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민기는 음악방송의 시상식에서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시드 비셔스처럼 ‘My way’를 불렀다. 연말에 출연한 토크쇼에서는 청춘스타답지 않게 너무도 편안하게 경상도 사투리로 대화를 풀어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알맹이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이민기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민기의 그 알맹이들이다. 영화 <오이시맨>의 현석을 연기하기 위해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연습했던 이민기는 영화 밖에서도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한발짝 뮤지션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사투리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에서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억양에 깊이 빠져들어 연기한 영화 <해운대>가 여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영화에서 해운대의 해안 경비대로 출연한다.

무엇을 하던, 이민기의 관심과 애정은 결국 연기에 닿아 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오이시맨>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 영화 덕분에 음악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거죠.”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듬직하다. 음악적 재능을 펼치더라도 결코 연기의 영역에서 훌쩍 떠나버리지는 않을 것 같은 뿌리가 느껴진다. <해운대>를 찍으면서도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표준어 구사를 자제했다고 할 정도다. “이제 영화 끝났으니까 다시 표준어 써야하는데, 영 불편하고 어렵네요.”라고 쑥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그는 곧 영화 <10억>을 촬영하러 호주로 떠난다. 모델이 되기 위해 훌쩍 상경하고, 우연한 기회로 단막극에 데뷔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청년은 이제 일 년 달력을 빼곡히 촬영으로 채워 넣는 누구보다 바쁜 배우가 되었다. 그런 이민기에게 ‘처음 듣는 순간 나를 사로잡은 음악들’을 추천 받았다. 단숨에 반해 버리는 순정, 그리고 그 애정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의리. 그것이야말로 이민기의 ‘My way’다.




1. Blue October의
“아, 시원하더라구요. 보컬 때문인가? 앨범 전체는 몽환적인 느낌이 있기도 한데, 한 곡 한 곡 듣고 있으면 마음이 확 뚫리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미국 록 밴드들 특유의 그런 느낌 있잖아요. 쫙 내지를 때 내질러 주는.” 한 곡의 노래를 선곡하기 보다는 앨범 전체를 들으려고 하고, 추천 이유에 대해서도 ‘좋으니까 좋은 거죠’라며 굳이 이유를 꼽기 주저하던 이민기가 천천히 생각해낸 Blue October의 매력은 미국적이면서도 미국적이지 않은 특유의 감수성이다. 텍사스 출신의 5인조 밴드인 이들은 키보드와 바이올린을 적절히 이용해 강한 비트에도 불구하고 멜랑콜리한 느낌을 잘 살린 모던하면서도 감상적인 곡들을 주로 발표해왔다. 특히 이들이 2006년 발표한 앨범 의 첫 싱글 ‘Hate Me’는 미국 모던 록 차트 상위에 오랫동안 랭크된 히트 넘버다.




2. South의
이민기가 두 번째로 선택한 음악은 영국의 3인조 밴드 South의 두 번째 앨범 . South는 멤버 전원이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어 보컬을 제외한 포지션을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 런던. 그런 느낌이 딱 들어요.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기분인데, 그렇다고 음악이 흐릿한 건 아니고. 미국 밴드들은 보컬이 되게 몸이 건장할 것 같은 반면에 이런 영국 밴드들은 보컬도 마르고 예민하게 생겼을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 있잖아요. 뭐랄까 섹시하다고 할까.” 실제로 이들의 첫 앨범 의 ‘Paint the Silence’는 드라마 에 삽입되어 미국에서 인기를 끈 바 있다고 하니, South의 음악이 가진 섹시함을 발견한 사람이 이민기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3. Coldplay의
“4년쯤 전부터 갑자기 음악을 열심히 들었어요. 그 당시에 킨이라든지 콜드플레이, 데미언 라이스, 악틱몽키즈… 닥치는 대로 듣고 음악에 빠져 있었죠. 신보 개념도 없었고, 밴드 멤버들도 잘 몰랐어요. 그냥 막연히 좋았던 거죠.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은 없었는데, 그 한순간엔 열정적이었어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폭식하듯 음악을 섭렵하던 그 무렵에 만난 밴드들 중에서도 특히 Coldplay는 단숨에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고. “왜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아요. 어떤 반열에 올라서면, 그 다음에는 실험성이 필요한 거죠.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가려고 하는 도전의식 같은 거. 앨범 타이틀 보세요. Viva La Vida. 어디서 들었는데 인생 만세, 그런 뜻이래요. 새로움을 찾는 인생은 그야말로 만세죠, 뭐.”



4. Maximilian Hecker의
“연기는 우연히 시작했다가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된 건데, 음악은 좀 달라요. 연기를 하는 도중에도 음악이 정말 하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교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순간이 음악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 했거든요.” 이민기가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션으로 선택한 막시밀리언 헤커는 부서질 듯 섬세한 보컬과 감성적인 멜로디로 유명하며, 국내에서도 여러 번 공연을 가질 만큼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독일 뮤지션이다. 그 중에서도 그의 두 번째 앨범 는 로맨티시즘의 극단을 보여주는 그의 음악 세계가 잘 구현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Daylight’같은 곡은 그냥 들으면 ‘어, 복고적인 일렉트로닉 넘버구나’ 싶을 텐데 이 앨범 중간에 있으면서 굉장히 구성적인 재미를 주는 곡이 됐거든요. 앨범 전체를 다 듣게 만드는 힘을 주는 곡이랄까요.”




5. Weekenders의
Weekenders는 일본 시부야계의 유명 프로듀서 스즈키 신이치와 작곡가 와타나베 노보루와의 하우스 유닛이다. 특히 스즈키 신이치는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한 프리템포를 발굴한 프로듀서이며, 프리템포가 소속된 포레스트넛 레코드(Forestnaut Records)의 대표이기도하다. “제가 참 운이 좋은 게, 작년에 제가 프리템포가 한국에서 발표한 곡에 피쳐링을 했었잖아요. 그걸 들은 스즈키 신이치씨가 저를 보컬로 발탁해 주셨어요. 그래서 나온 싱글이 ‘we can`t forget the reason’입니다. 제 노래랑 비교될 것 같아서 이 앨범 추천하는 것을 조금 망설이기도 했는데, 워낙 앨범이 좋아요. 이런 시부야 계열 음악이 이젠 국내에서도 친숙한 장르인데, 이 앨범은 진짜 알차게 잘 짜여 진 느낌이에요. 스즈키씨가 천재라는 말이 진짜구나 싶더라구요.”


“어느 날 뭘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귀여운 연하남(<달자의 봄>)에서 엉뚱한 태권도장 사범(<얼렁뚱땅 흥신소>)으로,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입사시험에도 실패한 평범한 청년(<로맨틱 아일랜드>)에서 열패감으로 가득 찬 뮤지션(<오이시맨>)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이민기의 행보는 언제나 예상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게다가 크랭크업을 한 영화 <해운대>는 블록버스터급의 해양 재난영화고, 촬영 중인 영화 <10억>은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목숨까지 걸게 되는 스릴러물이 될 것이라고 하니, 그의 가까운 미래를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십년 뒤의 계획을 묻자, 아니나 다를까 모호한 답변이 돌아온다. “어느 날 뭘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포장마차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차라리 가이드를 하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하하. 유럽도 하고, 동남아도 하고, 일본도 다 돌아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언어부터 공부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엉뚱하지만 모든 순간 진심을 담는 그의 매력이 십년 뒤에도 스크린에서 빛나기를. 그리고 그 영화들을 통해 유럽과 동남아에 그의 얼굴이 알려지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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