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중요한 날만 되면 이성을 잃는 것일까? 왜 ‘나는 어떤 게 어울리나?’보다 ‘남들은 이럴 때 어떻게 입나?’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리하여, 왜 중요한 날이면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일까?

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을 가졌다. 눈도 크고, 코도 크고, 입도 크다. 문제는 이상한 방식으로 뚜렷하다는 것. 쌍꺼풀은 마치 쌍꺼풀 수술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사람처럼 졌고, 코는 백두산처럼 날렵하게 위로 오똑 솟은 게 아니라 한라산 능선처럼 둥글넓적하면서 웅장하게 솟았고, 입술은 ‘도톰’하지 않고 ‘두툼’하다. 그뿐이랴. 광대뼈는 불거졌고, 턱선은 강직하다. 좋게 말하면 기백이 느껴지는 얼굴이고 톡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한 눈에도 고집이 엿보이는 얼굴이다. 그렇다고 못 봐 줄 정도는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목선이 깊게 팬 브이넥 스웨터로 턱선은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고, 광대뼈는 옆 머리를 이용해 가릴 수 있다. 그런 다음 콧망울에 음영을 잘 넣어 벌어진 미간과 코의 웅장함을 가리면 간혹 한채영이나 김민을 닮았다거나 하는 소리도 듣는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

대체 왜! 누가 좀 말해 줘요

그런데 문제는 중요한 날만 되면 이토록 잘 알고 있는 나의 결점과 그 결점을 보완하는 방법들이 머리 속에서 깡그리 사라진다는 것이다. 괜찮은 남자와 소개팅을 하거나, 나 대신 예쁘고 어린 X이랑 결혼하는 옛 애인의 결혼식에 갈 땐 왜 내 자신이 송혜교보다는 얼굴로 웃기는 개그우먼에 가깝다는 걸 까맣게 잊는 것일까? 왜 그런 날은 꼭 터틀넥 스웨터에 손이 가고(터틀넥은 턱선을 더욱 강조하고, 냉면 그릇만한 얼굴을 세숫대야로 변모시킨다), 분홍색 볼터치로 광대뼈를 강조하고 싶어지고(예지원처럼 아담한 광대뼈에나 어울리지, 웅장한 광대뼈에 분홍색 볼터치는 ‘돼지발에 웨지힐’이다), 머리는 틀어 올리고 싶어지는 거냔 거다. 왜! 왜! 왜!

지난 주말엔 SBS <일요일이 좋다> ‘골드미스가 간다’를 보다 너무 가슴이 아파 채널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했다. 그 안의 골드미스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 탓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귀여운 체크 원피스에 암워머를 더해 오히려 어색한 옷차림이 된 장윤정, 발목까지 밖에 안 오는 데다 뚱뚱해 보이는 체크 레깅스를 신어 훌륭한 각선미를 웃긴 각선미로 바꿔버린 진재영, 시폰과 니트 소재 원피스에 투박한 부츠를 매치해 변두리적 센스를 자랑한 예지원…. 그 모두가 크리스마스 파티룩은 파티룩이되 평소보다 훨씬 못한, 그녀들 개개인의 이미지로 보자면 차라리 안 차려 입느니만 못한 룩이었다. 그녀들이 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이고, 이제 남은 의문은 이것뿐이다. 중요한 날을 앞두고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악수’를 두고 마는 이 병 때문에 우리는 골(올)드 미스가 된 것일까, 그게 아니면 골(올)드 미스기 때문에(‘이번엔 꼭 잘 해야 된다’거나 ‘이번 파티에선 꼭 내 짝을 만나리라’는 지나친 결의를 하는 탓에) 판단 중추가 마비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선후 관계를 따지기 힘든, 결국엔 선후관계를 따지나마나 ‘그게 그거’인 의문.

나도 잘하고 싶단 말이다!

만약 ‘은이 언니’가 맞선 볼 기회를 갖게 된다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입었던 레이스 블라우스나 H라인 스커트는 입지 않는 게 좋겠다. 그 두 아이템은 어찌나 배타적인지 평소에 그걸 잘 입지 않았던 사람이 입으면 한눈에도 어색해 보이니까. 메이크업은 눈을 강조하는 것보다(쌍꺼풀 수술의 흔적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피부만 화사하게 표현해 어려 보이는 얼굴의 장점을 강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키가 커 보이려면 상의와 하의의 컬러는 통일시키는 대신 상의의 이너웨어와 아우터는 대비되는 컬러로 선택하는 것이 좋겠고. 신봉선은 맞선 보던 날 좀더 화사한 옷을 입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검은색 재킷과 블랙&화이트 컬러 블록 원피스는 시크하긴 했어도 평범한 남자들에겐 차갑고 냉정한 여자라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 맞선 여러 번 보고 결혼한 친구들의 ‘간증’에 따르면 맞선 볼 땐 트위드 재킷이 ‘짱!’이라던데 장윤정이라면 트위드 재킷도 잘 어울리겠다. 목소리와 말투는 몰라도 선이 가는 얼굴 생김은 여성스럽잖아, 왜?

아 모르겠다. 요즘 자신감을 잃었다. 돌 잔치 하는 새댁처럼 머리 틀어 올리고 소개팅 갔다가(사실 미용실에서 돈 주고 한 머리였다) “턱선에 보톡스 한번 맞아보시죠” 라는 소리, 종아리 휜 주제에 스키니 진 입고 방송 녹화 갔다가(새로 산 거였다) “다리 선이 최대한 안 보이는 자세로 앉아 주세요”라는 소리나 듣는 주제에 말은 잘 한다, 싶다. 오늘은 쓸쓸하고 피곤하니 이쯤에서 안녕. 당신들이 그동안 내게 수도 없이 했을 그 말을 오늘은 내가 스스로에게 하면서 외로움의 골방으로 들어가련다. “븅~. 지나 잘하지.”

심정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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