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인 제목 때문인지 많은 기자들은 주연배우 중 유일한 기혼자인 지진희에게 결혼을 필수적이라 생각하느냐 물었고, 그는 “충분히 사랑해보고 나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꼭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아마 사회생활 중인 미혼 남녀의 평균적인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미혼자들이 결혼을 인생의 한 가지 옵션 정도로 여기는 시대, 모두가 결혼을 ‘안’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6월 15일 첫방송을 앞둔 KBS <결혼 못하는 남자>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6월 9일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는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는 자리였다. 이번 발표회에는 연출을 맡은 김정규 감독과 극본을 쓴 여지나 작가, 배우 지진희, 엄정화, 양정아, 유아인, 김소은이 참석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결혼 못하는 남자>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일본 내에서도 평균 시청률 17%의 상당한 인기를 얻은 작품인데다 까칠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독신남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아베 히로시 때문에 한국판을 만드는 감독과 배우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원작이 나왔던 시기보다 결혼에 대한 의무감이 훨씬 희박해진 요즘, 이 드라마는 ‘결혼 못하는 남자’의 독특한 이야기에 집중한 원작보다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김정규 감독은 “결혼이 드라마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결혼이란 건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올린 사람이 벽을 허물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한 상태라고 본다. 그렇게 자신을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 드라마를 휴머니즘 드라마라 정의했다. 일본드라마의 캐릭터와 설정을 빌리지만 결국 <결혼 못하는 남자>는 지금 이곳을 사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능력도 외모도 취향도 있지만 배려가 없는 독신남 조재희, 지진희
기본적인 설정은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원작의 쿠와노 신스케와 동일하다. 업계에서 제법 인정받는 건축 설계가인데다 외모도 준수하지만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주말도 혼자 즐기는 자기 위주의 독신남이다. 배려라는 필터가 없어서 상담하러 온 고객에게도 “그 일 못 합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게 다반사다. 남이야 어쨌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인 재희는 그래서 결혼 못하는 남자이자 사랑 못하는 남자이고 대화 못하는 남자다. 그런 그가 병원에서 만난 문정(엄정화)과 옆집에 이사 온 유진(김소은)을 통해 조금씩 남에게 시선을 돌리는 과정이 <결혼 못하는 남자>의 가장 중요한 플롯이라 할 수 있다.

결혼 못하는 남자의 천적인 결혼 못하는 여자 장문정, 엄정화
실력 있는 내과 전문의인데다가 얼굴도 예쁜 소위 ‘골드미스’인 장문정을 연기하는데 있어 엄정화만큼 적격인 배우가 있을까. ‘왕언니’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트렌드의 최전선에 위치한 그녀를 통해 문정은 괴팍한 재희 캐릭터에 지지 않을 단단함을 얻는다. 원작의 나츠미처럼 차분한 성격의 그녀가 치질 치료 때문에 만난 재희에게 지지 않고 바지를 벗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건 그 때문이다. “결혼이란 단어 자체를 잊고 사는 평온한 삶이 재희와의 만남 때문에 균열이 생긴다는 점에서 문정과 재희는 닮았다. 둥글둥글 사는 반면 남이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걸 불편해하는 인물이다.”

언제 이사와도 환영일 이웃집 처녀 정유진, 김소은
먼 친척의 도움으로 지금의 좋은 집에 이사 온 유진에게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클래식을 쩌렁쩌렁하게 틀어놓는 옆집 사람이다. 20대다운 당당함으로 따지러 갔지만 오히려 치질 때문에 쓰러진 재희를 만나 그를 응급실로 데려가는 역할을 한다. 이날 만난 재희와 문정을 통해 그녀는 또래와 놀아도 모자랄 시간에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문정과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재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흥미를 느끼게 된다. 비록 나이차 때문에 재희와 눈에 띄는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건 아니지만 이 젊고 밝은 아가씨를 통해 재희는 조금씩 변하게 된다.

8년째 짝사랑 중인 재희의 하이카 서비스 윤기란, 양정아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혼 못한 재희지만 만약 지금의 재산을 누군가에게 위자료로 물어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기란의 몫일 것이다. 결혼한 사이도, 연애한 사이도 아니지만 클라이언트 앞에서 무례하게 굴고도 그게 무례한지 모르는 재희의 뒷수습을 도맡아 하며 그를 여기까지 이끈 건 모두 그녀의 몫이다. 8년에 이르는 그 뒷수습의 시간이 오직 동료로서의 책임감만으로 가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괴팍하지만 여전히 잘생기고 능력 있는 재희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그가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그냥 지금의 관계를 쭉 유지하고 싶었지만 재희의 삶에 자기 아닌 다른 여자 둘이 들어오자 재희만큼이나 당혹해한다.

관전 포인트
누가 뭐라 해도 원작 최고의 재미는 자신의 독단이 남에게 무례가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아베 히로시의 무표정하면서도 코믹한 연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출연 분량과 역할 비중을 떠나 원톱 드라마인 게 맞다. 그런 만큼 지진희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그는 “아베 히로시가 너무 잘 표현해 놓아서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 고기 구워 먹는 장면을 좀 더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 위해 불을 너무 키웠다가 앞머리 끝을 태워먹을 정도의 열정을 보인 그가 원작의 카피에 만족할 것 같진 않다. 이미 MBC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까칠한 성격만큼은 제대로 보여줬던 지진희는 여기에 무례함과 고기에 대한 식탐, 극도의 자의식을 더해 자신만의 ‘결혼 못하는 남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사진제공_KBS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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