하하지도 않고 자신이 통과해도 떨어진 동료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승부욕이 남달랐던 박재은도 결과에 승복하며 “나를 잊지 마”라는 말과 함께 떠난다. 최후의 스타가 되리라는 열병을 안고 서바이벌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승리지상주의라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는 대신 주위를 둘러본다. 한 달 만에 성장한 이들은 이효리의 입버릇 같은 말 “어쩔 수 없는 경쟁이니까”를 무색케 한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 시청자들은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군가 탈락 위기이면 무려 200원(지금은 100원으로 인하)이나 빠지는 문자를 스스럼없이 날린다. 적자생존 속에서 공존 가능한 따뜻한 경쟁을 모색하는 참가자들. 어쨌든 결과는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는 <슈퍼스타K>만의 독창적인 신파를 만들어냈다.

누가 마지막 승자가 될 것인가?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마음을 졸이면서 즐기고 있다. 그런데 누가 살아남을 지와 함께 누구도 떨어지지 말기를 함께 바라고 있다. 축하의 박수와 위로의 환호가 함께하는 <슈퍼스타K>의 생방송 무대를 보면 강릉에서 만난 옥인상 할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남긴 후일담이 떠오른다. “야 아주 지금 엄청난 일을 했어. 아주 가슴이 지금 뭉클해지고, 너희가 응원해서 고맙다.”
글 김교석

영화 은 10억 때문에 서로를 죽인다. 하지만 Mnet 는 1억 때문에 운다. 그 눈물은 생존자의 환희의 눈물이 아니다. 는 합격자가 탈락자를 위해 운다. 탈락자들이 대부분 KBS 에 나올 법한 사연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우한 10대 시절로 인해 남장여자처럼 사는 김현지의 처지가 안타깝듯, 부상으로 태권도를 관두고 춤에만 매달리는 김주왕의 인생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는 이 사연 속의 주인공들에게 경쟁 대신 공생을 유도한다. 지역 예선이 끝난 뒤, 합격자들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심사위원들 앞에 선다. 그건 이나 의 참가자들을 경쟁자들끼리 팀을 짜게 하는 로 데려다 놓은 것과 같다.

무한경쟁이 무색한 동료애

하지만 는 처럼 참가자들을 비정하게 내치지 않는다. 탈락자들에게 패자 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심사위원 이효리는 시각장애인 김국환이 포함된 여인천하 팀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며 전원 합격을 통보한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감동을 주면 모두가 살아남는다. 같은 음악 학원 출신인 두 참가자가 듀엣을 이루며 심사위원들에게 “함께 합격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 것은 의 ‘감동’의 원천을 보여준다.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겨야 하지만, 너도 나도 무대에서 사라지긴 너무 안타깝다. 더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경쟁. 는 한 개인의 ‘인간승리’와 패배자에 대한 연민의 불가능할 것 같은 양립을 이뤄낸다. 한 최종 결선 참가자가 합숙용 숙소를 보며 “숙소 화장실이 내 방만 하다”고 말한 것처럼, 참가자들 대부분은 1억과 음반 계약이 절실하다. 하지만 누구도 마음 편하게 동고동락했던 ‘친구’를 떨어뜨릴 수 없다. 울면서 친구를 죽여야 하는 눈물의 배틀로얄. 혹은 아픈 손가락 중 그나마 덜 아픈 손가락 잘라내기.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공동체 사회에서 ‘88만원 세대’를 중심으로 한 무한 경쟁사회로 내몰린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점에서 는 경쟁을 내세우는 해외 리얼리티 쇼에 대한 의미 있는 한국적 변용이자, 리얼리티 쇼의 핵심이 동시대인들에게 ‘리얼’한 몰입을 주는데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와 패배의 감동적인 공존은 최종 결선에서 무너진다. 참가자들은 더 이상 팀을 짤 수 없고, 개인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1인’이 돼야 한다. 하지만, 는 이 진실을 밝히는 것을 유예한다. 출연자들은 합숙을 하며 동료애를 키우고, 생존자는 탈락자를 위해 짐을 싸준다. 물론 지역예선에서 개개인의 눈물겨운 사연은 출연자의 노래를 주목하게 했고, ‘서울 슈퍼위크’에서는 여인천하 팀의 아름다운 팀워크가 노래를 통해 이효리의 눈물로 이어졌다.

감동과 경쟁의 모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나 최종 결선에서 출연자들의 우정과 그들의 노래에는 연결 고리가 없다. 정선국이 살을 빼기 위해 무리한 운동을 하다 병원에 실려갈 때, 는 “동료들이 걱정할까봐” 그 사실을 숨긴 정선국의 배려를 부각한다. 그 자체로는 감동적일 수 있다. 그러나 따뜻한 감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이 몸을 버려가면서 이 대회에 매달리는 정선국의 드라마는 노래에 담기지 못한다. 를 이끌고 온 감동과 노래의 듀엣은 약해지고, 지금까지 다듬어진 캐릭터들의 관성으로 유지되는 인기투표만 남는다. 가 최근 더욱 결과를 두고 논란이 많은 것은 단지 심사위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무대 위의 경쟁만이 남은 최종결선에서, 는 경쟁의 절박함을 피한 채, 일반적인 가요 프로그램처럼 무미건조한 무대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의 후반은 역설적으로 전반보다 더 흥미롭다. 가장 처절한 경쟁과 가장 따뜻한 마무리를 동시에 원하는 모순의 리얼리티 쇼. 하지만 그것이 ‘한국적’인 것을 아는 리얼리티 쇼. 최후의 1인을 발표하는 순간, 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까. 글 강명석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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