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의 어느 날 밤, 자정을 넘은 시각에도 MBC 일산 드림센터 제 5스튜디오가 북적인다. 9월 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지붕 뚫고 하이킥>의 밤샘 촬영 현장, 부조정실에 앉아 모니터를 보는 김병욱 감독의 조근 조근한 목소리가 신의 메아리처럼 세트 안에 울려 퍼지는 ‘성북동 이순재네’ 에 <10 아시아>가 찾아갔다. 아직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헷갈릴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된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그 기나긴 하룻밤을 정리해 보았으니 미리 슬쩍 한번 들여다보시라!

새벽의 스튜디오를 울리는 “아퍼~아퍼 아퍼 아퍼~”라는 경박스런 비명의 주인은 아내 오현경으로부터 장인어른 이순재의 비밀을 불도록 강요받는 ‘매 맞는 남편’ 정보석. 48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조각 같은 얼굴과 늘씬한 체격은 그대로인데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굴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벌하게 손가락 주리를 틀던 오현경이 컷 사인이 떨어지자 미안한지 “진짜 아파요?”라고 살짝 묻자 정보석은 “아냐, 재밌어. 아무래도 마조히스트인 것 같아”라며 캐릭터에 딱 맞는, 젠틀하면서도 당황스런 농담을 던진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동안 SBS <순풍 산부인과> 미달이를 능가할 전설의 꼬맹이 해리를 연기하는 진지희는 변기에 앉아 바지를 살짝 내리는 대신 치마로 가리는 ‘변기투혼’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거 회상 신에 들어갈 해리의 아역 신수연이 엄마 품에 안겨 등장하자 한 스태프 왈 “이렇게 착하게 생겼던 애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라며 해리가 들으면 문 크리스탈 파워로 하이킥 날릴 소리를 할 뿐이고!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에 이어 전국의 소녀떼 및 누나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띤 준혁 역의 윤시윤은 짬이 날 때마다 빈 세트에서 혼자 벽을 향해, 혹은 소품인 곰 인형을 향해 대사를 친다. 준혁에게 무시당하는 과외 선생이자 왠지 남자친구로 김용준이 등장해야 할 것 같은 황정음은 숨찬 기색이라고는 없이 몇 번이나 분장을 고쳐가며 좁은 구멍을 들락거리지만 그런 정음에게 반말과 막말을 일삼는 준혁을 보니 역시 이 시대의 교권은 8:45 하늘나라로…

“뭐가요?”가 입버릇인 무신경의 극치 현경과 비록 별명은 ‘변태 교감’이지만 마음만은 꿈 많은 소녀인 자옥의 한판 승부처. 디테일에 신경 쓰기로 유명한 ‘매의 눈’ 김병욱 감독은 호텔 방을 연출한 세트에 들어서자 TV를 들여와 어느 방향에 놓을 지부터 체크하는데, 고작 1박 2일 연수에 트렁크를 세 개나 끌고 온 자옥과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현경이라면 채널 다툼만 하다 정작 TV는 켜보지도 못할 것 같다.

동생 신애 역의 서신애는 물론 해리 역의 진지희와 오늘 하루 해리의 아역을 맡은 신수연 까지 한참 어린 동생들을 번갈아가며 끌어안고 놀아주던 신세경. MBC <선덕여왕> 현장에서도 맏언니로 동생들을 돌봤던 데 이어 또다시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게 됐다. 순재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눈물겨운 서울 정착기를 선보일 이 자매에게 던져진 오늘의 시련은 진공청소기. 처음 보는 진공청소기에 볼이 빨려 들어가는 어려운 연기를 NG 없이 한 번에 해내는 서신애를 향해 역시 스태프들은 “애기가 제일 잘해”라는데, 세트 옆 대기실에서 잠시 눈 붙이고 계신 75세의 이순재 어르신이 들으시면 서운하실지도?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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