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진. 이 여자를 뭐라 하면 좋을까. 스타일리시한 패셔니스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배우? 사실 그녀를 불러올 때 주로 쓰이는 이런 말들은 수식을 위한 수식에 불과하다. 공효진은 그냥 공효진이다. 대체 불가능한 공효진이라는 단어. 그녀가 아닌 <품행제로>의 날라리 영주나 MBC <네 멋대로 해라>의 센 척하지만 속마음은 보드라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공효진이라는 단어는 <가족의 탄생>, MBC <고맙습니다> 등을 거쳐 <미쓰 홍당무>에서 딱 맞는 빈칸을 찾아 들어갔다.

스스로도 “내 인생의 단 한 작품”이라고 밝힌 <미쓰홍당무>의 양미숙은 안면홍조증에 스토커 기질이 다분하고, 학창시절부터 선생이 된 지금까지 쭉 왕따인 ‘비호감’이다. 그러나 공효진이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만들어낸 양미숙은 그 해의 어떤 여자보다도 강렬하다. 스타일이 아닌 자신만의 아우라로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요리하는 레시피를 터득한 공효진. 그녀의 씩씩한 목소리는 의외로 ‘소녀 감성’으로 촉촉하다. “저는 로맨틱한 영화도 좋아하고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특이한 취향은 아니에요. 정말 평범한 그런 여자예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도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펑펑 울었다”는 천상 여자가 봄이 오면 다시 찾는 영화들로 이 봄의 끝을 붙잡아 보자.

1. <하나와 앨리스>(花とアリス)
2004년 │ 이와이 슈운지

“원래 일본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뭐랄까 한국적인 감성하고는 많이 달라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그래서 주변에서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서야 봤는데, 아 정말 상큼했어요. 풋풋하고 푸릇푸릇한 소녀들의 감성에 나도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데요. 이 영화를 보고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다른 영화도 다 찾아서 봤는데, 그래도 <하나와 앨리스>가 제일 좋았어요.”

늘 붙어 다니는 단짝, 하나(스즈키 안)와 앨리스(아오이 유우) 사이는 하나에게 짝사랑하는 선배가 생기면서 조금씩 금이 간다. 짝사랑하는 선배를 기억상실로 몰아 고백을 종용하는 하나는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깜찍한 음모에 앨리스도 끌어들이게 된다. 거짓말과 짝사랑으로 엮인 세 사람의 감정은 실타래처럼 계속 엉키고, 벚꽃 흩날리던 봄날도 여름으로 접어든다. 평범한 소녀들의 일상도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앵글 안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2. <나쵸 리브레>(Nacho Libre)
2006년 │ 자레드 헤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영화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 배우가 잭 블랙이거든요. 그 사람 연기가 다소 과장되어있고,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만 되는 건데도 부담스럽지 않잖아요. 특히 <나쵸 리브레>는 저랑 개그 코드가 맞더라고요. 웃기려고 하는데 배우들은 시침 뚝 떼고 안 웃고. 잭 블랙이 입고 나오는 엉덩이에 꽉 끼는 바지조차 너무 웃겼어요. (웃음) 잭 블랙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웃었던 영화예요.”

살벌한 링 위를 소재로 이보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마음만은 쾌남인 수도사 구에로(잭 블랙)는 사모하는 앤카나시온 수녀와 고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레슬링 상금에 도전한다. 그러나 ‘나쵸 리브레’로 몰래 경기에 출전하던 구에로는 점점 돈이 아닌 진정한 승리를 원하게 된다. 그는 과연 사랑도 얻고, 승리도 쟁취할 수 있을까? 실제 멕시코의 한 신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감독의 전작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의 귀여운 폭탄 콤비에 이어 별난 레슬러 콤비를 탄생시켰다. 김C를 꼭 빼닮은 무쵸와 올챙이배마저 사랑스러운 구에로의 기상천외한 몸 개그는 가히 발군이다.

3.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년 │ 미셀 공드리

“멜로 영화인데다가 슬픈 이야기인데도 신파로 흐르지 않고, 감각적이었어요. 나이가 많은 감독의 작품인데도 굉장히 젊은 느낌의 영화인데다가 스토리 라인도 특이했어요. 미셀 공드리 감독은 특별한 상황을 굉장히 특이한 이미지로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특히 다 큰 어른인 배우들이 꼬마인척 분장하고 어린아이처럼 연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발랄해서 슬픈 영화임에도 귀여웠어요. 물론 보면서 뭉클해져서 엄청 울긴 했지만요.”

이미 인연이 다한 연인들에게 추억이란 무엇일까? 그저 오래된 기억일 뿐일까, 시간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악몽일까?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의 이별 후 그녀와의 기억들에 괴로운 조엘(짐 캐리)은 기억을 삭제하는 회사의 도움으로 모든 추억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은 뒤범벅이 되어 그를 더욱 괴롭히고, 기억만 없애면 쉽게 잊혀질 줄 알았던 사랑은 쉽사리 떨쳐버릴 수가 없다. 미셀 공드리 감독은 특유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화법으로 사랑에 대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4. <장화, 홍련>(A Tale Of Two Sisters)
2003년 │ 김지운

“이게 참 무서운 이야기잖아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데, <장화, 홍련>은 보통의 무섭고 잔인하기만 한 영화랑 달랐어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슬프면서 화면이나 색감은 또 너무 예쁘고. 사실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 보다는 사람이나 현실이 더 무섭잖아요. 그런 게 공포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잘 나타난 거 같아요. 그래도 어찌나 무서웠는지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이 나오는 나비장이랑 비슷한 옷장이 집에 있었는데 바로 바꿨을 정도였어요. (웃음)”

최근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The Uninvited)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 <장화, 홍련>은 시종일관 음울하고 처연하다. 외딴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가족. 그러나 이들 사이의 공기는 심상치 않다. 무기력한 아버지와 아름답지만 기괴한 계모 그리고 병약하고 불안해 보이는 자매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들은 이리도 아슬아슬할까. 강박증으로 느껴질 정도로 공들인 영화의 이미지가 인상적인데 그 결과 식탁 위에 놓인 화병 하나까지도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5. <구니스>(The Goonies)
1985년 │ 리차드 도너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그 아이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구니스>는 정말 어릴 적에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원래 어드벤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구요. 저는 너무 현실적인 영화보다는 마음껏 상상할 여지가 있는 영화들을 더 보게 되더라고요. 보고 나서 한참을 아 나도 저런 모험을 해 봤으면, 하다가 밤에 잘 때는 꿈도 꾸고. (웃음) 지금도 일상이 무료할 때면 또 보고 싶은 영화예요.”

가난한 변두리 마을의 아이들은 우연히 보물지도를 발견하고, 당연히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착하지만 결코 모범적이지 않은 개구쟁이들은 필연적으로 악당들에게 쫓기고, 보물을 찾는 길은 험난하다.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구니스>의 아이들이었던 숀 애스틴은 <반지의 제왕>의 충직한 샘으로, 조쉬 브롤린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마초 카우보이로, 초 절정 인기 아역 스타였던 코리 펠드만은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리얼리티 쇼를 찍으며 현실에서의 모험을 계속하고 있다.

“정말 예쁘게 나올 수 있는 걸로 하고 싶어요”

“이제는 제발 예쁘게 나오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서 생선가게를 지키는 비혼모를 연기한 공효진은 29살 여자로서 불만이 많다. “<미쓰 홍당무>보다는 낫겠지 했는데 막상 보니까 양미숙 못지않게 촌스러운 거 있죠.” 그래도 명주, 명은 자매 얘기를 하는 목소리에는 흥이 가득하다. “자매들의 관계는 어떤 걸까? 그런 걸 경험해보지 않아 잘 몰랐는데 친했던 (신)민아랑 하게 돼서 다행이었어요. 특히 민아가 절 보면서 얄밉게 쏘아붙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는 어휴, 진짜 열 받더라고요. (웃음)”

여자들끼리 여행 다니는 기분으로 찍었다는 영화는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물처럼 흐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눈물로 질척이지 않고, 가족이라는 보호막을 일궈낸 명주가 또렷이 보인다. <미쓰 홍당무> 이후 제2막을 맞은 공효진이라는 배우도 여실히 보인다. “드라마도 올해 안에 할 것 같아요. 정말 예쁘게 나올 수 있는 걸로 하고 싶어요. (웃음)” 길을 걷다 드라마를 찍고 있을 그녀와 마주친다면 가만히 말을 건네 보자. 공효진, 당신은 처음부터 충분히 예뻤다고.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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