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선수가 있다. 규정 타석도 다 채웠고 타율과 장타율, 출루율도 통계적으로 다 정리가 되었는데도 데이터와 실제 경기에서 주는 기대감은 전혀 다른 선수가. 말하자면 비교적 낮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 들어선 타석에서만큼은 적시타를 때려줄 것 같은, 이상한 믿음을 주는 선수가 있다. “2006년 <싸움의 기술>만 조금 흥행하고, 나머진 다 잘 안 된” 박기웅이 주는 느낌이 그렇다. 수치로만 봤을 때, “연기를 시작한지 7년째에 필모그래피도 10편이 넘는” 그에게서 특별히 흥행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나 배우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성공작을 찾긴 어렵다. 그럼에도 그가 조금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등장할 때마다 왠지 모를 기대감을 품게 된다. 이제 조금씩 대결구도가 명확해지는 KBS <남자이야기>에서의 안경태에게 거는 기대 역시 그렇다.

“아, 이번엔 정말 감독님 실망시켜드리면 안되는데”

초등학생도 여간해선 쓰지 않을 모형 헤드셋을 끼고 순간순간 고개를 빠르게 갸웃거리며 “1977년, 2200만 달러짜리 피델리티 마젤란펀드를 13년 만에 132억 달러짜리로 불려놓은 피터 린치, 10년 동안 자기 고객 100만 명 모두에게 스물다섯배의 투자수익을 올려줬다 이겁니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2700퍼센트죠.”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는 안경태는 77일 촬영기간 중 62일은 밤을 샌 MBC드라마넷 <서울 무림전> 이후 체력이 완전히 고갈돼 한동안 쉬고 싶었던 박기웅을 다시 드라마에 뛰어들게 할 정도로 독특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틱 장애를 비롯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단 것보다 흥미로운 건, 연출자인 윤성식 감독 역시 앞서 말한 알 수 없는 기대감을 품고 그에게 안경태 역을 제안했단 사실이다.

“글쎄요?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하는 것보다 더 예쁨을 받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그리고 제 개인적인 능력치가 요만큼이면 연출하시는 분들은 이-만큼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고.” 티켓 파워나 시청률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작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품을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선 그 역시 의아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 이번엔 감독님이 정말 많이 믿어주셔서 실망시켜드리면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혼잣말의 기특함을 스스로만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촬영 후 비 때문에 길이 막혀 차 안에서 4시간 동안 보낸 뒤, “베스트 컨디션으로 인터뷰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기자가 없는 것처럼 “내 능력을 높게 봐주신 만큼 ‘뽀록’나지 않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를 예뻐하지 않는 연출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가 사적인 자리에서 잘하기 때문에 일이 들어온다는 뜻이 아니다.

기필코 적시타를 칠 거란 기대감

그는 “목적을 가진 인터뷰보단 편하게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지네딘 지단에 대해 “동시대에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라 찬양할 때 어느 때보다 눈을 빛내는 자유롭고 명랑한 청년인 동시에, 세상을 살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이라 주저하지 않고 말할 정도로 올곧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되 방종하지 않는 청춘은 얼핏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현실에선 보기 어렵다. 그에게서 시청자 혹은 관객이, 그리고 연출자가 그가 기록한 성적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이런 올바른 한편 독특한 청춘의 매력이 캐릭터에 덧입혀지기 때문은 아닐까. 착하고 정의로웠던 <서울 무림전> 동해뿐 아니라 ‘찌질한’ 전 남자친구인 KBS <연애결혼>의 경환이나 선악 개념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남자이야기>의 경태에게서도 느껴지는 이 매력은 분명 수치화될 수 있는 재능은 아니다. 하지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그의 타석에선 기대를 품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