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고(故) 신성일 타계 1주기.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고(故) 신성일 타계 1주기.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국영화의 전설 배우 고(故) 신성일이 세상을 떠난지 1년이 됐다.

신성일은 폐암으로 투병 끝에 지난해 11월 4일 오전 2시30분 전남 화순의 한 병원에서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신성일은 뛰어난 외모와 지적이면서도 반항적인 매력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1950~6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를 통해 얼굴을 알렸고,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맨발의 청춘’은 당시 서울에서만 약 36만 명을 동원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신성일이 주연을 맡은 영화만 507편이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영화 ‘로맨스 빠빠’로 만난 배우 엄앵란과는 1964년 결혼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하객과 시민 4000여명이 몰렸다. 결혼 생활 후 신성일의 외도와 사업실패 등으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별거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했다.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코리안 커넥션’(1990) ‘남자시장’(1990) ‘물위를 걷는 여자’(199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1991) ‘안개 속에서 2분 더’(1995) 등을 제작했다. 그는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드러내왔다.

신성일은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과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신성일의 1주기를 맞아 추모 행사도 열렸다. 지난 25일에는 경북 영천에서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1주기 추모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9월 대구에서는 신성일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구·경북영화인협회 주최로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열렸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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