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소녀와 30대 개그맨’, ‘개그맨 아내와 미남 배우 남편’, ‘건담 마니아 부인과 예능의 기린아 남편’ 이라는 새로운 커플로 무장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 언뜻 트렌디한 새 옷을 갈아입은 듯하지만 가상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진행 양상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전히 다른 별에서 온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거나 실망한다. 그러나 이윽고 상대의 진심을 확인하고 알콩달콩한 신혼 일기를 써내려갈 것이라는 것쯤은 이제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만 바뀌고 전에 본 것 같은 이야기에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비슷비슷한 현실 속의 결혼 생활을 비추고 있는 거울일수도, 가상결혼을 그저 롤플레잉 게임으로 단순화시키는 압축기 일 수도 있다. <10 아시아> 강명석 기자와 김교석 TV평론가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우결월드’를 방문했다. /편집자주

요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가 ‘리얼’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알렉스-신애가 한창 날리던 시절의 ‘우결’은 가상 부부인 출연자들이 아직은 어색한 사이라는 것을 전제했고, 그들이 실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반면 실제로는 1~2주에 한 번 정도 녹화를 하는 강인과 이윤지는 ‘우결’에서 7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며 걱정한다. 과거의 ‘우결’이 리얼리티 쇼에 최대한 가까워지려 했다면, 지금의 ‘우결’은 가상의 면접 시험 같은 상황극을 보여준 MBC <도전 예의지왕>류의 ENG 확장판처럼 보인다. 김신영과 신성록이 실제로는 살지도 않는 집의 도배 문제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우결’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상대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가상의 설정에 몰입하는 ‘연기력’이다. 기존의 커플들이 연예계 활동을 이유로 연이어 하차, 그들의 ‘진심’이 가볍게 느껴지면서 ‘우결’은 ‘리얼’보다 상황 설정의 재미를 부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얼’에 대한 끝없는 집착

강인과 이윤지가 마치 MBC <만원의 행복>처럼 한정된 비용으로 살림살이를 구하고, 마르코가 수영 대회에 참여하며, 환희와 화요비가 결국 다 하지도 못할 1년 계획을 사진으로 찍는 등 제작진이 전보다 더욱 구체적인 미션을 제시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전진과 이시영이 결혼 예물을 두고 다투면서 심각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애초에 가상을 전제로 한 에피소드는 보다 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다. ‘우결’ 제작진이 ‘우결월드’라고 명명했듯, 이제 ‘우결’은 연예인이 가상설정 속의 부부가 돼 결혼 생활을 미리 체험하는 ‘가상체험관’이 된 셈이다. 그러나 ‘우결’은 여전히 ‘리얼’에 대한 끈도 놓지 않는다. 대학생 부부인 강인과 이윤지는 여전히 연예계 활동을 하고, 김신영과 이시영은 친부모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보여준다. ‘우결’ 속 출연자와 그의 실제 모습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과거 ‘우결’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없애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인기 가수 강인이 설정 상 돈이 없다는 이유로 쓰지도 않을 ‘한 달 생활비’를 걱정하고, 신성록이 필요도 없는 집안일을 안 하는 모습에 “한 대 치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김신영의 모습은 어색하게만 보인다.

이 때문에 ‘우결’은 ‘리얼’을 믿어주기엔 너무 가볍고, 가상의 에피소드에 몰입하기엔 프로그램이 강조하는 ‘리얼’이 걸리는 애매한 쇼가 됐다. ‘우결’에는 ‘우결월드’는 있어도, 그 세계를 일관되게 이끌 세계관은 없다. 오히려 옛 영광이 남긴 흔적과 현재가 뒤섞인 카오스에 가깝다. ‘우결’의 3기 커플에 전진과 정형돈, 김신영 등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활약한 연예인들이 중심을 잡는 건 당연하다.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감이 깨진 상황에서 ‘리얼’과 ‘가상’ 사이의 미묘한 톤을 유지하려면 출연자들의 연기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정형돈은 ‘우결’에서 사오리와의 이별, 개미 커플과의 동거 등을 통해 실제 자신과 ‘우결’ 속 캐릭터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정형돈과 태연이 다른 커플과 달리 가상 부부의 설정이 많지 않은 것은 아이돌인 태연과 ‘진상’이 캐릭터가 된 정형돈의 극적인 대비뿐만 아니라 정형돈의 ‘우결’ 재도전 자체가 이미 리얼리티를 확보해서다. 정형돈과 태연에 대한 반응에 따라 ‘우결’의 반등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이제는 다른 화분을 사야할 때

그러나 이들에 대한 반응과 별개로 출연자 개개인의 역량에 매달리는 ‘우결’의 현재는 이 프로그램에 뚫린 구멍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얼마 전 ‘우결’의 제작진이 “반응이 좋지 않은 커플은 곧바로 하차시킬 수도 있다”고 한 것은 일종의 고백처럼 보인다. 지금 ‘우결’은 출연자들을 쥐어짜는 것 외엔 프로그램을 끌고 갈 방법이 없다. ‘우결’에 필요한 건 ‘우결월드’나 ‘가상부부’ 같은 개념을 시청자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위한 안정적인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리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남는 건 리얼리티 쇼도 시트콤도 아닌 이상한 쇼뿐일지도 모른다. 알렉스가 ‘화분’을 불렀던 그 때를 생각하면 우울한 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화분의 꽃은 죽은 지 오래다. 이젠 다른 화분을 사야할 때다.
글 강명석

2008년 설 특집으로 선보인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의 파일럿은 신선했다. 좁은 오피스텔에서 알렉스가 화려한 만찬을 준비한 것을 본 장윤정의 뜨악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좋긴 하지만, 놀라움과 당혹감을 지울 수 없다는. 우결의 재미는 이런 것이었다. 별나라 사람들인 것 같던 연예인들이, 스튜디오에서는 보여줄 수 없던 인간미를 흘리는 것. 알렉스가 요리프로그램에서 음식솜씨를 자랑했다면, 크라운 제이가 무대에만 섰다면 달콤한 로맨틱 가이도, ‘블링블링’의 유머코드도 한국 예능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MBC <무한도전>을 통해 게으른 독신남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정형돈은 ‘우결’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리얼과 판타지 사이의 갈지 자

‘우결’의 흥망성쇠는 정형돈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프로그램의 인기와 극중 비중은 반비례 곡선을 긋고 있지만 그는 위기가 닥치면 제작진이 손을 뻗을 수 있는 구원투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논란을 낳았던 사오리와의 이혼은 ‘우결’의 현실성과 진실성을 제고하는 제물이 되었고, 그 안에서 보여준 나태한 태도는 30대 무뚝뚝한 가장의 표본이 되어 갈등과 재미를 담보했다. 그는 ‘우결’의 현실성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상황 반전을 위한 전천후 트러블메이커였다. 정형돈의 이력은 한 해에 결혼과 이혼, 또 재혼한 엄용수와 비견할 만큼 화려하다. 한창 주가가 오를 때 이혼하고 스튜디오 MC로 물러났다. 그곳에서 알순 커플의 러브라인에 손발이 오그라질 때마다 그는 비아냥거렸다. “알렉스는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재력을 갖게 되었나요?” 방식은 투박했지만 사귈 만한 사람들이 벌이는 연애를 부러워하는 지극히 일반인의 시선이다. 너무 감정이 과해서 간지러운 장면에서는 밉상을 부려 일부 시청자의 숨통을, 지지부진한 2기에서는 직접 객식구로 투신해 분위기를 살렸다.

현재 3기를 꾸려가는 제작진은 커플마다 핸디캡을 주며 기존 커플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커플이 태연-정형돈 부부. 객식구로 밀려났던 정형돈의 호출은 제다이의 귀환과 필적했다. 무려 ‘정형돈을 좋아하는 태연’이라는 판타지는 트렌디 드라마,와 다름 아니었다. 그는 어느덧 평강공주와 꽃보다 아름다운 처제들에 둘러싸였다. 제작진은 여전히 ‘리얼’을 강조하지만 그럴수록 ‘우결’은 더욱 판타지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문제는 ‘리얼’을 강조하는 한편 이 극단의 판타지를 정교하게 어떻게 조작해 5개월이 넘는 긴 흐름 속에서 지속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리얼리티가 판타지라는 걸 시청자들이 자각하는 순간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최근 이런 변화는 자명하게 보인다. 노골적인 줌인과 플래시 백, ‘무릎 팍 도사’의 웃음 호흡을 만들었던 정지화면과 효과음, 심지어 CG까지 많은 장치들로 승부를 걸었다.

정형돈의 판타지 프로젝트를 인정하라

순정을 바쳐 몰입했던 시청자의 마음은 한번 돌아서면 돌이키기 어렵다. 리얼을 표방했기 때문에 ‘우결’에 등장한 커플에 더욱 열렬했던 시청자들은 커플의 이별과 함께 관심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5~6개월짜리 결혼 혹은 연애는 아무리 잘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은 헤어짐’이란 결말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우결’의 후속 커플들이 그 어떤 판타지를 가지고 있어도 1기 커플들만큼 애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예전처럼 미용실의 주요 대화소재가 되기도, 다음 주 이 시간에 TV 앞에 모셔오기는 쉽지 않으리라. <아빠 뭐하세요?> 같은 시트콤처럼 가족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6~7년에 걸쳐 등장하고, 아역배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리얼이란 수식은 이제 떼어놓을 차례다. 대신 “평생 너의 핸드크림이 되어줄게” 같은 멘트가 달콤한 줄 아는 정형돈의 판타지 프로젝트라면 여전히 볼만하다.
글 김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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