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이 록키드였던 시절 즐겨 듣던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나 속주에 눈을 뜨게 해준 잉베이 맘스틴의 경우 자신의 밴드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주 보컬을 바꾸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덕분에 그래험 보넷과 로니 제임스 디오, 제프 스코트 소토, 마크 볼즈 같은 뛰어난 보컬리스트 들이 록 필드에 등장할 수 있었다. 부활이 총 11개의 정규 음반을 내는 동안 김태원 역시 여러 보컬들과 작업하며 숨은 실력자들을 필드로 불러내왔다. 부활을 통해 얼굴을 알릴 수 있었던 그들을 통해 김태원의 음악적 여정, 그리고 록계에 끼친 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움. 김태원은 ‘라디오 스타’에서 ‘김태원에게 이승철이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단순히 그가 이승철과 부활 초기 1, 2집을 같이 작업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이승철의 노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부활 초기 이승철의 미성은 로니 제임스 디오를 연상케 하는 임재범과 롭 핼포드와 유사한 샤우팅을 보여준 백두산의 유현상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로커들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좀 더 팝적인 음악을 시도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부활의 특색과 맞아 떨어졌다. “록과 주류 가요의 가교 역할을 하는” 부활의 멜로디컬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 분위기는 맑고 안정적인 비음을 구사하는 이승철의 목소리와 만나면서 1집의 ‘희야’와 2집의 ‘회상’ 3부작 같은 곡을 탄생시켰고, 15년 만의 재결합에서도 ‘Never Ending Story’ 라는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 이승철은 김태원에게 그리운 이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재기가 바람으로 떠났다’ 김재기가 3집 녹음 중에 교통사고로 죽은 날 김태원이 자신의 노트에 적어놨다가 20주년 기념앨범인 10집에 옮긴 문구다. 이승철이 부활 시절까진 아직 보컬로서 최대치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솔로로서 팝 발라드 가수로 활동하며 초일류 보컬이 됐다면 김재기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꽃피우기 전에 운명을 달리했다. 이승철 탈퇴 이후 폐인처럼 살았던 김태원에게 용기를 주고, 명곡 ‘사랑할수록’의 스튜디오 버전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요절한 천재로 기억되어 마땅한 그지만 이승철이 사라진 부활의 빈틈을 메웠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감성도 풍부했지만 그보단 탁월한 테크니션의 느낌이 강한 이승철이 현란한 초식을 구사하는 검객이라면 담담하지만 깊이 있는 음색을 들려준 김재기는 투박하지만 내공이 뛰어난 고수에 가까웠다. 그의 등장과 3집의 성공은 이승철은 중요한 존재지만 절대적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사랑할수록’은 김재기의 목소리였지만 순위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는 얼굴은 그의 동생 김재희였다. 김재기의 죽음으로 다시 음악에 대한 열의를 잃고 술에 빠져 살던 김태원에게 김재기의 아버지가 김재희를 데려와 “이 아이가 재기의 한을 대신 풀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건 유명한 일화다. 김재기가 즐겨 부르던 ‘무정 블루스’를 형과 거의 똑같은 톤으로 부른 그를 섭외해 김태원은 3집 <기억상실>을 완성했다. 하지만 형을 대신하는 느낌이 강했던 3집보다는 4집 <잡념에 관하여>에서 그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맑은 비성과 허스키한 목소리를 함께 구사했던 김재기와 달리 4집에서의 김재희는 ‘드나드는 그리움’이나 ‘늘 너의 곁으로’의 곡에서 형과 비슷하지만 좀 더 가라앉고 남성적인 목소리를 들려줬다. 형과 마찬가지로 김태원의 어쿠스틱한 연주와 만날 때 가장 어울리는 보컬이기도 하다.

사실 박완규가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계기는 부활 5집 <불의 발견>에서 부른 ‘Lonely Night’ 때문이 아니라 솔로 시절의 ‘서태지가 상업주의에 젖었다’는 발언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는 “기왕 록을 하려면 라이브로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던 게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 됐던 것이지만 가상적이라도 이런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박완규의 노래 실력이 당시 록계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부활 5집의 ‘마술사’ 같은 곡에서 들려준 고음역은 당시 최고의 고음 보컬로 군림하던 김경호와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만한 것이었다. 마치 과거 이승철과 임재범의 대결 구도처럼. 비록 역대 부활 보컬 중 가장 부활의 감성과 맞지 않는 목소리의 소유자였지만 이후 김태원이 ‘라디오 스타’에서 같이 작업하고 싶은 보컬로 첫 손에 꼽을 정도로 자신의 영역에서 만큼은 최고에 근접한 보컬이다.

굳이 대중과 부활의 골수팬으로 청취자를 나눌 때 전자에 비해 후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보컬이 7집 에 참여한 이성욱이다. 마치 김재기를 연상케 하는 맑은 비성을 가지고 있지만 김재기와는 달리 미성의 고음을 구사하는 그의 역량은 ‘안녕’이나 ‘리플리히’ 같은 곡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7집의 경우 과거 어떤 앨범과 비교해도 감성과 멜로디, 보컬 역량에서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해 이성욱 역시 역대 부활 보컬 중 이름이 가장 안 알려진 축에 속한다. 하지만 개인적 역량과 부활 스타일과의 어울림으로 따졌을 땐 부활 팬 사이에서 이승철, 김재기와 함께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컬이기도 하다. 특히 고음역이면서도 너무 하드록 스타일인 박완규와는 느낌이 달라 부활 특유의 록과 발라드 사이의 느낌을 매우 잘 살릴 수 있었다.

15살 차이라는 것은 비록 김태원이 “그런 걸 따지는 성격이 아니”라 해도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기에 작은 핸디캡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동하는 이승철을 제외하고 두 번의 정규앨범에 참여한 유일한 보컬이 될 수 있었다. 녹음실에서 임재범의 ‘고해’를 부른 걸 듣고 김태원이 처음엔 CD를 틀어놓은 줄 알 정도로 허스키한 흉성이 매력적인 그는 김재희를 제외하면 김재기 이후 김재기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특히 파워풀한 에너지를 담지 말라는 김태원의 주문대로 절제된 목소리를 구사하면서 더더욱 김재희를 연상하게 된다. 과거 히트곡 커버에 있어선 조금 부족하단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보컬의 느낌을 살려 작곡을 하는 김태원의 작법 덕분인지 10집 <서정>과 11집 <사랑>에서의 신곡에선 자신만의 매력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서서히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갈 거”라는 김태원의 기대대로 과연 그는 부활을 거쳐 간 선배들처럼 일류 보컬의 아레나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NO.1 list
김태원 – 정재영2PM다니엘 헤니 김강우슈퍼주니어황정민안영미정일우장기하신혜성이민기소녀시대브래드 피트 박지선고현정한지혜샤이니둘리현빈황현희장윤주김창완송혜교김재욱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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