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따라하는 게 취미였고, 고등학교 때 들어간 연극반에서는 1인 7역까지 안 해 본 역할이 없을 만큼 꾸준한 연기의 경험을 쌓았던 시간은 이러한 안영미 특유의 ‘디테일 개그’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KBS 공채 19기 동기이자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도 파트너인 단짝 친구 강유미와 함께 2005년 히트시켰던 ‘GO GO 예술 속으로’ 역시 이들의 연기력과 관찰력이 낳은 승리였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그로테스크한 분장을 지우고 나면 야무지고 참해 보이는 아가씨로 변신하는 안영미가 도도한 자태로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도 어느새 방송 1년을 넘겼다.

“초반에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너무 빵 터져서 사람들이 바로 질려 할까봐 걱정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안영미는 올해 들어 그 어느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KBS <개그 콘서트> 두 코너의 아이디어 회의와 연습만으로도 1주일이 모자랄 정도인데 무대 밖에서도 남다른 그의 입담을 알아본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로부터의 러브콜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도 웃음과 에너지를 잃지 않는 안영미가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노래들’을 추천했다. 아마 ‘영미 선배’였다면 “내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어 이것듀라~”라고 외쳤을 것이다.

1. 2NE1의 <1st Mini Album>
“첫 번째는, 최신곡으로 할게요. 2NE1의 ‘Fire’에요. 퐈이어~” 아무리 기운이 없을 때라도 목소리만큼은 우렁찬 안영미답게 즉석에서 “난 미미미미미미미치고 싶어 더 빨리 뛰뛰뛰뛰뛰뛰뛰뛰고 싶어!”라며 노래를 불러준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냥 힘이 솟아서 스케줄 가기 전에 매니저 오빠가 꼭 틀어줘요. ‘분장실의 강선생님’팀도 2NE1처럼 네 명이니까 멤버 별로 콘셉트를 맞춰 볼까 하는 얘기도 해봤는데 결국 유미 혼자 산다라박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고 나왔죠.” 산다라박, 박봄, CL, 공민지 등 네 명으로 구성된 여성 아이돌 그룹 2NE1의 데뷔곡 ‘Fire’는 강렬한 비트와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곡으로 2NE1에게 기존의 걸 그룹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안겨 주었고 이 곡이 수록된 2NE1의 첫 번째 미니 앨범 역시 각종 차트를 휩쓸었다.

2.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O.S.T>
오랫동안 연극을 했고 뮤지컬 무대에도 오른 경험이 있는 안영미의 두 번째 추천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대표넘버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이다.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한 번 보러 갔는데 너무 좋아서 또 보러 가게 되더라구요. 특히 뮤지컬 넘버는 에너지가 많이 발산되는 느낌이 들어서 O.S.T도 계속 듣고 다니면 저절로 힘이 나는 기분이에요. ‘This is the moment’에서는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욕심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버티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라는 부분을 특히 좋아해요. 그 밖에도 모든 곡들이 다 좋은데 하나만 더 고르자면 여주인공 루시가 부르는 ‘New life’라는 노래가 정말 감동적이에요.”

3. 벅(Buck)의 <맨발의 청춘>
때로는 가수보다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김병수와 박성준으로 구성되어 95년 ‘가면놀이’로 데뷔한 남성 2인조 듀오 벅(Buck)은 2000년 해체 후 대중 앞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97년 발표한 2집 타이틀곡 ‘맨발의 청춘’은 빠른 템포의 유로 하우스 댄스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가사가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이면서도 재밌잖아요. ‘갈 길이 멀기에 서글픈 나는 지금 맨발의 청춘, 나 하지만 여기서 멈추진 않을 거야 간다 와다다다다다!’ 특히 여기서 ‘와다다다다다다!’가 포인트죠.” 더운 날씨로 무기력해지기 쉬운 여름,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신나는 노래로 안영미가 ‘맨발의 청춘’을 추천한 이유다.

4. 영화 <헤드윅 O.S.T>
“영화 <헤드윅>을 처음 보고 완전히 반했어요. 내용도 좋지만 음악이 정말 다 멋졌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곡은 ‘Origin of love’에요. 노래 가사와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거든요. <헤드윅>을 보고 나서는 감독 존 카메론 미첼에게 미쳐서 얼마 전 개봉했던 <숏 버스>까지 보러 갔어요.” 동독 출신의 소년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와 사랑의 아픔을 겪고 밴드를 이끄는 록 가수가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담은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은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시작해 2000년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영화와 뮤지컬 모두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강렬한 스토리에 힘을 실어주는 파워풀한 사운드트랙이 돋보인다.

5. 쎄쎄쎄의 <아미가르 레스토랑>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곡들이 있다. 안영미의 마지막 추천 곡인 ‘아미가르 레스토랑’도 그런 노래 가운데 하나다. “이건 저에게 에너지를 준다기보다는, 제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노래죠. 특히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하는 곡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마이크를 잡는 순간 자기 자신을 놔야 된다는 거! 하하하!” 95년 데뷔한 3인조 여성 그룹 쎄쎄쎄의 1집 타이틀곡 ‘아미가르 레스토랑’은 ‘돈도니돈돈돈도니돈도니 화려한 음악 속에 쉐이크쉐킷핸드’ 라는 몽환적인 인트로와 묘한 중독성으로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곡이다. 안영미와 강유미가 노래방에서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놓는’ 광경이 문득 보고 싶어진다.

“무대에 설 수 있기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제가 워낙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라 예전엔 길을 지나다닐 때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없었는데 요즘엔 여기저기서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심지어 찜질방에 갔는데 목욕관리사 아주머니까지 저인 줄 아시니까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하하하하하!” 지난 1년 사이 <개그 콘서트>의 간판 개그맨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명세까지 치르게 된 안영미지만 아직도 “쟤들 분장으로 웃기는 거 아니야?”라며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시청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웃기기 위해 밥도 잠도 포기하고 아이디어를 짜는 일상은 그대로다. “건강 문제로 한동안 제대로 활동을 못했던 때가 있어요. 그때 깨달았죠. 무대에 설 수 있기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라고 말하는 안영미, 온몸에 희극인의 피가 흐르는 듯한 그가 앞으로 더욱 다양한 무대에서 재능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그런 게 바로 세상의 이치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