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상반기 TV,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를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는가. <10 아시아>는 6월을 맞아 2주에 걸쳐 2009년 상반기 결산의 시간을 갖는다. 여기에는 우리 모두가 공감했던 환희의 순간도,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알려주는 발견들도,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은 알고 있었노라며 간직해둔 또 다른 취향이 모두 들어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던 2009년 상반기동안 그래도 우리에게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지켜준 그들은 누구인가. 첫 주에는 비 드라마의 영역에서 우리를 매혹시킨 20가지 사람들, 작품들, 그리고 순간들을 골라보았다. 둘째 주 결산을 위한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 추천의 기회는 아직 늦지 않았다.

<10 아시아>의 상반기 엔터테인먼트 결산은 신동엽에 대한 박수로 시작하겠다. 그는 현재 지상파 TV에서 가장 용감한 MC다. 신동엽은 그럭저럭 나가던 SBS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 대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퀴즈 프린스’를 택했고, <일밤>은 애국가 시청률과 경쟁하는 사상 초유의 실패를 경험했다. 신동엽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와 경쟁한 유재석과 강호동은 거의 매주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상위 5위 중 4편을 자신들의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다. 또한 최근 주말 예능 프로그램은 MBC <무한도전>부터 KBS <해피선데이>까지 대부분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채워진다. 신동엽에게 죄가 있다면, 그가 대세에 따르지 않고 그 대세들의 교집합과 맞붙었다는 것뿐이다.

대세가 되지 못하면 차라리 틈새가 되고, 1등을 할 수 없다면 10등이 되라. 신동엽과 <일밤>의 처참한 실패는 대세와 틈새가 극단적으로 나눠진 2009년 상반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와 맞붙느니 MBC <세바퀴>처럼 김구라도 숫기 없는 남자로 만드는 토요일 밤의 걸쭉한 토크쇼를 하는 게 낫다. 중년 남성들을 중심에 놓은 버라이어티 쇼 ‘남자의 자격’처럼 ‘1박 2일’이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특정 세대를 위한 버라이어티 쇼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2PM 같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이 활동을 시작할 때는 살짝 피해가주는 게 센스다. 아니면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처럼 이른바 ‘후크송’으로 불리는 댄스 음악이라도 해야 한다. 2008년의 주류로 부상한 것들이 2009년에는 ‘대세’가 됐다. 반면 새로운 대안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 과도기에서 몇 개의 대세가 독과점 같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2009년 상반기다.

1등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10등들의 선전

주말이면 출연자만 바뀐 비슷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 것도, 4분 남짓한 동안 같은 멜로디가 수십 번 반복되는 ‘후크 송’들만 듣는 건 지겨운 일이다. 하지만 이 지루함은 시장의 지배자들의 탓만은 아니다. 2009년 상반기의 대세들은 대부분 일종의 ‘엄친아’나 ‘엄친딸’들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창시자 MBC <무한도전>은 어드벤처 게임과 리얼리티 쇼를 혼합한 듯한 ‘Yes or No’나 리얼리티 쇼와 분장쇼를 더한 ‘프로젝트 런어웨이’ 등으로 매너리즘 따위는 없는 쇼라는 것을 보여줬다. <해피선데이>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기사들에 짜증이 났는지 상반기 동안 박찬호부터 시골 어르신들에 이르는 외부인들을 끌어들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소녀시대 ‘Gee’와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2NE1의 데뷔는 ‘큰 물에서 노는 법’의 정석이었다. SM은 흰 티에 스키니진을 입은 소녀시대의 티저 포스터로 남자들의 눈을 반짝 반짝 빛나게 했고, 뮤직비디오와 무대 공개를 차근차근 진행시키며 기대감을 극대화시켰다. YG는 빅뱅이라는 대세에 수석 프로듀서 테디의 결합에 휴대폰 CF라는 포르쉐 엔진까지 장착해 2NE1을 데뷔 전에 차트 1위로 올렸다. 물론 ‘엄친딸’의 여왕은 김연아다. 그는 은반 위에서는 여제였고, CF에서는 귀엽게 노래를 부르는 소녀가 됐다. 이 완벽한 셀러브리티와 누가 정면으로 맞붙고 싶겠는가.

2009년 상반기 예능에서 유난히 ‘재발견’된 스타들이 많은 건 틈새를 선택한 자들의 승리 때문이다. 김태원이 유재석처럼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유재석도 김태원 같은 ‘40대 로커’의 캐릭터를 가질 수는 없다. ‘힙합 예능인’이 된 길과 이하늘도 마찬가지다. 유채영은 장영란과 김나영과 한성주도 차마 할 수 없는 안면 근육 개그와 헤어스타일 개그로 버라이어티 쇼에 안착했다.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가 할 수 없는 토크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라디오 스타’에서 ‘A급’이 뛰지 않는 행사란 행사는 모두 하는 붐이 자신의 처지를 랩으로 풀어낸 것은 이 ‘10등’들의 생존법을 보여준 순간이다. 그건 가요계에서 아이돌도, 댄스 가수도 될 수 없는 에이트 같은 그룹이 ‘심장이 없어’처럼 센 제목의 노래로 한 번이라도 더 주목을 모은 것과도 같다.

틈새시장이 대세의 지형도를 바꿔 놓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대세가 대세일 수 없고, 틈새가 틈새일리 없다. 몇몇 사람과 콘텐츠가 장악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광장을 둘러싼 경찰차만큼이나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대세 스스로의 몰락이 아니라 전혀 다른 답을 찾는데서 시작된다. 유승호는 지금 시장 전체의 대세는 아니다. 하지만 데뷔 시절부터 누나들의 꿈이며 빛이며 희망이었던 그는 어느새 세상의 모든 누나들에게 요구르트를 입에 떠먹여주는 CF를 찍고, MBC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의 아역이 아닌 비중이 큰 캐릭터로 출연한다. 주류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은 팬덤의 스타가 점점 더 지지자들을 늘리며 다음 세대의 대세가 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2PM이 어느덧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하는 아이돌 그룹이 된 것도 그들이 처음부터 대세였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케이블 예능인 MBC에브리원 <떴다 그녀>를 통해 기존 아이돌과는 다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었고, 그 사이 그들은 ‘Again & Again’을 나오자마자 1위로 만들어줄 열성팬들을 만들어냈다. 카라는 한승연이 ‘한듣보’(듣도 보도 못한 한승연)라는 별명까지 들어가며 공중파와 케이블 TV를 가리지 않고 온갖 활동을 하고, 니콜은 KBS <스타 골든벨>에서 엉터리 한국어로 퀴즈를 내면서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갔다. 카라와 2PM이 아이돌 시장의 최고는 아니지만, 그들은 아이돌 팬덤의 저인망을 훑어가면서 대세가 될 수 있는 바로 앞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세 바깥에 있는 틈새시장의 영역을 통해 조금씩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 나가는 것은 지금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다. 유희열은 KBS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세계의 수많은 음악들을 소개하고, 한편으로는 카라 앞에서 잇몸을 그대로 드러내며 웃는 ‘아이돌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캐릭터를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이며 인디와 아이돌, 90년대 인기 뮤지션들이 모두 놀 수 있는 무대의 주인이 됐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2PM 같은 아이돌 가수들의 팬은 좋아하는 가수들의 무대를 제대로 보길 원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들이 ‘제대로 찍는’ 가요 프로그램과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을 구분하며 이 프로그램들의 제작진이 영상에 신경 쓰도록 만들었다.

대세, 혹은 주류는 모든 사람들을 영향권에 둔다. 하지만 틈새와 비주류는 자신들의 지지자들과 가깝게 밀착하며 시장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 사이 조금씩 주류도 바뀌어 간다. 아직 새로운 시대를 열만큼 강한 변화의 동력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밑에서는 대세보다 틈새를 더 사랑하는 지지자들이, 작지만 강한 에너지를 가진 주변부의 주인들이 조금씩 무언가 바꾸고 있다. 한국의 야구 대표팀이 WBC 결승에 올라가 우승 직전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국내 리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이 단단한 팬층을 만들어낸 프로야구의 힘과, ‘발야구’와 ‘빅볼’을 결합한 새로운 한국식 야구의 탄생으로 인해 가능했다. 새로운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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