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T.O.P) : 아이돌이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랩을 했다. 아이돌이다. 하지만 스스로 프로듀싱이 가능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다. 아이돌이다. 하지만 수트가 잘 어울린다. 아이돌이다. 하지만 거미, 엄정화, 지아 등 여가수들의 피처링을 자주 한다. 아이돌이다. 하지만 이병헌과 김태희 주연의 블록 버스터 드라마에서 킬러 연기를 소화할 예정이다. 아이돌이다. 하지만, 이효리에게 키스했다(!) 아이돌이되 아이돌의 영역 바깥을 건드리던 아이돌. 그가 이제 여자들에게 샤방샤방한 꽃미남 대신 ‘남자’로 보이는 아이돌의 시대를 열고 있다.

탑 (T.O.P)
탑 (T.O.P)
빅뱅 : 탑이 소속된 5인조 남성 그룹. 최근 아이돌 그룹과 달리 프로듀서-래퍼-보컬 등 각자의 분야가 뚜렷한 그룹. 그러나 과거 아이돌 그룹들의 포지션이 기획사에 의해 인위적으로 나눠진 것과 달리, 빅뱅은 멤버들의 특성이 활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특징. 지 드래곤은 ‘거짓말’을 비롯한 빅뱅의 히트곡들을 작곡하고,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며 스스로 프로듀서로 인정받았고, 태양과 대성, 승리 역시 각자 솔로 앨범과 버라이어티 쇼 출연 등으로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말 그대로 ‘All for one, One for all’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그룹. 탑은 빅뱅에서 말 그대로 ‘엣지’가 있는 래퍼의 포지션을 갖고 있다. 탑이 곡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거짓말’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탑은 빅뱅의 앨범 타이틀곡에서 곡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강한 인상에 굵은 목소리의 랩, 그리고 아이돌이면서도 무대 위에서 수트와 마스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그의 스타일은 빅뱅에 보다 강한 임팩트를 주고, 더불어 좀 더 성숙한 느낌을 부여한다. 빅뱅에서 함께 랩을 맡고 있는 지 드래곤이 빅뱅의 음악과 스타일을 전체적으로 조율한다면, 탑은 그것에 더욱 강렬한 느낌을 남기는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이는 빅뱅이 기존 아이돌 그룹 시장 바깥에 있던 대중들을 끌어들인 이유 중 하나다. 그가 빅뱅의 멤버 중 이효리와 키스를 하는 역할을 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탑은 빅뱅에 대해 “내 힘의 원천”이라 말한 바 있다. 표현은 잘 못해도 자신이 힘들 때마다 쑥쓰러워하면서도 자신에게 격려를 하는 멤버들에게 감동을 많이 받는다고.

레드락 : 래퍼. 탑이 레드락의 뮤직비디오 ‘Hello’에 출연했다. ‘Hello’는 크게 히트하지 못했지만 탑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었다. 그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수트를 입고, 야구방망이로 배신한 연인의 차를 부순다. 물론 이전에도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뮤직비디오에서 반항적인 연기를 하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탑은 ‘Hello’에서 실제로 삭발을 감행했고, 레드락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래퍼였으며, 탑 역시 10대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여기에 스모키 화장을 한 것 같은 그의 다크서클과 날카로운 얼굴은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아닌 거리 아이들의 공격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랜 기간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통해 숙련된 아이돌이 거리의 아이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아이가 아이돌이 된 것이고, 아이돌이 성숙한 이미지로 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른의 모습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남자가 아이돌이 된 것을 보여준다. 이런 탑의 이미지는 거리에서 삭발한 모습으로 비트박스를 하는 ‘SK텔레콤’ CF를 통해 보다 많은 대중에게 알려졌고, 여기에 ‘거짓말’ 등의 랩이 더해지면서 탑은 아이돌이면서 다른 가수의 랩 피처링이 어색하지 않은 래퍼가 될 수 있었다.

원더걸스 : 5인조 여성 그룹. 빅뱅과 함께 서로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탑이 원더걸스의 소희, 선예와 함께 MBC <음악중심>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탑은 빅뱅의 결성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서 늘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캐릭터로 소개됐고, 빅뱅 데뷔 당시에는 탤런트 윤문식의 성대모사로 “아이돌이 처음부터 망가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불가능은 없다’에 잠시나마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기에 윤문식의 성대모사를 제외하면 오락 프로그램에서 그의 성적은 좋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성격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미엔 라이스의 음악을 좋아하며, 최근 과로로 쓰러졌을 당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침과 저녁에 문자로 하루를 마감한다고 말할 만큼 감성적인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탑의 팬들은 그에 대해 “늑대의 외모에 양의 감성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돌답지 않게 망가지거나, 아이돌답지 않게 우울하거나. 어떤 쪽이든 ‘엣지’ 하나는 있는 듯.

양동근 : 탤런트 겸 래퍼. KBS <아이 엠 샘>에서 탑과 함께 출연했다. 당시 탑은 언제나 “스태프와 연기자들 한 분 한 분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양동근을 보며 강한 인상을 받았고,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잘 못하는 자신에게 양동근이 먼저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고 한다. 양동근과 탑이 촬영을 쉴 때마다 프리스타일 랩을 한 것은 유명한 사실. 그러나 <아이 엠 샘>은 양동근과의 친분만을 쌓은 작품은 아니었다. 비록 작품은 대중적으로 실패했지만, 탑이 연기한 채무신의 캐릭터는 이후 탑이 갖게 될 이미지의 상당 부분을 담고 있었다. <아이 엠 샘>에서 채무신은 싸움 잘하고, 자주 심각한 표정을 짓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동시에 그런 캐릭터의 전형을 벗어나는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는 평소에는 건실하게 공부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아주머니들에게 채소를 팔며, 마지막회에서는
여장
을 하며 코믹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한다. 자칫하면 허세 가득한 마초의 이미지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탑의 모습에서 기름기를 빼는 방법을 보여준 셈. 실제로도 탑은 빅뱅이나 자신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들에서 계속 폼을 잡기 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무게감을 덜어내기도 한다.

엄정화 : 가수 겸 배우. 탑이 엄정화의
‘D.I.S.C.O.’
에 피처링을 했다. ‘D.I.S.C.O.’는 가수로서 엄정화의 대중성을 되찾게 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지금 탑의 이미지를 완성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여자친구의 나이는 상관없다”고 말하던 탑은 수트를 입고 엄정화와 한 무대에 서면서 자신이 ‘누나’들과 함께 서도 ‘동생’보다는 ‘남자’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또한 엄정화와 함께 찍은 화보는 그가 아이돌 팬덤 바깥에서도 성숙한 남자로서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로 어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D.I.S.C.O.’는 래퍼로서 탑의 개성을 대중에게 알렸다. 탑은 자신이 작곡한 솔로 곡 ‘Bigboy’에서는 굉장히 강한 톤의 래핑을 선보이며 공격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빅뱅의 곡에서는 곡의 분위기에 따라 이미지를 달리하고, 여성 가수의 곡에서 남성 래퍼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D.I.S.C.O.’에서 탑이 보여주는 건 빅뱅에서의 강하거나 활동적인 랩이 아니라 슬쩍 미소를 흘리며 엄정화와 어울리는 매끈하고 바람기마저 있는 남자의 캐릭터다. 아직 솔로 활동을 하지 않기에 래퍼로서 그의 완성도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곡이 전달하는 스토리라인과 함께하는 뮤지션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연기’가 가능한 것은 탑이 여러 곡에서 ‘엣지’를 남길 수 있었던 이유일 듯.

양현석 : YG엔터테인먼트의 총 프로듀서. 혹은 보스. 혹은 큰 형님. 그는 빅뱅을 결성 과정부터 다큐멘터리를 찍어 멤버 각자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만들었고, 싱글과 미니 앨범 등을 통해 빅뱅이 끊임없이 활동 하도록 했으며,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과 대성의 버라이어티 쇼 고정 출연 등 개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다른 매니지먼트사에게 일반적인 것들이었지만 YG엔터테인먼트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들이었고, 여기에 오랜 시간동안의 트레이닝과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팀의 음악적 경쟁력이 더해지면서 YG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대중적인 아이돌 그룹이 탄생했다. 그만큼 빅뱅은 YG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분기점이 됐다. 그러나 이는 YG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빅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치솟았고, 멤버들에게는 파파라치가 붙었으며, 루머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반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양현석이 직접 소속 가수 관련 소식을 올리는 홍보 방식은 그 큰 관심에 대처하기에는 그 속도가 느리다. 과거에는 ‘YG패밀리’로 불릴 정도의 단단한 팬덤을 결속시키던 역할을 하던 방식이 빅뱅에 이르러서는 문제점을 함께 노출하고 있는 것. 탑이 스케줄이 겹쳐 과로로 쓰러진 것이 자살설로 와전된 것에는 언론 보도 직후 YG엔터테인먼트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로 꼽힌다. 또한 탑은 빅뱅과 <아이 엠 샘>의 출연을 하느라 체중이 6Kg 정도 빠졌었고, 일본 활동 중에도 일본과 한국을 왕복하며 <음악중심> MC를 했으며, 지금도 빅뱅 활동과 드라마 준비를 함께 하고 있다. 한 때는 가수들의 얼굴을 너무 안 보여줬던 YG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이례적인 일. 이젠 사장님이 애들 좀 쉬게 해줄 때가 된 걸지도.

이효리 : 10대 시절부터 ‘육오걸(6X5)’이 될 때까지 ‘10분’이면 모든 남자(심지어 여자도)를 유혹할 수 있다는 ‘유고걸’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톱스타. 그리고 2008 MKMF에서 탑과 키스하면서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가수가 무대 위에서 키스를 하는 것도 희귀한 나라에서 아이돌 연하남과 아이돌 그룹 출신 연상녀 가수의 키스는 말 그대로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 이 사건으로 탑은
“당신을 위해 랩을 해서 데뷔를 할 거라오”라던 자신의 소원을 푸는 동시에, 아이돌의 마지막으로 남은 금기였던 여성 연예인과 무대 위에서의 스킨십까지 뛰어넘었다. 아이돌이면서도 어른스럽고, 아이돌이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가 이제는 ‘나쁜남자’의 미소를 지으며 연상에게 키스하는 남자친구의 이미지까지 갖게 된 것. 이 ‘퍼포먼스’를 통해 탑은 자연스럽게 아이돌의 인기를 가진 성인 스타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그것은 그의 팬의 말대로 그저 바라보는 꽃같은 아이돌이 아니라 기어이 사귀어야 할 것 같은 ‘남친 아이돌’의 탄생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솔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인 역량만 증명한다면, 어쩌면 새로운 아이돌 캐릭터의 시작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아이돌이고, 래퍼이며, 남자라니!

Who is next
탑과 함께 SBS <아이리스>에 출연하는 이병헌과 ‘불멸의 사랑’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김정은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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