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에는 데뷔 전의 신인 그룹 티아라가 출연했다. ‘라디오 스타’의 독한 MC들은 그들의 소속사 코어 콘텐츠 미디어 김광수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해명을 요구했고, 김광수 이사는 “(라디오 스타는) 캐릭터를 잘 잡아주는 게 있어서 (티아라가) 꼭 나가야 할 거 같아 통사정을 했다”고 답했다. 그는 농담조로 “(시청률이 안 나오면) 이효리를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도록) 담보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는 대형 기획사가 미디어에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회사의 수장이 스스로 밝힌 순간이라 할 만하다.

대형기획사의 얼굴, 여자 아이돌

요즘 여성 아이돌 그룹은 가요계의 대형 기획사들이 미디어에 대해 갖는 영향력과 기획력을 실험하는 첨병들처럼 보인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소녀시대,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원더걸스,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2NE1은 데뷔 직후, 혹은 데뷔 전 케이블 음악 채널의 리얼리티 쇼로 자신들을 알렸다. 티아라는 ‘라디오 스타’에 이어 KBS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 출연해 왕비호의 독설을 들을 예정이다. 아직 무대에도 서지 않은 신인이 이렇듯 지상파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NE1이 빅뱅과 함께 출연한 ‘롤리팝’ CF와 그에 이은 손담비와 애프터 스쿨의 ‘아몰레드폰’ CF 출연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한 대형 기획사의 미디어 접근법을 보여준다. 영향력 있는 음악 기획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매스 미디어를 장악해 소속사 가수들을 데뷔 전부터 스타로 만든다.

물론 대형 기획사의 적극적인 미디어 활용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남자 아이돌 그룹들 역시 리얼리티 쇼 등으로 얼굴을 알린다. 하지만 여성 아이돌 그룹은 속성상 미디어의 영향력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JYP의 한 관계자는 “충성도 높은 팬덤이 상대적으로 많은 남성 아이돌 그룹과 달리 여성 아이돌 그룹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성 아이돌 그룹이 크고 탄탄한 팬덤이 많은 반면, 여성 아이돌 그룹은 상대적으로 열성적인 팬덤은 적은 반면 폭 넓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MBC <무한도전>의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에서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애프터 스쿨이 출연한 것은 예능 프로그램과 여성 아이돌 그룹의 윈-윈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예능 프로그램은 여성 아이돌을 원하고, 여성 아이돌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인지도를 높인다. 소녀시대는 ‘소원을 말해봐’ 활동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SM과 방송사 모두 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가져오는 효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기획사 소녀 콘텐츠로 미디어를 조련하다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 더 나아가서는 케이블 TV 전체를 장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형 기획사의 미디어 영향력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대형 기획사가 미디어에 미치는 무형의 ‘파워’ 때문만은 아니다. 한 방송관계자는 “아무리 SM이나 YG의 영향력이 크다 해도 지상파 방송사보다 센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방송사가 그들의 아이돌 그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라고 말했다. 2NE1의 ‘롤리팝’ CF가 보여주듯, 최근 대형 기획사들은 데뷔 전부터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상당한 팬덤을 만들어낸다. 또한 그들은 오랫동안의 투자를 통해 대부분의 소속 가수들이 일정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든다. 그들이 데뷔하기 전부터 미디어가 그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형 기획사들은 이런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구조를 통해 소속 가수들을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 시킨다. 소녀시대, 포미닛 등 요즘 여성 아이돌 그룹들은 티저 영상 – 뮤직비디오 – 음원 공개 등의 순서를 통해 활동 전부터 시선을 모으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진다. SM, YG, JYP, 코어 콘텐츠 미디어 등의 대형 기획사나 이들 회사 출신들이 설립한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형 기획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과 기획력을 통해 TV와 음악 관련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중심을 자신들 쪽으로 바꿔놓고 있다.

‘YG TV’가 생길 멀지않은 미래

2NE1의 ‘롤리팝’과 Mnet <2NE1 TV>는 대형 기획사가 어떤 방식으로 미디어를 ‘조련’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예다. ‘롤리팝’과 <2NE1 TV>는 각각 LG 싸이언의 CF와 Mnet의 리얼리티 쇼다. 하지만 ‘롤리팝’은 YG의 가수와 프로듀서와 뮤직비디오 감독이 모여 뮤직비디오를 제작, CF로 유통됐고, <2NE1 TV>는 Mnet을 통해 ‘YG 패밀리’의 일상을 YG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스타와 자본, 기획력에서 모두 앞서고 있는 대형 기획사들은 이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미디어에 뿌리고, 대중에게 그들이 보여주길 원하는 것들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이른 것이다. 최근 거의 동시에 활동 중인 여성 아이돌 그룹들은 대형 기획사들의 새로운 미디어 접근법을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들이다. 대형 기획사가 여성 아이돌 그룹들을 통해 내놓는 티저, 리얼리티 쇼, 뮤직 비디오, 패션, CF등이 모두 미디어의 화제가 된다.

그래서 지금 미디어가 걱정해야할 건 음악의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그 자신이 TV처럼 변하고 있는 대형 기획사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일수도 있다. 대형 기획사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시킨다고 한다면, 그 때 미디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대형 기획사들의 콘텐츠가 영향력을 넓혀 간다면 궁극적으로는 그들 스스로 방송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와 자본, 그리고 충실한 소비자층까지 있는 그들이 방송 시장에 진입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한 방송 관계자의 말은 최근의 현상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 그대로 ‘YG TV’가 생길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이른바 뉴 미디어의 시대에, 대형 기획사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소녀들을 앞세우고.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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