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우빈 기자]
가수 루시드폴이 16일 정규 9집이자 책인 ‘너와 나’를 발매한다.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가수 루시드폴이 16일 정규 9집이자 책인 ‘너와 나’를 발매한다.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기묘하고 독창적인데 따뜻하고 포근하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주다가 위로가 된다. 가수 루시드폴의 음악이 주는 힐링이다.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지어 ‘농부가수’라고도 불리는 그가 이번에는 반려견 보현과 함께 노래를 만들었다. 루시드폴은 16일 오후 6시 정규 9집 음반이자 책인 ‘너와 나’를 발매한다. ‘너와 나’는 2017년 정규 8집이자 에세이 뮤직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이후 2년 만에 발표하는 새 노래와 글이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읽을 수 없는 책’과 책을 사야만 들을 수 있는 히든트랙 ‘∞’ 등 13곡이 담겼다.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에서 소리와 음악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 그는 반려견과 관련된 모든 소리를 채집해 디지털 및 아날로그 장비로 가공하고 변주해 노래로 탄생시켰다. 반려견의 몸짓, 목소리가 드럼, 베이스, 키보드가 됐고 음악으로 완성됐다. 반려견과 함께 만든 음악. 아름답고 환상적인 꿈을 루시드폴은 현실로 이뤄냈다. 모르고 들어도 아름답지만, 강아지의 소리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걸 알고 들으면 마음이 더 따뜻해진다. 반려견에 대한 루시드폴의 사랑, 새로운 시도로 더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하고 싶은 그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 신사동 안테나뮤직에서 루시드폴을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 앨범 발매 앞둔 소감은?
루시드폴 :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딱이다. 앨범을 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이번이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생각이 많아져 말이 정리가 안 될 정도다. 몸이 많이 아팠다. 앨범을 만들면서 ‘내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나 자신과의 사투를 벌인 느낌이다. 방대한 양의 작업을 끝내서 홀가분한 기분이다. 아쉬운 마음은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웃음)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해냈다. 건강원에 가면 과일이나 양배추, 비트 같은 채소로 즙을 짜주지 않나. 내가 그 비트가 된 기분이다.

10. 가진 능력을 모두 쏟아내 만든 앨범이라 스스로 대견하다는 마음도 들겠다.
루시드폴 : 나 자신에게 미안함이 있다.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해서 대견하기보다는 미안하다.

10. 지난해 농사를 짓다가 사고로 손가락이 부러졌다고 들었다. 손가락 수술 후 만든 앨범이라 더 특별한 마음이 드는 걸까?
루시드폴 :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이 있지 않나. 작년에 손가락 수술을 하고 이유 없이 (안 좋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특별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하며 보낸 시간이 많아서 더 만감이 교차한다. 손가락은 이제 괜찮다. 현재 95% 정도 회복했다. (웃음)

10. 반려견 보현이 음반과 책의 주제다. 독특하게도 반려 동물을 대상으로 했지만, 관찰자의 시점이 아니라 ‘대등한 파트너’로 작업한 작품집이다. 대등하게 만들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루시드폴 : 보현의 소리를 내가 변환해 음악으로 만들었다. 보현의 소리가 리듬과 멜로디가 됐다. 보현의 소리에 내가 음악으로 변주를 준 거다. 말 그대로 ‘함께’ 만들었다. 그래서 수록곡의 분류도 너의 노래, 나의 노래, 너와 나의 노래다. 너의 노래는 최대한 보현의 입장에서 쓴 노래다. 보현의 눈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날 어떻게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곡을 썼다. ‘두근두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아이윌 올웨이즈 웨이트 포 유(I’ll always wait for you)’ ‘콜라비 콘체르토’가 너의 노래다. 나의 노래는 내가 내 마음을 부른 노래다. 타이틀곡 ‘읽을 수 없는 책’ ‘길 위’ ‘불안의 밤’ ‘뚜벅뚜벅 탐험대’가 있다. 너와 나의 노래는 나와 보현을 둘러싼 것들이 영감을 준 연주곡으로, ‘봄의 즉흥’ ‘눈 오는 날의 동화’ ‘산책갈까?’가 이 카테고리에 해당된다.

10. ‘읽을 수 없는 책’이 타이틀곡이 된 이유는?
루시드폴 : ‘루시드폴스럽다’고 하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곡이다. 회사에서는 이 앨범을 가장 잘 이야기해주는 곡인 것 같다고 했다. 곡의 스타일이나 음악적인 부분을 떠나서 앨범의 메시지, ‘우리는 같이 했던 기억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노래다.

가수 루시드폴의 정규 9집 ‘너와 나’ 커버 이미지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가수 루시드폴의 정규 9집 ‘너와 나’ 커버 이미지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10. 작품집의 주제는 보현이다. 오직 보현만을 주제로 한 이유가 있나?
루시드폴 : 이것도 사연이 길다. 처음부터 보현과 함께 할 생각은 없었다. 앨범 발매 전에 출판사에서 보현의 사진집을 제안해왔다. 반려견 사진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보현이 내 강아지라는 것 외에 특별한 스토리도 없는데 ‘내가 왜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때가 손가락이 부러져 철심을 세 개 박는 수술을 한 상태였다. 기타를 못 치니 다음 앨범이 막막해지고 기타를 다시는 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기존에 내가 하던 음악, 기타 연주곡들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외 나머지 음악을 들으니까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자유로워졌다. 실용적인 음악부터 치밀하게 짜인 음악, 웅장한 음악도 하고 싶었다. 근데 그런 장르가 루시드폴이라는 가수의 이름으로는 안 묶였다. 차라리 보현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고정시키면 더 자유로워질 거란 생각에 출판사에 책과 음반을 함께 하자고 했다. 출판사에서 흔쾌히 동의했고 나도 대여섯 곡만 실을 생각이었는데 작업을 하니 곡이 점점 쌓였다. 이벤트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해졌고 프로젝트가 됐다. 그렇게 루시드폴의 정규 9집 음반이자 책인 ‘너와 나’가 됐다.

10. 보현이 내는 소리를 어떻게 음악으로 만들어냈나?
루시드폴 : 보현이 콜라비를 씹는 소리를 녹음해서 그래뉼라 신테시스(소리의 작은 단위부터 출발해 이를 배열, 가공, 조합해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드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 기법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소리를 임의대로 잘라서 음의 높이를 바꾸거나 순서를 바꾸면 전혀 다른 소리가 난다. 마치 콩이 간장이 되듯 음악이 된다.

10. 보현이 내는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면?
루시드폴 : 강아지들이 뭔가를 먹을 때 사람의 입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청량한 소리가 있다. 객관적으로 들었을 때 굉장히 좋은 소리다. ASMR(감각소리) 같다. 특히 사과, 당근, 배 같은 것들을 먹을 때 상쾌한 소리가 나는데 이런 소리를 듣고 음악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파도 소리나 빗소리처럼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10. 다음 앨범도 동물과 협업한 앨범을 발표할 생각인가?
루시드폴 : 다음에는 식물들과 협업을 해볼까 한다. 내 밭에 나무들이 수백 그루가 있다. 아직 공개하진 않았지만 나무가 내는 신호를 소리로 바꾸는 기계를 연결해서 소리를 채집 중이다. 나는 설치만 해놓고 기다린다. 그 신호를 음계에 맞게 정리하고 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여름, 가을에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다를 것 같고 꽃이 필 때, 열매를 딸 때 소리들이 다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테마로 쓰면 좋을 것 같지 않나. 하하.

루시드폴은 “강아지에게 시간은 곧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미안한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만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살 것 같다. 그래서 쓴 곡이 ‘아이윌 올웨이즈 웨이트 포 유’다”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루시드폴은 “강아지에게 시간은 곧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미안한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만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살 것 같다. 그래서 쓴 곡이 ‘아이윌 올웨이즈 웨이트 포 유’다”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10. 1998년 데뷔한 후 처음으로 노래를 선공개했다. 선공개곡 ‘콜라비 콘체르토’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이름에 반려견 보현이 올라와있다.
루시드폴 : 보현이 콜라비를 먹는 소리를 채집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편집했다. 그래서 제목도 ‘콜라비 콘체르토’다. 사실 음반으로 낼 생각이 없었는데 들어본 사람들이 다 재밌어하고 좋아했다. ‘진짜 강아지랑 같이 만든 음악인데?’라는 생각에 수록했다. 인간과 가장 대등한 위치에서 협업한 음악이 아닐까 한다. 작곡가에 보현의 이름이 올라간 이유도 보현이 낸 소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현이 작곡하고 난 편곡만 했을 뿐이란 생각에 작곡과 연주에 보현의 이름을 넣은 거다. (웃음) 보현도 저작권 협회에 등록될 예정이다. 저작권료를 받을 보현의 계좌도 따로 만들어놨다. 수익금은 유기견들을 위해 쓸 계획이다.

10. 반려견의 이름을 보현이라고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루시드폴 : 매일 부르는 이름이니까 잘 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첫 반려견 이름이 문수고 지금 강아지가 보현이다. 문수와 보현. 절에 가면 큰 불상 양 옆에 있는 보살의 이름이 문수, 보현이다. 내가 절에 오래 다니는 사람은 아닌데 스스로 불자(불교신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무관세음보살” 할 때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기도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살님 덕 좀 보려고 그렇게 지었다. (웃음) 문수가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은 행원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두 가지를 상징하는 의미라 너무 좋아서 반려견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10. 보현에게 만든 노래를 들려줬나? 반응은 어땠나?
루시드폴 : 유심히 듣고는 있는 것 같다. 보현이 개가 짖는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짖었다. 보현의 ‘멍’ 소리가 삽입된 곡을 4년 전에 한 번 낸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들려주면 보현이 따라 짖는다. 자기 소린데도 낯선 소리로 느끼는 거다. 이번 앨범에 보현이 짖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어간 것이 네 곡 있는데 들려줘도 반응을 하지 않더라. 인간인 나의 입장으로 본다면 ‘얘가 자기 목소리가 음악의 일부로 사용됐다는 걸 아나?’라는 생각이 든다.

10.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번 앨범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들어줬으면 하는가?
루시드폴 : 아무래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많이 공감하실 것 같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보현의 입장에서 쓴 가사나 책 속의 글들에 영향을 많이 받으시리라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분들은 잘 모르는 세상일 순 있다. 인간과 반려견의 관점을 벗어나서 나는 현 사회는 약한 존재에 대한 혐오가 쉽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쉽게 무시하고 과시하면서 배려는 없고 갈등이 많다. 그런 혐오는 좁게는 사람과 사람, 넓게는 동물과 인간일 수 있다. 나는 동물들이 사회적 약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존재라면 같이 살아가고 있는 기쁨, 같이 살아가고 있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중요하다는 거였다. 그것이 우리가 공존하는 방식이다.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존재에 대한 따스함 가득한 눈으로 노래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루시드폴은 “농사로서 얻는 수익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루시드폴은 “농사로서 얻는 수익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안테나뮤직
10. 2015년 정규 7집 앨범과 직접 재배한 귤을 패키지로 묶어 홈쇼핑에서 판매했다. 당시 9분 만에 1000세트가 모두 나가서 화제가 됐다. 이번에도 그런 재밌는 이벤트 계획이 있나?
루시드폴 : 그냥 그때를 ‘레전드’로 남기고 싶다. 너무 힘들었다. (웃음)

10. 2014년부터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키우는 귤과 레몬이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던데.
루시드폴 :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웃음) 농담 반 진담 반인데, 우리나라 무농약 인증, 유기농 인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꼼꼼하게 따지고 인터뷰 하고 1년간 사용한 농자재 내역을 다 확인한다. 농사를 처음 시작하고 1년 이상을 무농약 기준에 맞게 농사를 지으면 무농약 인증을 준다. 거기서 또 3년 이상이 지나면 유기농으로 전환할 수 있다. 처음부터 농사를 유기농으로 배웠다. 힘들지만 힘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유기농 인증을 받는 것이 목표다. 그게 금메달이나 상장 같아서가 아니라 한때는 내가 정말 꿈같이 생각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면 열심히 부지런히 잘 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10. 음악을 만들면서 얻는 행복도 크겠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얻는 행복 역시 남다를 것 같다.
루시드폴 : 요즘은 다 빠르지 않나.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도 빠르고 모든 게 다 다이내믹하다. 근데 농사는 시간도 시각도 완전히 다르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하고 나무들이 힘을 내준 결과물인 귤을 우리나라 곳곳에 보낸다. 송장을 정리하다 보면 내 귤이 안 가는 곳이 없다.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까지 간다. 귤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을 거라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굉장히 의미 있는 순환이다. 문득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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