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은 아직 이름보다 캐릭터에 대한 수식어로 더 익숙한 배우다. 어느 이동통신 광고에서의 ‘천지창조’나 지난 해 여름 출연한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와플선기’,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앤티크>에서는 ‘마성의 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를 조금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순정만화형 미남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KBS <바람의 나라> 촬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재욱과 함께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다.

그렇다면 어떤 집단에 있을 때 소속감을 느끼나요?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처음 건너왔을 땐 굉장히 큰 혼란이 있었을 텐데, 그걸 겪고 난 뒤로 자라면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고 편하다고 느꼈는지 궁금한데요.
김재욱
: 그런 걸 생각하기엔 제가 한국에 온 시점부터 환경이 너무나 따뜻했어요. 제가 일본에 살 때까지만 해도 80년대 중후반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했거든요. 태어나자마자 일본에 가서 살며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저한테는 가족 아니면 유치원 밖에 없었는데, 가족은 물론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 줘요. 하지만 유치원에 가면 저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따돌림을 당한 거죠. 그래서 전 가족 이외의 타인이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는 게 당연한 아이였어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왔는데, 제가 가만히 있어도 애들이 모이는 거에요. “너 일본에서 왔다며? 일본말 좀 해 봐” “일본에서 신기한 장난감 많이 가져 왔겠다. 너희 집 가서 놀아도 돼?”하면서. 그래서 나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 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만, 커가면서 생각해보니 그랬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굉장히 따뜻하고 평화롭게 자라온 셈이에요.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제일 큰 변화”

2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아직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시장에 들어왔으니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충돌이 생기지 않을까요?
김재욱
: 충돌은 이미 있어요. 그런데 그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부딪히는 거예요. 전 ‘해야 할 일’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의무감으로 어떤 일에 매달려 본 적도 없고. 단지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있는데 어디에 시간을 더 투자할지, 이 시간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가 제 의지만으로 되기에는 제가 이미 사회에 나와 있으니까 그 밸런스를 잘 잡고 싶은데 확신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어쨌든 선택을 할 때는 솔직한 제 마음의 소리에 따라요. ‘지금 이 시나리오는 안 하면 후회 한다’ 같은.

지난 해 여름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뭔가요.
김재욱
: 연기에 대한 욕심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생겼어요. 재미를 안 거죠. 연기라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뭘 얻을 수 있고 뭘 느낄 수 있는지를, 다는 아니어도 어설프게나마 느낀 작품이니까. 사실 <커피프린스 1호점> 때는 제가 연기를 너무 못했어요. 너무 못했고,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정말 열심히, 음……‘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제일 큰 변화에요.

9월부터는 KBS <바람의 나라>에 호위무사 ‘추발소’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데, 상당히 의외의 선택이었어요.
김재욱
: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왜냐하면, 김재욱 씨가 사극에 출연한다면 아마도 ‘미청년 화랑’같은 게 아닐까 했거든요.
김재욱
: 말없고 차가운 무사 같은 거? (웃음)

그런데 추발소는 수염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나오는 데다, 성격적으로도 코믹한 감초 캐릭터에 가까워서 의외였던 거죠.
김재욱
: 하지만 저한테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커피프린스 1호점>의 노선기나 <앤티크>의 민선우나, 감정을 발산하기보다는 안으로 삭이는 캐릭터거든요. 대사 톤이나 감정 표현이나 아주 절제된 사람들인데,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저로서는 그 두 캐릭터를 연달아 겪으면서 감정 표현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어요. 그래서 <앤티크>가 끝나면 어떤 작품이든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고르기로 했죠. 거기에 하나 더해서, 우리나라에서 계속 연기를 하려면, 특히 남자배우는 언제가 되는 사극을 꼭 만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사극이라는 장르는 일단 연륜이 있는 감독과 연륜이 있는 배우들이 만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정말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빨리 하자, 내가 아직 내 안에 뭔가를 많이 채우지 않은 지금 해야 훨씬 흡수도 빠르고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람의 나라>는 그 이유들을 다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구요.

“음악은 제가 준비됐을 때 하고 싶어요”

실용음악을 전공했고 꽤 오랫동안 밴드를 했지만 당장 앨범을 낼 생각은 없다고 들었어요.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계속하고 싶은가요?
김재욱
: 아직까지 음악에선 굉장히 자유롭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을 해요. 너무 오랫동안 공연을 못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든 작은 클럽에서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그 반면 제가 실용음악과를 나왔고 음악을 했던 친구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음악적인 부분을 보여 달라고 요구를 하면 서투르게 섣불리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요.

음악을 뭔가의 수단으로 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
김재욱
: 네. 기왕 하는 거라면 내가 준비가 됐을 때 하고 싶어요.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면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되나요. 사람들이 보는 얼굴과 자신이 볼 때의 느낌은 다를 텐데요.
김재욱
: 매번 달라요. 사람들이 말하는 중성적인 느낌도 있고.

본인이 봐도 그렇게 보이나요?
김재욱
: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그리고 사람이 무엇을 겪었느냐에 따라 표정이나 분위기가 달라지거든요. 저도 <커피프린스 1호점> 때랑 지금은 얼굴이 달라요. 어떤 문화를 경험했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조금씩 변해가는 건 분명해요. 늙어간다기 보단, 조금씩 변해가요. 그게 좋아요.

그동안 음악을 했고, 모델을 했고, 연기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과연 김재욱이라는 사람이 무엇을 계속할지 궁금했어요. 이 사람이 배우로서의 상당히 타이트한 생활을 계속 해 낼 만큼 그 일에서 가치와 재미를 느낄까 하는 점이. 그런데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떨까요.
김재욱
: 일주일에 하루를 빼고 촬영장에서 살아요. 사생활이 아예 없어요. 그런데 그런 제 생활에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더 잘 하고 싶고, 배워야 할 게 훨씬 많고, 현장에 가는 게 즐겁기 때문에 능숙해지고 싶어요. 한 작품, 한 작품을 거치면서 내가 놓치지 말아야 될 걸 하나씩 캐치해서 하루라도 빨리 내 입으로 ‘나는 배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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