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내조의 여왕>은 ‘재발견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조의 여왕>은 세련된 도시여인의 대명사였던 김남주가 능청스러운 주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사극 속의 강인한 남자였던 최철호는 그가 얼마나 코미디에 대한 재능이 많은지 증명했다.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 궁상맞은 대리의 모습을 보여주던 윤상현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룹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르는 재벌 2세로 변신해 우리를 놀래켰다. 그리고, 선우선이다. 윤상현의 극중 아내 은소현을 연기한 선우선은 재발견이 아닌 발견이었다.

<내조의 여왕> 전까지 우리는 이 배우가 서른넷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엄청난 동안이라는 것도, 남편과 쿨하게 이별할 수 있는 여성의 캐릭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우선은 그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순간부터 더 큰 놀라움을 주는 배우다. 드라마에서 겉도는 남편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연기와 달리, 그는 사범 생활까지 했던 태권도 4단의 무술가이고, 에어로빅과 힙합을 가르치던 댄서이기도 하다. “요즘 체육관은 태권도만 해서는 못해요. 쌍절곤, 검도, 줄넘기 같은 걸 다 해야 먹고 살 수 있죠. 그래서 쌍절곤도 했었어요.(웃음)”

지난 2000년 정우성과 고소영이 출연한 ‘지오다노’ CF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여러 작품의 오디션을 보면서 끊임없이 연기에 도전했다. 무술가와 댄서의 경험은 그런 연기를 준비하는 사이 생긴 그의 또 다른 인생이었다. “좀처럼 연기를 할 기회가 오지 않으면서 한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그 때부터 힘들더라도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졌죠.” 그 때부터 선우선은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수많은 작품의 오디션에 도전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내조의 여왕>은 그 10년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선우선에게 ‘슬픔을 이겨내게 했던 음악들’을 부탁했다. 힘들었던 오랜 시간동안 지켰던 그의 꿈이 결실을 맺었던 것을 축하하며.

1. 백지영의
“무명 시절부터 백지영 씨의 노래를 참 좋아했어요. 그 분 자체가 어떤 상황이든 포기하지 말라는 기운을 주잖아요.” 선우선이 첫 번째로 고른 앨범은 지난 한 해 가장 사랑 받았던 싱글 ‘총맞은 것처럼’이 수록된 백지영의 . 백지영은 이 노래에서 마치 듣는 사람의 옆에서 노래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실연의 절절함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여자가 실연당한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거죠.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북받치게 되고, 결국 울게 되겠죠. 하지만 그렇게 울고 난 뒤에는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죠. 사랑이 아무리 아파도, 내 일도, 내 꿈도 계속되니까요.”

2. 바비 킴의
“오디션을 정말 수 없이 봤을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몇몇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우도 있어요. <구미호외전>에도 잘 찾아보면 제가 나올 거예요.(웃음) 정말 언제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막막했어요. 그 때 집에서 이어폰으로 ‘고래의 꿈’을 듣게 됐죠.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라는 가사를 들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구요.” 바비 킴의 첫 솔로 앨범 에 수록된 ‘고래의 꿈’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듣고, 부르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래퍼가 아닌 멜로디 메이커이자 보컬리스트로서 바비 킴의 감성을 보여줬다. “바비 킴의 다른 노래들도 참 좋아하지만, 이 노래는 유독 각별한 거 같아요. 가사, 목소리, 멜로디 그 모든 게 다 조화를 이뤄서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힘을 가진 노래가 된 거 같아요.”

3. <미녀는 괴로워> OST
선우선은 세 번째 앨범으로 <미녀는 괴로워> OST를 골랐다. 특히 가수 유미의 ‘별’은 극 중 주인공 한나의 메인 테마로 쓰이며 ‘Maria’ 등의 히트곡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 선우선이 이 노래를 유별나게 아끼는 건 <미녀는 괴로워>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미녀는 괴로워>는 성형 수술이 소재이긴 하지만 모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인정받지 못하는 게 영화의 주인공처럼 못 생겨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운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노력을 못해서일 수도 있죠. 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슬픔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미녀는 괴로워>를 보면서 나에게도 내가 꿈꾸는 무대에 오를 시간이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게 2년 전쯤 일이었는데, 이젠 그 기회가 생긴 것 같네요. 참 다행스럽게도.”

4. 넬의
넬의 네 번째 앨범 는 넬에게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된 앨범. 타이틀 곡 ‘기억을 걷는 시간’이 상징하듯 이 앨범은 넬 특유의 우울함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안으로 차분하게 소화하면서 이별에 대한 격정이 아닌 이별 뒤의 쓸쓸함을 눈에 보일 듯한 묘사로 그려냈다. “꼭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누구든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이 노래에서처럼 길을 걷다가, 물을 마시다가, 심지어 공기 속에서도 과거의 슬픔에 대해 기억날 때가 있어요. 아무리 그 상처가 아물었다 해도 그 때의 슬픔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죠. ‘기억을 걷는 시간’은 그럴 때 급하지 않게, 천천히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거 같아요. 김종완 씨의 목소리를 전에도 좋아했지만, 이 곡에서 목소리는 정말 최고에요.”

5. <내조의 여왕> OST
“이 노래 골라도 돼요? 하하.” 선우선은 마지막 앨범을 고르면서 웃음부터 지었다. 다름 아닌 <내조의 여왕> OST였기 때문. <내조의 여왕> OST의 리패키지 앨범에 수록된 ‘미안해’는 극중 이별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슬픔을 표현한 곡. 그러니 선우선에게는 정말 슬픔을 이겨내는 곡인 셈이다. “일단 제가 연기한 은소현은 남편과 이혼한 뒤에 이 노래를 듣게 될 거 같아요. 새로운 사랑을 찾기 전까지는 쓸쓸하게 살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조의 여왕>의 기억을 떠올리겠죠? <내조의 여왕>에 출연이 결정된 기억, 여러분에게 사랑받은 기억 모두다. 그래서 정말 저한테는 ‘슬픔을 이겨내는 음악’이 될 거 같네요. 이젠 슬픔보다는 희망이 더 많으니까요.(웃음)”

“일단 열심히 한다는 생각 밖에는 없어요”

<내조의 여왕> 이후 선우선은 지난 10여 년 동안 받았던 것보다도 더 많은 시나리오를 받고 있다. 물론 배역도 더 이상 단역이 아니다. 지금 선우선은 어떤 기분일까. “일단 열심히 한다는 생각 밖에는 없어요. 제가 활동한 시간은 많았지만 TV드라마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 없었어요. 드라마든 영화든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연기를 해볼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하고 싶어요.” 데뷔 10여년, 하지만 마치 신인처럼 신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연기자. <내조의 여왕>의 고동선 감독은 그에 대해 “큰 배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선우선이 이제부터 ‘큰 배우’로 가기 위한 또 다른 길을 걷게 될지 지켜보자.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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