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은 있고, 강호동은 없다. 이것이 <10 매거진>의 2008년 ‘10 PEOPLE’에 대한 선택이다. 물론 인기와 영향력을 본다면 강호동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10 PEOPLE’은 ‘가장 인기 있는 10인’이나 ‘1등부터 10등’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10 PEOPLE’은 한 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만들어진 어떤 흐름들의 아이콘이자, 자기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활약을 보인 파워 피플들에 관한 정리다. 다시 말하면, ‘10 PEOPLE’은 자기 분야에서 아이콘의 위치와 대중적인 지지를 동시에 달성한 ‘10점 만점에 10점’들이다. 물론 강호동은 올해도 자신의 놀라운 역량을 ‘변함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 KBS <해피투게더>, SBS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 MBC <놀러와>를 모두 인기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무한도전>은 전국체전 참가를 넘어 오락 프로그램의 영화화까지 도전하며 새로운 포맷을 실험하고, 박미선을 버라이어티 쇼로 복귀시킨 <해피투게더>는 중장년 층 오락 프로그램의 포문을 열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된 올해, 유재석은 강호동과 함께 오락 프로그램의 유이한 ‘1인자’였고, 최정점의 위치에서 업계의 흐름을 주도했다.

아이돌, 팬덤, 스포츠의 무경계 지대

이는 인기 아이돌 그룹들 중 원더걸스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돌 그룹은 올해 가요계의 핵심 키워드였고, 원더걸스는 올 해 ‘So hot’과 ‘nobody’를 연이어 히트 시켰다. 하지만 원더걸스의 영향력은 오히려 아이돌 그룹 바깥에 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그들의 노래는 이른바 ‘후크 송’(사람들을 단 번에 사로잡는 멜로디가 있는 노래)으로 불리며 가요계의 가장 큰 유행 코드가 됐고, 그들의 춤은 10대부터 회식자리의 회사원들까지 모두 따라했다. 원더걸스는 아이돌이 아이돌 팬덤을 넘어 전 세대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 굳이 누군가에게 ’국민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다면, 그 주인공은 김연아다. 김연아는 이제 단지 운동선수가 아니라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손짓 하나에도 ‘연기’를 한다는 김연아의 무대는 어떤 가수의 콘서트보다 큰 환호를 받았다. 김연아가 SBS <더 스타쇼>에서 부른 ‘만약에’는 그대로 디지털 싱글로 팔렸고, 그는 조만간 화장품 CF에 출연한다. 이 놀라운 소녀의 등장은 스포츠 팬덤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기도 했다. 김연아의 팬들은 김연아의 성적에 매달리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김연아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피겨 스케이트의 재미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피겨스케이트 시즌 개막을 알리는 오프닝 영상을 스스로 제작하고, 유망한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국제 대회 출전을 위해 러시아 빙상 협회에 전화를 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을 통해 스포츠는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능동적인 즐거움의 대상이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이 팀의 팬덤은 스포츠가 아닌 스포츠 팬덤이 만들어낸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사회 현상’으로 확대시켰다. 부산에서는 야구경기가 아닌 야구경기를 보는 팬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롯데 자이언츠가 부산에서 경기를 하는 날이면 팬들이 스스로 만든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스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미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음악과 드라마를 즐기듯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롯데자이언츠의 팬덤을 시작으로 드러난 프로야구 팬덤은 매스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은 곳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젊음을 무기로 삼지 않는 노련한 여성주자들

장미희와 박미선 역시 올 해 새롭게 발견된 세계의 대표자들이다. KBS <엄마가 뿔났다>에서 장미희는 자식이 있지만 ‘누구 어머니’가 아니라 모두가 어려워하는 가정의 권력자였고, 나이 먹음을 인정하되 자신의 아름다움 역시 의심치 않는 여성이었다. 그가 <엄마가 뿔났다> 뒤에 CF에서 회사의 깐깐한 중년 간부로 출연한 것은 장미희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보여준다. 장미희는 한국의 50대 여성이 여전히 아름답고, 자기만의 개성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중심에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박미선은 장미희와 정확히 정반대의 방법으로 TV에 새로운 세상을 선사했다.

장미희가 중년 여성의 전형을 깬 새로운 캐릭터였다면, 박미선은 버라이어티 쇼에서 다루지 않았던 평범한 중년 여성의 세계를 보여줬다. 그는 <해피투게더>에서 낭만이 사라진 건조한 부부 생활을 토크의 소재로 삼았고, 여전히 멋진 남자에게 끌리는 중년 여성의 심리를 솔직히 드러냈다. 주부들의 수다가 빛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세바퀴’와 유부녀 연예인들이 젊은 남성 연예인의 집을 방문하는 MBC <오늘밤만 재워줘>의 등장은 박미선의 화려한 귀환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세바퀴’와 MBC <명랑히어로>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토크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박미선의 역량은 뛰어난 진행 능력을 가진 여성 메인 MC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버라이어티 쇼, 아이돌이 접수하다

전진과 이효리 역시 TV 오락 프로그램의 새로운 경향을 대변하는 또 다른 아이콘이다. 이들의 전성시대는 오락 프로그램이 더 이상 개그맨 출신 MC와 패널들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선언이다. 아이돌의 외모와 끼에 버라어이티 쇼에 필요한 유머감각을 함께 가진 이 ‘사기 유닛’들은 버라이어티 쇼와 가요 프로그램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이효리와 대성, 김종국이 고정 출연하고,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비가 거쳐간 ‘패밀리가 떴다’는 이 새로운 ‘아이돌 월드’의 완성판이다. 하지만 전진과 이효리가 예능계의 아이콘이 된 방식은 다르다. 전진을 버라이어티 쇼에 안착하게 만든 것은 그의 예능 감각이지만, 그가 <무한도전>에 입성할 수 있었던 계기는 인터넷 UCC ‘전스틴’이었다. ‘전스틴’과 ‘빠삐놈’ 등의 UCC를 통해 인터넷의 대세가 되고, 이것이 해당 연예인의 인기에 도움을 주는 과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인터넷과 TV 엔터테인먼트가 만나는 새로운 방식이다.

반면 이효리는 현재 한국에서 자신만이 가진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10 minutes’가 거리를 휩쓸고 있을 당시, 이효리는 ‘효리 스타일’을 유행시킨 트렌드 리더였고, 동시에 <해피투게더>에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던 귀여운 MC였다. 이효리는 3집 앨범의 타이틀 곡 ‘유고걸’과 ‘패밀리가 떴다’로 그 시절의 매력을 ‘서른 살 이효리’에 알맞게 리모델링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동생들이 따라하고 싶은 스타일과 태도를 가진 롤모델이고,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30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망가질 줄 아는 노련한 MC다. 현재 한국의 여가수 중에서 빅뱅의 탑과 키스를 하는 것이 어울리고, 그것이 여성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도 있는 존재는 이효리 뿐이다.

길이 된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

그리고 김병만과 김명민은 자신의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다. 타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의 침체 속에서도 KBS <개그콘서트>는 여전한 인기를 누렸고, 김병만의 ‘달인’은 <개그콘서트>의 든든한 지지대다. 코너의 콘셉트와 전개 방식은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천연덕스러움을 잃지 않는 김병만의 연기력은 ‘달인’이 여전한 재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아무리 다 알고 있어도, 때로는 와사비를 입 안 가득 넣는 김병만의 개그에는 웃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우리가 김명민의 연기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MBC <하얀거탑>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명민은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또 한 번 해석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에 정면으로 부딪쳐 김명민이 곧 ‘강마에’가 되는 경지를 보여줬다. 김명민은 연기가 오케스트라의 연주 못지않은 ‘퍼포먼스’가 될 수 있음을, 배우가 오직 연기만으로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김명민은 ‘달인’ 한 사람의 힘이 하나의 흐름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자와 그 흐름을 자기 것으로 만든 자, 그리고 그 흐름의 정점에 서 있는 자의 기록은 곧 지금 한국 TV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도다. 2008년 ‘10 PEOPLE’은 그 지도를 통해 찾은 몇 가지 길에 대한 첫 번째 정리다. 2009년에는 또 누가 우리에게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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