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댄스. 버라이어티 쇼. 이 세 단어는 올해 국내 가요계의 대표적인 경향들이다. 가수가 이름을 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는 것이었고, 그중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진 가수들은 아이돌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간단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의 노래를 들고 나와 성공했다. 그래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올해 가요계의 이변이었다. 백지영이 부른 이 발라드는 가요계의 흐름을 역행하며 각종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 의외의 승리에는 ‘총 맞은 것처럼’의 작곡가 방시혁이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작곡가로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10여년 동안 꾸준히 히트곡을 냈고, 다수의 CM송을 히트시키면서 한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성공한 작곡가가 됐다. 그에게 ‘총 맞은 것처럼’의 성공 비결과 작곡가로서 바라본 2008년 가요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축하한다. ‘총 맞은 것처럼’이 대박났다. (웃음)
방시혁
: 그러게, 왜 떴지? (웃음) 솔직히 ‘총 맞은 것처럼’을 만들 때는 무척 절박했다. 백지영의 지난 앨범이 아주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었고, 시장 분위기는 댄스음악이거나 아이돌이거나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야 성공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니까. 요즘에는 아이돌이 댄스 음악을 하면서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고. (웃음) 그런 현상 자체는 시대의 흐름을 따른 거라고 보는데, 이러면 작곡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좋은 곡을 써도 히트시키기 어렵게 된 거니까. 그래서 백지영과 처음 작업할 때는 무슨 곡을 써도 10위권 안에 드는 정도가 가장 성공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사랑에 대한 충격이 총 맞은 것과 비슷한 강도 아닐까”

당신 말대로 백지영은 버라이어티 쇼에 고정 출연하지도 않고, 아이돌도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댄스 대신 발라드를 작곡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나.
방시혁
: 솔직히 처음에는 댄스곡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더라. 원더걸스가 활동하는 시대인데 백지영이 그 시장에서 같이 경쟁하는 게 맞나 싶었고, 앞의 두 장의 앨범에서 발라드를 하던 백지영이 댄스를 하는 걸 대중이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발라드를 만들었다. 다만 요즘 발라드처럼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다.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나.
방시혁
: 나는 ‘총 맞은 것처럼’을 ‘모던 신파’라고 부르고 싶다. 통속적이고 신파적이지만, 그걸 재해석하고 싶었다. 우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발라드 대신 백지영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백지영은 매우 독특한 가수다.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인기 있고, 댄스 가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발라드 가수로 인식된다. 그리고 스캔들로 바닥도 경험해 봤고, 이런 백지영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가사로 임팩트를 주고 싶었는데, 어느 날 ‘대가리 총 맞았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사랑에 대한 충격이 총 맞은 것과 비슷한 강도 아닐까 하는. 그러다 머리에 총 맞은 걸 가슴에 총 맞은 걸로 바꿨고, 그 때부터 가사를 풀어낼 수 있었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처럼 이 노래는 단도직입적이다. 일반적인 발라드의 편곡을 지우고 곧바로 백지영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한다.
방시혁
: 맞다. 나는 발라드를 소구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 발라드가 너무 질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댄스 음악 같은 구성 방식을 생각했다. 처음부터 곧바로 테마를 주고, 그걸 반복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후렴구로 가고. 여기에 힙합적인 리듬을 사용해서 요즘 트렌드의 댄스 음악과 비슷한 사운드를 내고. 발라드 음악이긴 하지만 곡의 스타일은 비욘세의 ‘If I were a boy’같은 곡을 들으면서 영감을 얻었다.

백지영의 보컬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후렴구에서도 거칠지는 않지만 매우 밀도 있는 목소리라 임팩트가 컸다.
방시혁
: ‘총 맞은 것처럼’을 기존 발라드처럼 오케스트라를 동원하거나 해서 부드럽게만 간다면 그게 총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날까? (웃음) 눈물 흘리고 이별하는 상황에서 편안한 느낌이 드는 사운드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지영의 보컬도 최대한 생생하게, 바로 옆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잡았다. 그래야 감정에 몰입되니까. 한국의 대중들은 BGM처럼 적당히 들을 수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음악이 백지영의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어 통한 것 같다.

대중들의 감성이 조금은 변한 것 아닐까. ‘총 맞은 것처럼’이 성공하자 대중이 발라드로 돌아갔다는 기사도 나오던데.
방시혁
: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장르 이전에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중요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알리샤 키스의 내한 공연에 갔었는데, 공연 내내 옷 한 벌만 입고 노래를 불렀다. 이동도 없고, 조명도 그대로다. 알고 보니까 전세계 공연을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 공연에서 최대한 음악만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그렇게 충격적인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음악이 이렇게 좋은 건데, 내가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진정성을 따지기엔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매스미디어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방시혁
: 그렇다. 인터넷이 미디어 역할을 할 것 같았는데, 올해는 TV가 그 인터넷을 지배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들은 TV 버라이어티 쇼 본걸 얘기하고, 아이돌이 인기를 얻고. 그래서 노래들이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쪽으로 간 것 같다. 미국에서도 작년에 성공한 노래들이 말장난을 치는 가사를 담은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 한국에서도 그랬다. 물론 나도 한참 발라드만 잘 되다 ‘Tell me’나 ‘거짓말’이 잘 됐을 때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그 비슷한 유형의 노래들이 쏟아져서 아쉽다. 시장 전체가 한 쪽으로 편향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가수가 누가 됐든 대세에 따라 듣는다는 얘기니까.

이런 상황이 당신 같은 작곡가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나.
방시혁
: 솔직히 나는 다른 작곡가들에게 비해 덜 절박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광고 시장에 자리를 잡기도 했고, 과거에 만든 곡들의 저작권료도 들어오고. (웃음) 하지만 주변에서는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음악대신 대형 기획사의 시스템이 더 중요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지니까. 아무리 일류 작곡가라도 가수의 타이틀 곡을 써야 먹고 살 수 있는데, 요즘 대형 기획사에서는 자체 프로듀싱 시스템을 가져서 외부의 작곡가들에게 곡을 많이 주지 않는다. 음악이 비즈니스로서의 아우라를 파는 거지만 기본적으로는 음악을 파는 건데,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건 문제가 있다.

광고 음악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달라 송’ 등 CM송을 작곡한 걸로 알고 있는데.
방시혁
: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했다. CF 음악은 속된 말로 속여먹는 재미가 있다. (웃음) 이게 광고라는 사실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노래로 접근해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광고 이미지를 주입시키다 그들이 싫어할 수 없을 만큼 음악에 익숙해졌을 때 광고라는 걸 공개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처음 몇몇 곡이 성과를 얻으면서 내가 직접 카피나 인터넷 마케팅을 결정하는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만 하기에는 힘든 상황 아닌가. (웃음)
방시혁
: 그 점에서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신인 작곡가들은 곡을 파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기 마련인데, 나는 신인 때 JYP에서 활동하면서 진영이형(박진영)이 늘 돈을 줬고, 옆에는 김형석이라는 뛰어난 뮤지션이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심지어 진영이 형은 대중적인 성격을 지키는 선 안에서 심지어 니가 좋아하는 미국 음악 같은 멋있는 것만 만들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런 걸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

“방시혁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JYP시절 당신은 god의 ‘Friday night’이나 비의 ‘I do’처럼 세련되고 트렌디한 느낌의 곡들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난 1~2년 사이에는 임정희의 ‘사랑아 가지마’나 ‘총 맞은 것처럼’까지 발라드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방시혁
: JYP에 있으면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다. 진영이 형이 늘 곡을 맡기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그만큼 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거기다 호황이던 시절이라 국내에서 가능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아예 미국처럼 스튜디오를 통째로 빌려서 세션에게 가진 장비를 모두 가져오라고 한 다음 원하는 작업을 다 하기도 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히트곡도 만들었고. 그렇게 실컷 하고 나니까 질려버렸다. 만약 내가 돈을 더 벌고 싶다거나 하는 거였으면 진영이 형이 “그래도 계약은 지켜라”라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재미가 없어, 싫은 음악을 할 수는 없잖아”라고 하니까 그냥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진영이형하고 임정희를 데뷔시키고, 그 후로는 계속 뽕 발라드 같은 음악만 했다. 나도 한국인의 피를 끓게 만드는(웃음) 음악을 만들고 싶었달까. 그런데 해보니까 이런 음악은 안 되겠다는 걸 알았다. (웃음)

‘총 맞은 것처럼’은 그 과정을 다 거쳐서 나온 곡인 것 같다. 트렌디한 사운드를 입힌 ‘모던 신파’니까. (웃음)
방시혁
: 그런가? (웃음) 솔직히 요즘에는 아무 생각 없이 쓴다. 예전에는 시장 분석도 하고 해외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듣고 분석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더 이상 분석하지말자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시 빌보드 음악을 1위부터 50위까지 다 듣는다. 나는 원래 빌보드 키드라 차트를 외우다 시피 했는데, 이 일을 하면서 그러지 못했다. 요즘 다시 그렇게 음악을 듣는다. 물론 청자로서는 내 곡이 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데 신경 쓴다. 예전에는 그걸 곡을 만들면서 했다면, 이제는 만들 때는 내 맘대로 만든다. 다만 요즘의 트렌드에 대한 감각은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내가 늙었다는 거니까.

작곡가로서 한 지점을 통과한 것 같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 작곡가로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방시혁
: 대표곡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히트곡은 꽤 있는데, “이 작곡가는 뭐” 하는 곡이 없었다. 지금은 ‘총 맞은 것처럼’이 그런 히트곡인 것 같은데, 지나면 또 부족하게 느껴질 것 같다. 나는 늘 내 곡이 히트하면 이건 내 곡보다는 가수 때문이야, 뭐 때문이야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곡을 만들고. 아마 계속 그럴 거 같다. 내가 제작한 가수가 그런 히트곡을 부른다면 더 좋을 테고. 그리고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상 한 번 타보는 거? 하하.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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