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순재도, OK해미도 없다. 단지 새로운 형식의 김병욱 표 웃음이 있을 뿐이다. 제작 단계부터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 시즌 2라는 소문이 돌았던 김병욱 감독의 신작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제작발표회가 26일 MBC 일산 드림센터에서 진행됐다. 이번 발표회에는 제작사 초록뱀 미디어의 길경진 대표와 MBC 예능국의 안우정 국장을 비롯해 연출을 맡은 김병욱, 김영기 감독과 극본을 맡은 이영철 작가, 배우 이순재, 김자옥, 오현경, 정보석이 참석했다.

서울로 상경한 강원도 자매와 범상치 않은 가족들

“마케팅 차원에선 <하이킥> 시즌 2가 더 유리한 제목일 수 있지만 이어지는 내용이 없으니 별개의 작품”이라는 김병욱 감독의 말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은 전작인 <하이킥>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상황에서 역시 다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때문에 중요한 건 제목에 변함없이 남아있는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을 날리는” 하이킥의 통쾌한 정서다. 강원도 산골에서 올라와 서울의 모든 문명에 감탄하는 세경(신세경), 신애(서신애) 자매의 성장과 학교 급식업체 사장 순재(이순재)와 고등학교에서 변태 할멈으로 소문난 교감 자옥(김자옥)의 목하열애, <하이킥>의 윤-민 라인을 연상케 하는 준혁(윤시윤)과 과외선생 정음(황정음)의 충돌까지, 꼬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웃음 안에서도 어떤 공감과 후련함을 선사할 듯하다.

열정적 황혼 로맨스에 빠진 식품업체 사장 이순재, 이순재
<하이킥>에서 이번 작품으로 넘어온 배우는 이순재뿐이다. 아무리 제목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권위적이되 어딘가 허술한 면이 보이는 가부장적 할아버지를 연기하는데 있어 그 이상의 캐스팅을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자신이 급식을 납품하는 학교의 교감인 자옥과의 열애는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황혼 로맨스를 연상케 한다. 물론 그보다는 조금 더 주책 떠는 모습으로 그려지겠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하이킥>에서의 야동순재처럼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배우가 고생하고 진지하게 할수록 시청자가 재밌어지는 거다. 완벽주의자인 김병욱 감독이 잘 이끌어줄 테니까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겠다.”

악명 높은 변태 할멈 교감 김자옥, 김자옥
“어르신을 캐스팅할 때는 기존 이미지를 비트는 방향으로 캐스팅 한다”는 김병욱 감독의 말대로 고운 이미지의 김자옥이 남학생들의 젖꼭지를 꼬집는 ‘변태 교감’으로 등장하는 건 조금 의외다. 하지만 ‘공주는 외로워’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공주병 콘셉트를 완벽하게 소화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그 정도의 이미지 변신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굴러다니는 나뭇잎만 봐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소녀적 감성과 악독한 교감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 웃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대본에 있는 대로 충실하게 드라마처럼 연기하려 생각할 뿐이다. 내 안에 있는 코믹하고 명랑한 부분을 감독님과 작가분이 끌어내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도, 남편도 꼼짝 못하게 하는 터프한 체육 선생 이현경, 오현경
<조강지처 클럽>이 오현경에게 방송을 새로 시작할 터를 마련해주었다면 <지붕 뚫고 하이킥>은 한 사람의 연기자로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줄 기회다. 수틀리면 무능하고 소심한 남편의 팔을 빠질 정도로 비틀고,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감과 결혼하려는 아버지 순재에겐 거침없이 대드는 체육교사 현경은 말하자면 갈등의 중심이다. 이후 새어머니가 될 자옥과의 대립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거의 매일 운동복을 입고 다니는 이 터프한 체육교사를 잘 표현해낸다면 오현경의 성공적 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품 하는 사람으로서 시청률 부담은 어쩔 수 없지만 우선은 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노력하겠다. 연기의 폭이 넓혀 성과를 보여주면 자연스레 시청률도 올라갈 것이다.”

숫자에 극도로 약한 40대 허당 선생 정보석, 정보석
말끔한 정장이 어울린다. 얼굴도 지적으로 생겼다. 천상 세련된 도시 남자다. 그런데 3000원을 거슬러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2000원을 주고 5000원을 받는 상황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숫자치’다. 장인 순재의 회사 부사장으로 있지만 능력이 없어 애물단지 취급을 당한다. 심지어 처갓집에 얹혀사는 데릴사위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터프한 마누라에게 툭하면 구박당하고 구타당하니 “전작 <달콤한 인생>을 보고 열 받았던 여성분들이 반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10여 년 전 시트콤 <여고시절>에 출연했을 때 많은 팬들을 잃었다. (웃음) 이번에 제대로 된 시트콤 연기를 통해 팬들의 외면을 받지 않는 모습 보여주겠다.”

관전 포인트
비록 <크크섬의 비밀>이라고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있긴 했지만 <하이킥> 이후 MBC 일일시트콤은 재미와 시청률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시트콤의 대가라 할 수 있는 김병욱 감독의 귀환에 관심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은 기존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끈다. “보통 첫 2개월은 초반 캐릭터에 집중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세경(신세경)과 신애의 서울 상경부터 철저히 서사를 따라가며 웃음을 만들겠다”는 김병욱 감독의 설명은 훨씬 더 촘촘한 이야기와 웃음을 기대하게 한다. 과연 <지붕 뚫고 하이킥>은 MBC 시트콤의 구원투수가 되는 동시에 김병욱 월드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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