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라드는 족보_최근의 방송 트렌드인 ‘오그라드는 매력’을 아주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던 가요계의 선구자들.

<매거진t> 시절부터 지금까지 칼럼을 연재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정체 모를 데자뷰를 경험하곤 하였다. 아마도 그 시작은 전진의 ‘WA’를 다루었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희열을 느끼며 원고를 작성하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그 독특한 쾌감을 그 전에도 경험해 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였을까? 기억하려 해봐도 도저히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 느낌을 그저 내가 착각한 것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괴상한 데자뷰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귀여니의 작품들에 대한 칼럼을 쓸 때도 그랬고 유노윤호의 프리스타일 랩에 대한 칼럼을 쓸 때도, 플짤 드라마 ‘발은 내 운명’에 대한 칼럼을 쓸 때도 그랬다. 한마디로 뭔가 오그라드는 원고를 쓸 때 그랬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매력을 아예 콘셉트로 들고 나온듯한 신인가수 ‘오리’의 무대를 볼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쯤 되니 궁금해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 데자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어떤 컬러풀한 이미지와 멜로디. 베네통 풍 파스텔 색상의 뽕 정장을 입은 청년들이 춤을 추고 있다. 노래의 후렴구는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어~♬’ 그래… 이건 바로…… 유레카!!!!!!!!!! 생각났다!!! 잼이었구나!!!!

태초에 잼이 있었느니라

그러니까 1992년 잼이 ‘나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들고 나왔던 그 시기부터 나는 이미 ‘오그라드는’ 엔터테인먼트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노이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잼만의 그 부끄러운 중독성! 초딩부 학예회 장기자랑 같은 댄스와 카메라를 집어삼킬 듯 한 멤버들의 날카로운 눈빛! 아, 지금 생각해도 오그라드는구나!! 그렇게 한번 기억이 떠오르자 내가 손발을 말며 열광했던 또 다른 수많은 가수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짙은 선글라스 뒤로 터프한 눈빛을 숨기고 ‘닭고기 아줌마~’를 열창했던 성진우 옹, 지누션 결성 이전에 캡의 길을 걷고 있었던 지누 형님,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샤우팅 댄스 머신 김경호 아저씨, 그리고 또 초기의 베이비 복스와 솔로시절의 탁재훈 옹까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이상한 매력을 지닌 그들의 노래와 무대를 감상하며 나는 창피함에 붉어진 얼굴로 또 얼마나 행복해했었는지 모른다.

최고가 아니었기에, 혹은 아주 잠깐 동안 빛나고 나서 변하거나 사라져버렸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나의 기억 속 히어로들. 오늘 칼럼은 그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가요계의 오그라드는 역사를 나름대로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정상의 스타들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인처럼 뭔가 안쓰러운 사람들에게 더 애정을 느끼는 분들께는 작은 선물이 될 수 있을듯하다. 웃음과 추억이 공존하는 우리의 오그라드는 역사, 지금부터 시작한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중독성 넘쳤던 선구자들

이현우 – ‘꿈’(1991년)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오그라드는 선구자의 타이틀을 거머쥘 자격이 있다. 교포 필 물씬 풍기는 동굴웅변 랩과 뻣뻣한 스케이트 댄스로 창피함의 극을 달렸던 이현우 할배! 91년도에 벌써 이런 하이-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었다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잼 – ‘난 멈추지 않는다’(1992년)
이현우 할배가 그 길을 열어놓기는 했지만 진정한 오그라드는 엔터테인먼트는 바로 잼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뭔가 비장한 전주와 가사, 거기에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에어로빅 안무와 깐돌이 리더 조진수 옹, 그리고 순박했던 윤현숙 누님과 뭘 해도 어색했던 그들의 전체적인 포스는 이후의 몇몇 후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오그라드는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니 그 대표적인 후계자가 바로 노래 중간의 아무 이유 없는 스크림을 계승한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되겠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사랑스러웠던 90년대의 최고의 어색댄스그룹. 심지어 정규 2집의 타이틀곡 제목마저 ‘어색한 느낌’일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성진우 – ‘포기하지마’(1994년)
당시 전국을 휩쓸었던 힙합바지의 열풍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조폭정장과 쫄 바지 패션을 끝까지 고수했던 성진우 옹. 나이트클럽에서 오부리 아저씨들과 열창해야만 할 것 같은 그가 주말 가요프로그램에 나타나 생뚱맞은 다리 찢기를 선보일 때, ‘듀스’는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던 X세대 가요 팬들은 그저 손발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R.ef – ‘찬란한 사랑’(1996년)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볼륨을 높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성욱의 성질 내레이션을 감상하도록 하자.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 내가 내 불행마저 감당할 수 없는데!!!’ (이하 생략)

베이비 복스 – ‘남자에게(민주주의)’(1997년)
‘야야야’와 ‘겟업’으로 시선을 받기 이전의 베이비복스는 오그라드는 엔터테인먼트의 절정을 달렸던 댄스그룹이었다. 특히 1집의 두 번째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웬만한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알지도 못하는 초! 레어 아이템으로써 그 오그라듦의 강도가 너무나도 심하여 감상하는 이의 관절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모두들 조심해서 보기 바란다. 노래 중간의 하이라이트인 비장한 선언문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고하노라! 여자를 울리는 자 여자에게 버림받으리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 그건 전설이 아니었다!’ 까지 모두 무사히 감상할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미 프로오글리스트!!!

이주노 – ‘무제의 귀환’(2000년)
새천년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댄스황제 이주노가 선보였던 퍼포먼스의 새로운 패러다임. 문제는 그게 너무 4차원에다 심각한데다 이주노 옹의 머리가 너무 커 보였다는…(퍽!) 어쨌거나 이래저래 그냥 묻히기엔 너무나 안타까웠던 오글계의 실험작. 감상하는 이들의 살갗에 소름을 돋게 해주는 오페라 보컬과 메탈기타 덕분에 웬만한 SMP도 부럽지 않았던 하드코어 댄스곡이기도 하다.

샤크라 – ‘한’(2000년)
‘가라 가라 갇혀 뽝 갇혀 싸랑안에 갇혀 뽝 갇혀, 커먼 컴~~~하아아~~~ 우~~~’ 특히 민망한 랩 부분이 인상 깊었던 샤크라의 데뷔 곡. 인도 스타일 콘셉트를 강하게 내세워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너무 과도했던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덕분에 몇몇 사람들에게는 ‘여자 품바 그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문희준 – ‘아낌없이 주는 나무’(2002년)
드디어 나왔다. 오늘날의 전진과 DJ쿠가 가능하도록 물꼬를 텄던 선구자 문희준 횽! 다들 잘 알다시피 희준 횽은 이때부터 록팬들과의 오랜 전쟁에 돌입해야만 했지만 그를 욕했던 사람들도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의 록에 대한 사랑이 장난이 아님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군대까지 다녀온 후에는 완전한 호감 캐릭터로 재탄생한 희준 횽. 하지만 솔직히 이때의 허수아비 퍼포먼스는 좀 깼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파이팅 희준 횽! 록에 대한 사랑도 변치말길 바래요!

김경호 – ‘NOW’(2003년)
샤우팅의 귀재 김경호 옹이 핑클의 원곡을 리메이크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노래. 그의 보컬솜씨 뒤에 숨어있던 놀라운 댄스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곡이다.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가슴이 뻥 뚫리면서도 엉덩이가 들썩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왜 하필이면 댄스냐고 딴지를 걸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타고난 무대 형 인간인 김경호 옹에게는 어떤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자 그런 불만들이 쑥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동방신기 – ‘TRI-ANGLE’(2004년)
그리고 오늘의 계보 마지막 주자는 트라이앵글 시절의 동방신기… 아흥, 오늘은 진짜 그냥 넘어가고 싶었는데 창민 횽의 성게머리와 분노세트가 자꾸 생각나서 어쩔 수 없었어! 용서해 주삼!!!

김종민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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