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배우 류수영./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배우 류수영./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한 달 전부터 ‘눈 딱 감았다 뜨면 드라마가 끝나 있었으면’ 했어요. 물론 제가 연기를 참 잘했다는 전제를 갖고서요. 일단은 끝나서 너무 좋아요. (극중 맡았던)강인욱 때문에 매일이 불행한 새벽을 보냈거든요.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요. 내가 강인욱을 불필요하게 많이 설명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요.”

MBC 주말드라마 ‘슬플 때 사랑한다’에서 가정폭력 가해자 강인욱을 연기한 배우 류수영의 말이다. 지난 7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마련된 드라마 종영 인터뷰에서 류수영을 만났다. 현실의 류수영은 끊임없이 윤마리(박한별, 박하나 분)를 협박하는 강인욱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대화하는 내내 유쾌하고 소탈했다. 류수영은 강인욱을 연기하면서 느낀 고충을 한껏 토로했다.

“드라마를 마치고 아쉬움 없이 속이 시원하기만 한 건 처음이에요. 10년도 더 전에 단막극을 같이 한 제작진과 다시 만난 거라 촬영 분위기는 좋았어요. 집에 돌아와서부터가 지옥이였죠. 강인욱을 표현하려고 혼자 소리지르고, 거울에 대고 째려보고···. 강인욱의 표정이 멋 없어 보이길 원해서 큰 거울을 설치하고 연습했거든요. 새벽에 연습한 것과 아침에 연습한 게 또 달라서 잘 안 풀리면 그때 그때 일어나서 연습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자꾸 연습하니까, 제 표정이 진짜 꼴도 보기 싫더라고요. 그래도 연기 공부는 많이 된 것 같아요.”

“시청자들에게 폭력을 이해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류수영./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시청자들에게 폭력을 이해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류수영./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실제로 만난 류수영에게선 솔직하고 선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조명의 색감과 강도에 따라 다른 얼굴들을 만들어냈다. 조명의 각도가 변화하자 강인욱을 연기할 때의 섬뜩한 표정이 스쳐갈 때도 있었다. 질문을 위해 ‘방금 강인욱의 표정이 비친 것 같다’고 운을 떼자 류수영은 “착하게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며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조명을 조정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류수영이 연기한 강인욱은 어머니를 닮은 아내 윤마리에게 끝없이 집착했다. 어머니를 닮은 얼굴을 제외한 온 몸에 폭력을 가했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인이었다. 그를 연기하면서 생긴 고충을 배우로서 어떻게 털어냈느냐고 묻자 류수영은 “해소하는 것 없이 계속 가져가 멘탈이 안 좋아졌다”고 답했다. “회식할 때 누가 ‘힘들죠?’라고 툭 묻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얘를 설명하면 안돼, 폭력 남편을 사람들이 이해하게 해선 안돼, 변명해선 안돼’ 하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런데 그게 직접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힘든 거더라고요. 강인욱을 연기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편집된 장면도 있어요.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잡아주신 거죠. 처음 드라마에 들어갈때부터 다짐한 게 ‘이 드라마는 영화 ‘죠스’이고, 나 말고 저들이 주인공이다’라는 거 였어요. 죠스가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초반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강인욱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되면서 저도 무너진 것 같아요. 강인욱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진 않았어요. ‘인간’인 면은 본 것 같네요. 대학 때 ‘리바이어던’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문장을 좋아했거든요. 강인욱에게서 문명 이전의 인간을 본 기분이었어요.”

MBC ‘슬플 때 사랑한다’ 스틸컷./사진제공=DK E&M, 헬로콘텐츠
MBC ‘슬플 때 사랑한다’ 스틸컷./사진제공=DK E&M, 헬로콘텐츠
‘슬플 때 사랑한다’는 배우들의 노력과 달리 작품 외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첫 방송도 하기 전에 그와 호흡을 맞춘 주연 배우 박한별의 남편(유리홀딩스 전 대표 유인석)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한별에 대한 하차 요구도 거셌다. 현장 분위기가 어땠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류수영은 “흔들리지는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인생은 정말 생각대로 되는 건 없다’는 걸 배웠죠. 촬영 현장은 좋았어요. 딱히 제 역할이나 드라마 자체가 밝지만은 않아서 그 점에서는 타격이 없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대단한 배우는 아니지만, 이미 작품 속 ‘무대’ 안에 들어온 순간 배우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많은 돈이 투입되는데 흔들릴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스태프들을 포함해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잘 끝냈다 싶어요.”

류수영은 “다음에는 사랑받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류수영은 “다음에는 사랑받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류수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호평을 얻었다. 이를 언급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완전 좋았다’는 말을 두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연기할 땐 누구도 나를 보고 웃어주질 않았는데, 작품 밖에서 칭찬을 받으니 좋았다”고 했다.

“현장에서도 되게 많이 외로웠는데 칭찬을 들으니 좋더라고요. 뮤지컬할 때부터 그랬어요. ‘수영 씨, 만석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둘레가 갑자기 넓어지는 기분이 들고 어깨가 펴져요. 만석이면 박수 소리도 더 커지고요. 드라마는 칭찬이 그런 박수를 받은 기분이죠. 다음에는 사랑받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현장에서 모두가 제 얼굴을 보고 질려했잖아요. 그런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악역은 잘생긴 척은 안 해도 돼서 편한 건 있었네요. 잘생겨보이려면 각도와 앞머리를 조절해야해서… (웃음) 다음에는 강인욱 같은 악인은 말고, 이해할 수 있는 악역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복잡하고 순정한 인물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역할은 연기 진짜 잘해야 시켜주더라고요. 제가 더 노력해야죠.”

류수영은 “아이를 위해 저염식 식단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류수영은 “아이를 위해 저염식 식단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제공=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1998년 데뷔한 그는 드라마와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다 2017년 배우 박하선과 결혼했다. ‘진짜사나이’를 비롯한 예능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슬플 때 사랑한다’를 마치고 “멘탈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내와 아이 이야기를 할 때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하선의 다음 작품인 채널A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을 직접 홍보하기도 했다. 아내가 ‘슬플 때 사랑한다’를 보고 칭찬해 준 일화도 자랑했다.

“박하선 씨가 첫 회를 보고 ‘잘한다’고 말해줬어요. 초반에 영화 같은 전개가 있어서 그런지 저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어요. 시크한 성격이라 맛없으면 ‘맛있다’고 거짓말로도 말 못해주는 성격이거든요. 극 후반에는 제가 하도 날뛰니 보는 걸 힘들어하긴 했어요. 대신 영양제를 챙겨줬죠. (웃음) 참, 아이에게는 요리를 해주고 있어요. 저염식으로요. 그런데 한번은 마트의 푸드 코트에서 숯불에 구운 도시락을 같이 먹었거든요. ‘조금은 덜 짜게’ 해달라고 주문했는데도 아이가 도시락을 먹고 ‘맛있다!’고 외치는 거예요. 제가 요리 해줄 때는 기껏해야 ‘맛있네.’ 정도였는데···.(웃음) 아이가 내 요리를 맛없어 한다는 걸 깨닫고 ‘맛있는 저염 식단’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류수영은 드라마를 마치고 전주국제영화제에 참가했다. 배우 차인표와 함께 출연한 ‘샤또 몬떼’라는 단편 영화 때문이었다. 그는 당장 다음 작품 계획은 없지만 할 수 있다면 휴식기 동안 작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드라마나 큰 영화에 도전하는 것과 별개로 작은 영화나 작은 작업을 해볼 수 있었으면 해요. 이번에 차인표 선배와 작업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1년에 1000개가 넘는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90개 정도밖에 개봉이 안 된다고 해요. 정말 열심히 일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많은데 묻히는 거죠. 그런 걸 생각해보면 저는 만수르처럼 작품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해요. ‘잠깐만요’ 하고 멈춰서 내 연기를 모니터해 볼 수도 있고, 한밤중에 야산에 올라가 연기를 하면 드론이 와서 나를 찍어주고… (차)인표 선배가 말씀하신 것처럼,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함께하면 작은 작품들이 알려질 기회가 훨씬 더 많아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좋은 작품이어야 참여하겠지만, 작은 작품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거든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차근차근 해보려고요.”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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