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연말용 클리셰는 2008년의 연예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문화대통령과 월드스타가 컴백하고, 젊은 배우들은 광우병 파동에 분노의 목소리를 냈고, 연예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난을 이겨냈던 여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만만찮은 뉴스들은 2008년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전체 지형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0 FOCUS’의 두 번째 연말 기획은 올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계 소식들을 복기하는 ‘10 NEWS’다. TV 프로그램 혹은 코너 이름을 따서 분류한 2008년 대표 뉴스들을 소개하고, 이 소식들이 생산되고 소비됐던 방식에 대해 짚어본다.

“한 가수가 바지를 내리자, 한국이 숨을 죽였다.” 올해 초, 로이터 통신은 나훈아의 희대의 ‘퍼포먼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중장년층의 슈퍼스타와 몇 십살 차이의 톱스타 여배우, 그리고 거론하기 민망한 신체 훼손설 등이 뒤섞인 나훈아의 루머는 한 신문기자의 블로그에서 이니셜로 처음 언급된 직후부터 전국민의 관심사가 됐고, 결국 나훈아는 해명 기자회견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예순 하나의 거목은 기자회견에서 변명을 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을 ‘제압’했다. 나훈아가 기자회견 도중 허리띠를 풀며 루머를 ‘확인’시키려는 순간, 루머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중이 확인한 것은 슈퍼스타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였다. 나훈아는 이 퍼포먼스 하나로 순식간에 10대들마저 그 ‘포스’를 느끼는 백발의 슈퍼스타가 됐고, 그의 행동은 코미디 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와 CF에서까지 패러디됐다. 비슷한 시기에 구설수에 오른 아이비가 어떤 입장 표명도 없이 몸을 숨기는 사이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어 쓰면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과 비교해보면, 나훈아의 행동은 스타는 루머와 스캔들에도 스타답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예인 부부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이 계몽적일 수도 있다. 션과 정혜영 부부는 돌잔치 비용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부부동반 광고의 수익금을 기부하고, 가난한 커플을 위한 무료 결혼식을 기획하는 등 세련된 나눔의 태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사랑을 실천하고 나눔을 설파하는 이들의 생활은 최근 포토 에세이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들에 비하면 김장훈의 선행은 보다 철저하고, 처절하다. 월셋집에 살면서 40억 원 이상을 기부 해 온 김장훈의 인생은 3월 KBS <인간극장>을 통해 방송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심지어 빚을 내서 기부를 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기부천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그는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독도 바로 알리기 등의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전방위적인 선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선행이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문근영은 5년 동안 ‘사랑복지공동모금회’에 8억 5000만 원을 기부해 온 사실이 보도되면서 ‘국민천사’가 되었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색깔을 들먹이는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체 악플의 달인, 그분은 지 돈 만원 한 장 기부하신 적이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다리에 쥐가 나서 역기를 들어 올리지 못한 이배영이 바를 놓지 못하고 아쉬워할 때, 아마 TV 앞에 앉은 수많은 국민 역시 같이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어쩌면 2008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인들이 금메달 획득보다는 그 안의 드라마를 주목하며 본 최초의 올림픽일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마린보이’ 박태환의 자유형 400m 금메달 소식에 환호했지만 학습장애를 극복한 ‘펠피쉬’ 마이클 펠프스가 200m 경기에서 박태환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모습에도 박수를 보냈다. 시청자들이 최민호의 한판승만큼 왕기춘의 눈물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용대처럼 금메달 획득 후 스스로의 경기에게 만족해하며 윙크를 날리는 선수도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올림픽 스타를 보며 사람들은 아이돌 오빠에게 그랬듯 기록이 아닌 속마음을 궁금해 하는 팬덤을 형성했다. 실제로 MBC ‘무릎 팍 도사’에서 장미란이 “빨래를 널다가도 권상우가 나오면 TV 앞에 앉았다”고 밝히고, 최민호가 “동메달을 따니 주위의 시선이 싸늘했다”고 말하자 평소보다 1~2% 더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 이제 박태환, 장미란, 최민호 등이 CF에 등장해도 ‘헝그리 정신이 없다’는 식의 비난이 아닌, 하나의 재밌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스포츠와 스포츠 스타를 즐기는 새로운 법을 배웠다. 이제 스포츠는 승패와 기록의 싸움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연예인은 선천성 병역 기피증에 걸렸다’는 비아냥거림은 옛말이 될 것 같다. 1월 2일 동반 입대한 천정명과 노유민을 시작으로 11월 17일에 김동완이 32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소하기까지 공유, 하하, 강타, 양동근, 성시경, 에릭, 토니 안 등 수많은 스타가 현역 혹은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인원수와 개개인의 이름값도 대단하지만 드라마와 노래, 예능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면에서 1996년 군 제작 영화 <알바트로스>에 출연했던 차인표, 이정재, 이휘재 라인업을 능가하는 라인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강타와 양동근을 투톱으로 세운 뮤지컬 (지뢰지대)을 제작했고, 최근 국군방송 특집 공개방송에 노유민, 김재덕, 공유, 싸이를 출연시켜 웬만한 연예기획사 이상의 인원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입대 후에도 대중과의 접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연예인들에게 군 생활은 ‘잃어버린 2년’이 아니다. 오히려 천하의 왕비호조차 해병대에 입대한 이정에게 “괄약근에 힘주는 애들보다 100배 낫다”고 이례적 칭찬을 할 만큼 군필자에게 관대한 한국사회에서 병역의무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호감도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통과의례가 된 듯하다. 올해의 입대 러시 이상으로 내후년의 전역 러시에 관심이 가는 건 그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미인도>의 배우 김민선을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치면 연관검색어로 ‘청산가리’가 뜬다. 미국산 광우병 의심소 수입이 국가적 쟁점으로 떠올랐던 5월 초, 김민선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 밖에 이동욱, 김가연, 김혜성, 김희철 등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을 우려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SBS <일지매>에 출연하던 이준기는 촛불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며 이들의 행동은 “용기 있다”는 열렬한 지지 혹은 “경솔하다”는 비난 한가운데에 섰다. 과거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던 송백경은 광우병 파동 이후 “소가 넘어갔다. 소가 넘어가니 소는 운다. 소갔고 속았다”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연예인들의 정치적 입장 표현에 대해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은 8월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에서 “연예인은 공인이란 말을 너무 잘 사용하는데 공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무게로, 반드시 책임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김민선씨의 글도 허위사실로 판단된다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며 처벌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은 공인으로서 무엇을 책임지고 있을까?

대통령 이명박, 그분이 오셨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도 함께 오셨다. 지난 5월 광우병 문제를 다룬 ‘17년 후’ 편을 방송했다가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압력을 받았던 EBS <지식채널ⓔ>의 김진혁 PD는 3개월 후 정기인사에서 갑작스레 다른 팀으로 이동되었다. 시작은 미약해 보였지만 사태는 점점 창대해졌다. 7월 중순,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언론 특보를 지낸 구본홍 씨가 YTN 사장으로 취임했다. 노조는 즉시 ‘낙하산 사장의 출근저지 투쟁’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YTN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돌발영상>의 제작진들이 정직과 해임을 선고받으며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8월 초 KBS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었고 이병순 사장이 임명되었다. 이 사장의 취임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 수십 명이 9월 인사 조치에서 지방 발령을 받거나 징계를 당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띠었던 <생방송 시사 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가 별다른 이유 없이 폐지되었고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가수 윤도현, 진보 매체 <프레시안> 이사인 시사평론가 정관용 등이 KBS 프로그램에서 물러난 데도 여전히 논란과 추측이 무성하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중순부터 KBS 라디오를 통해 주례연설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들이 ‘TV를 순수하게 즐기는’ 것과는 상관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우리는 방송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앞에 지극히 무력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 번 변심했던 애인이 돌아와도 다시 사귀는 게 힘든 것만큼, 이미 훼손된 방송에 애정과 신뢰를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송일국의 팔꿈치는 그 때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올해 1월, 송일국을 인터뷰하려했던 김순희 기자는 인터뷰가 무산된 뒤 송일국이 자신을 팔꿈치로 쳐서 자신의 이빨이 부러졌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송일국이 “스치지도 않았는데 처음에는 전치 6주, 그 다음에는 전치 6개월이라고 했다. 설령 내가 이 일로 배우 인생이 끝나게 된다 하더라도, 나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맞대응을 하면서 송일국은 지난 1년여간 KBS <바람의 나라>보다 더 스펙터클한 법정드라마를 찍어야 했다. 송일국은 거짓말 탐지기, 사건 당시의 CCTV 조사, 각종 정황 및 증언 등을 거쳐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고, 김순희 기자는 현재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 돼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은 상태. 그러나 그 사이 송일국이 겪은 마음 고생은 매 회마다 납치와 폭행의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바람의 나라>의 무휼 못지 않았을 것이다. 최민수 역시 한 번의 법정 공방이 깊은 상처를 남겼다. 최민수는 어느 날 한 노인과 시비 끝에 그를 폭행하고, 흉기로 협박했으며, 차로 끌고 다닌 사람이 됐다. 하지만 결국 밝혀진 진술은 노인이 최민수와 멱살을 잡으며 실랑이한 끝에 전치 2주의 진단을 받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최민수는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때론 인기 스타일수록 자신의 진실을 증명하기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SBS <타짜>에서 주인공 고니는 마지막 도박판에서 돈도 따고 아버지의 복수도 이뤘지만 강병규에게는 전화위복을 위한 마지막 판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의 국고 낭비 논란 때문에 비난을 받는데다 KBS <비타민>에서도 하차했던 강병규는 11월 12일, 인터넷 도박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방송 데뷔 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가 불법 도박 사이트에 16억 원을 송금해 억대 도박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강병규의 소속사에서는 “고스톱도 못 치는 사람이다, 인터넷 상습도박이란 건 누명이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자신이 누명을 썼다는 사실에 왼쪽 손목이라도 걸 듯 자신만만했던 강병규는 10여 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후 혐의를 인정했다. 심지어 조사를 진행하자 송금한 돈의 액수는 16억이 아닌 26억이었고, 이 중 잃은 액수는 13억에 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재 강병규는 “인터넷 도박이 불법인줄 몰랐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도 없는 상황”이라고 선처를 부탁하고 있다. 차명계좌가 아닌 실명계좌로 돈을 부쳤다는 사실 때문에 실제로 선처가 이뤄질 확률이 높지만 이미 그는 도박으로 잃은 16억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 과연 그는 무엇을 걸고 명예회복을 위한 판을 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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