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시동’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하는 반항아 택일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박정민. /사진제공=NEW
영화 ‘시동’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하는 반항아 택일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박정민. /사진제공=NEW
배우 박정민은 무언가에 얽매여 있지 않다. 매번 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그는 겉치레가 없고 영민하다.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으로 관객들을 늘 놀라게 한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시동’을 통해서는 반항아 택일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왔다. 영화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성장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빌려 따뜻한 가족애와 우정을 보여준다.

“마음을 울리는 몇 장면이 있었어요. 나도 아는 감정이라면 관객들이 살면서 한 번씩은 느껴봤을 감정일 것 같아서 뭔가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았죠. 웃기는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나머지는 정서적인 울림이 큰 작품이에요. 택일과 엄마(염정아 분)와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죠. 결핍이 있는 택일을 주변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품어줬을 때 택일은 눈에 띄진 않지만 아주 작은 성장점에 도달해요. 영화가 끝난 이후에 택일은 또 사고를 치고 다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경찰서엔 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죠. 저도 왠지 안도하게 됐어요.”

이 영화의 원작은 같은 제목의 인기 웹툰이다. 자퇴 후 가출해 무작정 군산으로 간 택일은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장풍반점에서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 분)을 만나게 된다. 캐릭터들은 톡톡 튀고 사건은 우연적으로 일어난다. 박정민은 원작 웹툰과의 적당한 톤 조절을 위해 감독과 많이 상의했다고 했다.

“만화가 원작이라 상황 설정이나 캐릭터 등 모든 것들이 만화적이에요. 연기를 하다가도 ‘실제라면 좀 난감한데?’ 싶을 정도였죠. 그런 걸 적당히 덜어내면서 영화로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만화적 장면이 있더라도 그걸 영화로 어떻게 풀어내야 관객들에게 이해시킬까 자잘하게 고민했죠. 웹툰이 조금 건조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있는 반면 영화는 유쾌한 면이 강하다는 차이점도 있어요. 영화에서 큰 사건이 터지지는 않아서 영화만의 무기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동석 선배님이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 연기하는 걸 보게 됐어요. 이런 킬링포인트도 있어야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다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상업영화로서 어필할 수 있는 매력도 필요하니까요.”

영화 ‘시동’ 스틸. /사진제공=NEW
영화 ‘시동’ 스틸. /사진제공=NEW
영화에서 택일은 엄마 속썩이는 짓만 골라서 한다. 학원에 가라고 준 돈을 중고나라에서 오토바이 사는 데 다 써버리고 가출해서는 연락도 없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보낸 카톡은 꼬박꼬박 확인을 한다. 답장은 안 하지만 말이다. 엄마에게 툴툴대지만 마음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정민은 택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했다가 영화를 하겠다는 꿈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당시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다.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던 그는 나중에 연기과로 전과했다.

“많은 자녀들이 진로 문제로 인해 부모님과 다투게 되지 않을까요. 저도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통보한 순간이 갈등의 촉발이었죠. 그 이후로는 말만 하면 다투게 되고 짜증 냈던 거 같아요. 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니 괜한 반항심이 생겼던 거죠. 어떤 면에서는 택일보다 심했어요. 택일은 그래도 엄마를 엄청 무서워하는데 전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했거든요. 택일은 예쁘게 화를 내는 편이죠. 하하. 택일을 연기하면서 부모님과 있었던 갈등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감정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다정하게 대하고 싶은데 표현이 서툴다는 점이 그랬죠.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어긋날 때의 감정 신은 연기할 때 짠했어요. (염)정아 선배님을 보면서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영화에는 택일이 엄마에게 자신의 월급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자신이 번 돈을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드린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자 박정민은 “첫 수입은 촬영하러 다니면서 기름값으로 다 썼던 것 같고,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해서 엄마의 강요에 의해 용돈을 드렸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요즘은 용돈을 잘 챙겨드리냐고 묻자 “얼마 전에 생일 선물로 1만원권을 가득 채운 머니건을 드렸다. 거기에 ‘내년에는 5만원권’이라고 써놨다. 좋아하시더라. 역시 현찰이 최고인 것 같다”며 웃었다.

마동석이 마블 스튜디오의 ‘이터널스’ 촬영으로 인해 영화 ‘시동’의 홍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데 박정민은 “문자(메시지)를 나누고 있는데 마음을 많이 쓰시더라. 선배님 몫까지 해보겠다면서 안심시켜드렸다”고 말했다. /사진제공=NEW
마동석이 마블 스튜디오의 ‘이터널스’ 촬영으로 인해 영화 ‘시동’의 홍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데 박정민은 “문자(메시지)를 나누고 있는데 마음을 많이 쓰시더라. 선배님 몫까지 해보겠다면서 안심시켜드렸다”고 말했다. /사진제공=NEW
택일은 어쩌다 보니 중국집 배달 일을 시작했지만 점점 그 일과 장풍반점 식구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택일의 절친한 친구 상필(정해인 분)은 돈을 벌기 위해 멋모르고 사채업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두 사람이 방황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어울리는 일을 명확히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정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동시에 안타까운 점도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이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장벽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지금도 그 고민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죠. 영화에서 동화(윤경호 분)가 상필에게 하는 대사 중에 ‘하다 보면 어울리는 일이 된다’가 있어요. 영화에서 좋은 의미로 쓰인 건 아니지만 그 문장만 놓고 보면 제게 좀 응원과 위로가 되는 대사였어요.”

그러한 고민이 부딪힐 때는 박정민은 어떻게 할까. “끝까지, 그리고 우울해질 때까지 고민하고 나면 좀 괜찮아져요. 그리고 일을 하다 만난 사람들이 제 마음을 채워줘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 마음을 치유해주죠. 그래서 현장에 나가는 게 재밌고 현장에 있을 때가 오히려 지치지 않아요.”

스크린 속 박정민은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 새로운 얼굴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사랑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재차 묻자 “영화를 좋아해서 열심히 하게 됐다.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바가 있느냐는 물음에 박정민은 이렇게 답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오늘을 위해 사소한 것도 배워나가야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고… 그래야 선배님들처럼 잘할 수 있으니까요. 내세울 게 별로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제는 박정민이라는 배우로서 뭘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볼 타이밍인 것 같아요. 그 고민을 내년에 조금씩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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