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굳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범적이고 희생적인 어머니와 견줄 것도 없이, 그저 주변 내 친구들과 비교해 봐도 모성애가 떨어지는 엄마이지 싶다. 왜냐하면 아들 군대 갈 적만 해도 어떤 친구는 한참 전부터 서운한 마음에 밥맛이 뚝 떨어져 체중이 몇 킬로씩 줄었다 하고, 또 어떤 친구는 보내놓고 반년 넘게 우울증 증세로 고생했다 하거늘 나는 겨우 하루 이틀 눈물바람을 했을 뿐 이내 잘 적응했으니 말이다. 이럴 때면 마치 아이 떼놓고 훌쩍 하와이로 떠난 KBS <엄마가 뿔났다>의 소라엄마라도 된 양 아들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이렇듯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라 해도,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면서는 ‘나도 엄마는 엄마인가 봐?’ 하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모성애가 발동된 건 아니고, 주인공 준영(송혜교)이가 입고 걸치고 나오는 것들 중에 우리 딸아이에게도 사주고픈 것들이 어찌나 많던지 드라마 끝나고 난 뒤 어디서 파는 물건인지 찾아보느라 날밤 새운 날이 허다해서 하는 얘기다.

아무리 봐도 우리 딸 사주고 싶네

특히 어느 날 준영이가 하고 나온 소담스러운 모피 목도리는 자려고 누웠어도 눈에 아른거릴 지경이었는데, 다음 날 알아보니 소위 명품 브랜드라 하니 어쩌겠나, 마음을 접어야 할 밖에. 평생 모피에 마음이 흔들린 적이라곤 없건만 유독 송혜교 목도리만은 눈에 암암하니 이게 바로 ‘엄마의 마음’이 움직여서가 아니겠나. 더구나 아이에게는 당치 않게 과분한 물건이라며 마음을 접으면서도, 한편으론 내키는 대로 딸에게 척척 사줄 수 있을 재력과 윤리관을 동시에 지닌 극중 준영의 어머니(나영희)가 부럽기까지 했다. 아마 MBC <에덴의 동쪽>의 이동철(송승헌) 모친처럼 반듯하고 딱 부러진 어머니가 들으면 허황됨을 나무라며 쥐어박는 소릴 할 테지만. 준영이가 비록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전력 때문에 늘 퉁명을 부리고 쌀쌀맞게 구는 딸이긴 하지만, 딸이 원하는 걸, 딸에게 어울리는 걸 아무 때나 사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준영이의 엄마는 행복하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게 뭐 별 것이겠나. 뭔가 사주고 싶고, 해주고 싶고, 먹이고 싶은 게 사랑이 아닌가.

이런 걸 보면 바로 나 같은, 다소 허영심 있는 엄마를 노리는 협찬이나 PPL들도 꽤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린 아기를 둔 엄마의 마음을 겨냥한 연예인 협찬 효과는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몇몇 연예인들이 고가의 유모차나 침대의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리거나, 일상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넌지시 비추고 난 뒤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니까. 그러나 내놓고 유아용품 홍보하는 연예인을 보며 볼썽사납다며 삐쭉거려 놓고는 이번엔 내 아이 사주고픈 게 생겼다 하여 방송국 게시판에 누가 아예 판매처를 흘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심히 민망한 일다. 어쨌든 이와 같은 내 경험으로 볼 때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가 주는 거부감 대신 자연스러운 구매욕을 일으키기엔 협찬과 PPL이 훨씬 효과적임은 분명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협찬과 PPL의 허용 범위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게 문제다.

홍보와 광고 PPL 사이

얼마 전 MBC에브리원 <신해철의 스페셜 에디션>에서 가수 비가 패션브랜드를 런칭했다고 밝히는 걸 봤는데 인터넷을 뒤적거려 해당 브랜드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가하면 가수 이민우도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간간히 자신이 디자인한 모자를 홍보하기도 하고 몇몇 메이크업 아티스트들도 시연을 할 기회가 있을 적마다 자신의 이름을 단 화장품이 출시되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곤 하는데 이처럼 아예 화면에 해당 제품이 버젓이 등장했음에도 별 달리 제지를 받지 않는 게 시청자 입장에서는 의아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보면 드라마 PD 지오(현빈)는 단지 잠깐 실수로 상표가 노출되었다는 것 때문에 감봉 처분까지 받지 않던가.

차라리 테이프로 대충 상표 가리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대처 보다는 정당한 절차 밟아서 광고료 내고 홍보하는 편이 효율적이 아닐는지. 드라마 제작 환경도 열악하다는데 얼마짜리 물건이고, 어디에서 파는 물건인데, 홍보비 얼마 내고 어떤 장면에 쓰였다, 라고 아예 투명하게 밝히면 안 되냐고. 심의를 통한 규제라는 게 겉으로는 거대 자본가들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절차로 보이지만 규제 덕에 실제 홍보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듯 싶어서 하는 얘기다. 게다가 협찬과 PPL 과정이 투명하면 나처럼 나이 먹은 엄마가 시간 잡아 먹어가며 물건 찾아 삼만 리 안 해도 되고 좀 좋으냐고.

정석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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