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11시. 예능 프로그램의 최전선인 주말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지상파 3사의 예능 프로그램이 맞붙는 시간대다. 일선 예능 PD들에게 전쟁터라고 불리는 이 시간대에서 MBC <놀러와>는 ‘대박’까진 아니라 해도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거의 매주 유지하며 동시간대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가장 변화가 빠른 예능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MC 교체 없이 5년을 버텨온 이 프로그램의 저력은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주말에서 금요일로, 다시 월요일로 편성을 옮기며 명맥을 이어온 <놀러와>를 월요일 밤의 전쟁터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신정수 PD를 만나 포맷의 유지와 스타일의 변화 안에서 어떤 고민을 안고 프로그램을 이끌었는지 들어보았다.

<놀러와>가 시작한지 벌써 5년 정도 됐다. 토크쇼가 하나의 브랜드로, 그것도 MC 교체 없이 이렇게 오래 가는 건 드문 일이다.
신정수
: 그럴 거다. 과거 SBS의 <이홍렬 쇼>나 <김혜수 플러스 유>처럼 당시에 잘 나가던 프로그램도 120회 정도에서 끝났다. 호스트도 한 명이었고. KBS <해피투게더> 같은 경우도 유재석만 고정이고 여자 MC는 교체됐다. 지금처럼 두 명의 MC가 교체 없이 이어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이 두 걸출한 진행자가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밥처럼 편안한 느낌의 진행자들이다. 사실 작년에 이 프로그램을 맡았을 땐 유재석 한 명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직접 보니 유재석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김원희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굉장히 좋은 조합이 나왔다. 남자끼리도 싸울 수 있는데 둘 모두 성격이 좋아서 그런 일도 없고.

“‘스타 인라인’‘스타 in 커버스토리’등 잡지적인 요소를 TV로 옮겼다”

그렇게 오래 가는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는 건 PD에게 어떤 의미인가. 부담감이 적지 않을 텐데.
신정수
: 내가 <놀러와>를 맡은 지 1년 4개월 정도 되는데 다른 것보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PD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가장 컸다. (웃음) 사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물론 프로그램의 쇠락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자신 때문에 쇼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 거다. 어떻게든 잘 버틴 다음에 후임에게 넘겨줄 생각이었고, 지금은 PD를 교체하면서 10년 이상도 갈 수 있겠단 자신감이 있다. 집단 토크쇼라는 형식 안에서 시청자가 질리지 않을 새로운 소스를 마련할 수만 있다면.

‘토크의 제왕’ 편에서 ‘토크박스’를 재현하는 걸 보면서 새삼스럽게 <놀러와>가 굉장히 전통적인 집단 토크쇼 포맷이라는 걸 느꼈다. 이런 전통적인 포맷을 지키면서 방금 말한 새로운 소스로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다.
신정수
: 처음 <놀러와>를 맡으며 염두에 뒀던 건 타사의 집단 토크쇼가 아닌,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였다. 그 프로그램은 게스트에게서 굉장히 심층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과연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걸 해봤자 ‘라디오 스타’만큼 자극적일지도 않을 거고. 그 지점에서 기획섭외와 골방이라는 두 가지 소스를 생각해냈다. 기획섭외는 ‘힙합 특집’ 편부터 본격화되었는데 여러 명이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건 ‘무릎 팍 도사’가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에 좀 더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골방이란 공간을 후반부에 추가한 거고.

토크쇼란 결국 <서세원 쇼>의 ‘토크박스’처럼 게스트의 입담을 과시하는 것과 ‘무릎 팍 도사’처럼 인터뷰이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으로 양분할 수 있을 텐데 <놀러와>는 그 두 가지를 잡으려 한 건가.
신정수
: 그렇게 가려 했다. ‘스타 in 커버스토리’에선 코미디면 코미디, 혈액형이면 혈액형으로 기획 섭외의 이유와 함께 여기에 집중된 질문을 하고, 골방에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가령 윤도현이 연애를 어디서 했는지에 대한 것들. 그 두 가지를 절충하려 했다.

사실 과거의 ‘토크 홈런왕’이야 말로 ‘토크박스’에 가장 가까운 형식이었다.
신정수
: 그게 경쟁력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야구라는 포맷을 들여왔음에도 과거의 ‘토크박스’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면에서 프로그램의 정체성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게스트 숫자는 적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갈 수 있는 연예인의 ‘스타 인(人)라인’을 했다. 시청자들이 연예인의 집이나 수입만큼 궁금해 하는 것이 친분 관계 아닌가. 사실 방송 뿐 아니라 잡지나 신문에서도 많이 했던 거고. 그렇게 가다가 사람들이 또 질려하는 것 같아서 시도한 게 현재의 커버스토리다.

‘스타 인(人)라인’이 잡지에서도 볼 수 있는 형식이라고 했지만 ‘스타 in 커버스토리’야 말로 정말 매거진 스타일의 접근이다.
신정수
: 잡지적인 요소를 TV로 옮긴 게 맞다. 기본 아이디어를 낼 때, ‘연예계의 잉꼬 부부 4쌍 어떻게 지내나’ 식의 특집기사를 많이 차용했다. 이렇게 활자화된 기획을 TV로 옮겨보면 어떨까, 합성 사진을 이용해 재밌게 표현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며 만든 게 현재의 커버스토리다.

“각종 특집 토크는 기획이 51%, 사람이 49%”

잡지 기획기사가 그렇듯 어떤 기획을 짜느냐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핫한 게스트를 타이밍 좋게 기획 안에 묶느냐다. 그런 면에서 영화 <작전> 출연진을 백지영과 함께 주당으로 묶은 기획이 돋보였다.
신정수
: 영화 홍보 나오는 사람들을 그냥 영화 홍보로 돌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홍보사야 홍보를 위해 우리와 접촉하지만 이걸 나름대로 가공해서 영화 홍보도 하면서 다른 걸 얘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다. 적어도 주는 대로 먹진 않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걸 위해 연출진이 있는 거 아닌가. 가끔 홍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우리의 기획을 거부하는 게스트도 있는데 그럴 경우엔 아까워도 포기한다. <작전>의 박용하와 박희순의 경우, 사전 인터뷰를 하며 촬영 때 뭘 했느냐고 물었더니 소주 마시면서 많이 친해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말한 것처럼 주는 대로 먹지 않으려면 인터뷰나 사전 조사가 많이 필요하겠다.
신정수
: 섭외가 비교적 빨리 되는 편이라 보통 늦으면 녹화 2주 전, 빠르면 한 달 전에 섭외가 된다. 그 때부터 출연자에 대한 다양한 리서치를 하고, 본인은 아니더라도 매니저와 얘기해 게스트에게 어떤 취미가 있고 친한 사람이 누구인지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한다.

간혹 기획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궁금한 기획이 있다. 가령 ‘기러기 아빠’ 특집은 기획보다도 김태원과 유현상을 맞붙이면서 강한 파급력을 보여줬다.
신정수
: 인물을 먼저 고르고 나서 기획할 때도 있고, 기획을 잡고 인물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 그 때 그 때 다르고 고민도 많이 하지만 연출자 입장으로서는 기획이 51%, 사람이 49%라고 말하고 싶다. ‘기러기 아빠’ 특집 같은 경우에도 기획이 먼저였다. 나와 <놀러와> 작가들이 김태원과 술을 마실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그가 친한 기러기 아빠들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기획 자체도 나쁘지 않고, 그 중 유현상 같은 경우는 김태원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개인사가 있는 인물이라 재밌을 거 같아 시도해 봤다. 말하자면 얻어 걸린 거지. (웃음)

그렇게 예상 외로 재밌는 경우도 있지만 기획에 묶여 토크가 안 되는 출연자가 나올 땐 좀 힘들겠다.
신정수
: 섭외를 할 때 드라마나 영화만 하던 사람들은 토크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본인을 설득해서 예능인 몇 명을 묶어서 출연시킬 때가 있다. 아니면 골방에서 게임 같은 걸 준비하기도 하고. 지난 번 ‘탤가맨’ 특집 같은 경우 다들 예능에 자주 나오던 사람들도 아니고, 김민종 같은 경우엔 말을 재밌게 하는 타입도 아니라 골방에서 농구 게임을 시켰던 거다.

“지겨움을 피하는 게 내겐 더 중요했다”

골방에서 어떤 걸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좀 더 유연하게 나올 것 같다.
신정수
: 그게 최대한 주제에 맞는 토크만 하는 커버스토리와의 차이다. 골방은 굉장히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에 놀이나 벌칙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변경하기도 좋고. 가끔 커버스토리가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그러면 골방엔 항상 뿅망치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골방에서 즐길 게임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그걸 유재석과 김원희도 잘 알기 때문에 앞부분이 잘 안 풀리면 골방 토크를 좀 길게 가자고 본인들이 제의한다.

길과 이하늘의 마이너한 조합도 어두컴컴한 골방과 잘 어울린다.
신정수
: 골방이란 공간 자체가 마이너한 공간이니까. 메인이 일종의 사랑방이자 서로 정장을 입고 이야기하는 공간이라면, 골방은 추리닝을 입고 편하게 속을 터놓는 공간이다. 대학 다닐 때 친구가 사는 옥탑방에 가서 술 마시고 늦게까지 자는 느낌 있지 않나. 길과 이하늘은 그런 느낌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길이라는 패널 자체가 힙합 신에 있던 친구라 좀 어두운 면이 있고 피해의식도 강한데 그게 골방이랑 잘 어울려서 섭외했었고, ‘힙합 특집’에서 게스트로 나온 이하늘이 골방에서 길이랑 티격태격 잘 노는 모습을 보고 길의 파트너로 섭외했다.

커버스토리와 골방 토크의 역할 분담이 확실한 편인데 둘 사이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신정수
: 한 프로그램에 두 개의 코너가 있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건, 반대로 하나의 코너만 있을 땐 지겨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의 세트에서만 진행하면 조금 지겨울 수 있기 때문에 골방을 가져온 거다. 이질감을 피하는 건 분명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겨움을 피하는 게 내겐 더 중요했다.

결국 재미를 위한 거고, 그 전제 안에서 상당히 열려 있는 것 같다. 자사 프로그램이 아닌 ‘토크박스’와 ‘<윤도현의 러브레터> 특집’은 예상 외였다.
신정수
: 기본적으로 우린 MBC 프로그램 외에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쪽 방송사엔 조금 미안한 게 있다. 하지만 그곳에도 자기들의 토크쇼 브랜드가 있는데 담아내지 않은 것 아닌가. 그걸 우리가 열심히 해서 시도한 거니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그런 유연함으로 ‘토크 홈런왕’과 ‘스타 인(人)라인’을 거쳐 ‘스타 in 커버스토리’까지 왔는데 그 변화를 일종의 발전으로 봐도 좋을까.
신정수
: 적어도 앞서 말했던 목표, ‘무릎 팍 도사’와 차별화된 <놀러와>만의 색깔을 만드는 것에 근접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제 시청자들은 <놀러와>가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섭외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인식하니까. 어떤 정점까진 아니더라도 처음 그림을 그렸던 어떤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는 건 맞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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