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한여운. ‘여운’이라는 이름은 소속사 이사님이 작명소에서 지어 오신 이름이다. 처음에는 단어 같아서 어색했는데, 지금은 친구들도 가족들도 다 “여운아”하고 부르니까 진짜 내 이름 같다.
본명은 안미나. 어릴 땐 예쁘고 발랄해서 내 이름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비슷한 이름으로 활동하는 선배님들이 많으셔서 예명을 쓰기로 결정 한 거다.
1984년 10월 1일생. 03학번이지만 아직 졸업은 못했다. 한 학기 남았는데, 곧 복학해야지.
오빠가 어릴 때 아역배우 생활을 했다. 그때 엄마가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셨는데, 관계자들 눈에 띄어서 광고도 몇 편 찍었다. 그때는 촬영만 시작하면 싫다고 울고불고 했다는데, 지금은 촬영장에만 가면 너무 좋아서 흥분상태가 된다. 히힛.
어릴 때는 완전히 먹보였다더라. 손에 먹을 걸 쥐여 주면 엄마가 버리고 가도 모를 정도였단다. 일어나서 엄마가 안보여도 울거나 보채지 않고 옆에 있는 과자 먹으며 잘 놀고.
대학에 가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연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됐다. 당시 동아리 친구들이 정말 열정적이었는데, 결국 첫 작품을 같이 했던 동기들은 졸업을 하고도 한예종에 입학해서 연기 공부를 계속 한다. 그래서 전화 하면 첫마디부터 내 연기에 대한 지적을 해준다. 고마운 일이고 도움도 많이 되지만 어쩐지 “어, 알았어”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게 된다. 아, 나도 생각하고 있는 걸 너무 콕! 짚어 주니까 말이다. 하하하하.
돌이켜 보면 연극 동아리 시절이 참 좋은데, 그때는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어서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다. 악극 오디션에 통과해서 대사도 없는 코러스로 출연하기도 했고, 어린이 뮤지컬 <피터팬>에서 웬디 역할을 따내기도 했다.
아빠는 워낙 엄격하셔서 내가 인문학부에서 철학을 전공으로 결정 했을 때도 노발대발 하실 정도였다. 좀 더 취직 잘되는 공부를 하길 바라신 거지. 그래서 아빠 몰래 연기 준비를 했었다. <라디오 스타>로 반응이 오면서 신문에 인터뷰가 실리고서야 아셨던 것 같다.
대신 엄마는 원하는 일을 하도록 지원해 주시는 편이었다. 엄마 소개로 알게 된 분이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오디션도 주선해 주셨고. 그 드라마를 찍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나중에 (김)선아 언니가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고 말해주실 정도였다. 그래도 너무 순진하니까 오히려 언니가 던지는 애드리브를 다 받아들여서 신기해하시기도 했다.
KBS <남자 이야기>에 같이 출연하는 (박)시연 언니는 정말 등장하는 순간 “우와아아아아아!”하게 되는 카리스마가 있다. 나는 뭐랄까, 나타나면 현장이 밝아지는 듯 한 느낌? 하핫. 워낙 여자가 없는 현장이라 다들 잘해주신다.
박용하 선배님은 전반적으로 많이 챙겨주시는 스타일이다. 나도, 선배님도 먼저 친한 척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막상 촬영 들어가니까 정말 많이 도움을 주시더라. 첫 촬영이 교도소에 신이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는데, 카메라 이동하는 틈틈이 면회실 전화기를 들고 대사 맞춰 주시고, “잘하는데요”하고 격려해 주셨다. 김신이 워낙 바쁜 캐릭터라 대기실에서 만날 일이 잘 없었다. 그동안 배워야 할 선배님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최근에 친해졌다. 제일 마지막으로 친해진 사이다.
도우오빠(김강우)는 정말 자상하다. 제작 발표회 때까지도 나는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혼자 어색한 기분이 있었는데, 오빠가 먼저 장난도 치고 말 걸어주셔서 진짜 감사했다. 현장에서도 여자스태프들이 불편한 일이 있으면 말없이 쓱 해결해 주는 스타일이다.
은수가 모두에게 다 잘해주니까 ‘마성의 여인’이라고 불려서 이거, 문제다. 며칠 전에 찍은 신에서는 은수가 뮤즈로 돌아오는 장면인데, 경태가 은수를 맞이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동선을 정리하면서 그냥 문호아저씨를 보고 웃으면서 얘기하라고 하시더라. 재명 오빠(이필립)가 옆에서 보더니 “너, 왜 (상대가) 왔다 갔다 해!” 그러는 거다. 하하하.
벌써 4년차 배우다. 나름대로는 다양한 캐릭터를 하면서 계단을 오르듯 꾸준히 성취 해 왔다고 생각 하는데, 주변에서는 오늘 봐도 그 자리, 내일봐도 그 자리라고 걱정을 많이들 해 주셨다.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인지도를 쌓기 위해서 소위 ‘치고 나가야’ 할까. 아니면 지금처럼 스펙트럼을 꾸준히 넓히는데 집중해야 할까.
나는 고양이 보다는 강아지상이다. 착해 보이고 어려보이는 얼굴이라 여자들이 더 좋아해 주신다. 스스로 섹스어필한 이미지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비주얼적인 문제일 뿐이다. 경험을 쌓고,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연기로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양갈래 머리의 소녀부터 <해피엔드>의 역할까지 소화하는 전도연 선배처럼 말이다. 이제와서 동그란 내 얼굴을 깎아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때를 기다릴 거다. 그게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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