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정인선./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정인선./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어릴 때부터 매번 만나면 헤어지는 환경의 반복이어서 한 작품이 끝나는 게 크게 아쉽지 않았어요. 사람 얼굴도 금방 잊었고요. 그런데 작품을 할수록 반대가 돼요. ‘작품앓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현장에 대한 애착, 작품에 대한 애정도 커지고 있어요.”

배우 정인선의 말이다. 1996년 드라마 ‘당신’의 아역으로 데뷔한 정인선은 2018년을 꽉 채워 보냈다. 지난 4월 종영한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에 이어 MBC ‘내 뒤에 테리우스’(이하 ‘테리우스’)에 연달아 출연했다. ‘와이키키’에서는 ‘정인선의 재발견’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테리우스’는 시청률 10%를 넘기며 흥행했다.

데뷔 23년차 정인선에게도 ‘테리우스’는 도전이었다. 극 초반에는 맡은 캐릭터의 남편이 죽어서 우는 장면도 많았다. 지상파 첫 주연을 한류스타 소지섭과 함께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무엇보다 경력단절 여성의 삶을 표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다. 정인선은 “(부담감에) 촬영 초반에는 울면서 잠이 들었다”며 “늘 새로운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게 배우의 일이지만, 엄마·경단녀 캐릭터는 또 달랐다”고 털어놓았다.

“시청자 중에는 6년차 엄마도, 실제 쌍둥이 엄마도 정말 많을 텐데 그 분들 눈에 제 연기가 가짜로 느껴질까봐 가장 걱정됐어요. 엄마들의 아픔이나 고민을 표현해야 하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제가 겉핥기 식으로 표현하면 안되잖아요. 이 난관을 해결해야 애린(정인선)이가 설명되고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소지섭 오빠와의 케미는 캐릭터가 납득되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단순히 지섭 오빠와 붙는 것만 생각했으면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정인선은 “사회로 나가는 경력단절 여성 고애린을 제대로 그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정인선은 “사회로 나가는 경력단절 여성 고애린을 제대로 그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와이키키’의 싱글맘 한윤아(정인선)부터 ‘테리우스’의 쌍둥이 엄마 고애린까지. 20대 후반의 배우에게 연이은 엄마 역할은 부담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정인선은 “배우에게 엄마 연기가 흠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와이키키’와 ‘테리우스’ 모두 엄마 역할이라고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엄마들이 다 다른 것처럼,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캐릭터도 다르니까요. 특히 ‘와이키키’의 윤아는 미숙한 싱글맘이었지만 ‘테리우스’의 고애린은 6년차 프로 엄마였어요. 전작에서는 청춘으로서의 윤아를 보여줬지만 ‘테리우스’에서는 경력단절 여성 고애린이 다시 사회로 나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인선은 영화 ‘살인의 추억’,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2002) ‘영웅시대’(2004) 등으로 주목 받다 학업에 집중하며 6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성인 연기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2010년 영화 ‘카페 느와르’부터였다. 하지만 이른바 ‘예쁜 역할’은 드물었다. tvN ‘빠스켓볼’(2013)에서는 거지 역할을 맡아 얼굴에 까만 칠까지하며 열연했다. JTBC ‘마녀보감'(2016)에서는 아홉 살 차이인 배우 김새론의 친모 역할로 등장했다. 2017년 KBS2 ‘맨몸의 소방관’에서야 재벌 상속녀를 연기했다. 그는 “내가 예쁜 역할을 하게 된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며 웃었다. 톱스타 역할을 비롯해 ‘예쁜 역할’에 대한 갈증을 묻자 정인선은 “그게 더 어려운 역할”이라면서도 “탐은 난다”고 했다.

“작품 앓이가 점점 생겨나고 있다”는 배우 정인선./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작품 앓이가 점점 생겨나고 있다”는 배우 정인선./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이제까지 별로 예쁜 역할을 맡은 적이 없어요. 제가 마음 먹으면 한없이 망가질 수 있는데 예쁘려면 노력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적당히 망가져야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테리우스’ 때도 그 부분을 고민하긴 했어요. 톱스타 역할이 탐나기는 하지만, 더 어려운 역할인 것 같더라고요. 표정도 절제해야 하고, 허리도 꼿꼿이 펴야 하고요…(웃음)”

데뷔 23년차, 인생 28년차 정인선은 안팎으로 변화를 겪고 있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올 초만 해도 ‘폭풍성장’이라는 수식어를 들었던 그는 “’테리우스’ 이후로 ‘폭풍성장’을 뗄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촬영 끝나고 잠을 푹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새벽에도 자주 깬다”며 “아역배우 때 없던 ‘작품앓이’가 시작되고 있다”고도 했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렸을 때는 조금 더 대범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애린이처럼 행동파인 사람이요. 그보다는 덜 대범한 사람으로 자라난 것 같아요. 공백기를 가졌던 것도 제가 ‘타인의 경험에 질투를 많이 느끼는 아이’였기 때문이에요. ‘연기를 하지 않는 아이들의 삶은 어떤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진과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간접적으로 타인의 삶을 볼 수 있고, 내 관점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 그 끝은 연기로 모이더라고요. ‘내가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지금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지만, 앞으로 또 엄마 역할이 오더라도 한 번 했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을 거에요. 그게 저를 확장시킬 수 있는 역할이라면요. ”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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