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어떤 걸까? 내 생각엔 역시 단발머리인 것 같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그랬고, <태양은 없다>의 이범수가 그랬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먼저 단발머리의 무서움을 내게 알려준 이가 있으니 바로 크리스토퍼 워큰이었다. 수많은 영화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그지만, 영화의 질을 떠나 제일 섬뜩했던 건(동시에 몹시 우습기도 했지만) 단발머리에 나이트가운을 입고 광기어린 돈세탁업자를 연기했던 <와일드 게임>(wild side)에서였다. 한 손엔 시가 다른 한 손엔 권총을 든 채로, 옆에 있는 애인이 질색팔색을 하든 말든 자신의 운전기사(실은 위장경찰)를 강간하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무섭고 웃겨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크리스토퍼 워큰의 연기의 한쪽 끝에 <와일드 게임>이 있다면, 다른 한쪽 끝엔 스파이크 존스가 연출한 팻보이슬림의 뮤직비디오 가 있다. 2001년에 나온 뮤직비디오인데다가 그 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우수 감독상 작품상 등등 6개 부문을 수상한 만큼 많이들 보셨겠지만, 혹시나 안 보신 분을 위해서 내용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 글을 쓰느라 다시 를 찾아서 봤다. 아아, 워큰 아저씨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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