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역적’ 화면 캡쳐 / 사진=후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역적’ 화면 캡쳐 / 사진=후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자와 홍대 차림으로 첨지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부에 드나들면서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
-연산군일기 39권

조선왕조실록은 홍길동을 도적떼의 우두머리로 정의한다. 도적에 불과한 홍길동이 어쩌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3인칭의 대명사가 됐을까? 왜 행정 양식 이름 란엔 작성 예시용 본보기로 늘 이 이름이 적혀있는 것일까?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이하 역적)은 연산군 시절 실존했던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 궁금증의 실마리를 쫓는다.

홍길동 하면 허균의 ‘홍길동전’ 속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한 도적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은 역사에 새겨진 실존 인물이다. 연산군일기 5회, 중종실록에 4회, 선조실록에 1회 기록됐다.

홍길동을 도적으로 정의한 역사의 기록을 비틀어 보면 홍길동은 대낮에도 행동을 불사하고, 법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관부까지 드나들면서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했다. 홍길동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폭군 연산의 치하에서 신음하던 백성을 위해 있는 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활빈 활동을 한 의적이라는 추정은 신빙성을 얻는다.

홍길동의 실존을 증명하는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적 홍길동을 어떻게 처형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 시점이 역사기록을 말소한 사례가 있는 연산군 시대라는 점은 더욱 흥미롭다. 역사학자들은 연산이 삭제한 기록에 홍길동이 포함돼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한다. 연산이 후세에 남기기 두려워한 허물 중 하나가 홍길동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왕도 두려움에 떨게 한 의적 홍길동의 흔적은 홍길동의 고향, 전남 장성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홍길동은 1446년경 장성 황룡면 아치실 마을에서 함경도 경성절제사를 역임했던 아버지 홍상직과 기생노비인 옥영향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치실 암탉골에는 홍길동이 먹고 자랐다는 샘이 있으며 조금 위쪽인 황룡면 아곡리 산 69-1에는 홍길동이 태어났다는 집터가 있다. 홍길동의 생가 추정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임금이 홍길동의 배다른 형 홍일동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이는 자기도 발견됐다.

장성은 민초를 대표하는 홍길동의 숨결을 보존하기 위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23만㎡ 515억원을 투자해 생가를 복원하고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뿐만 아니라 매해 축제를 열어 의적 홍길동을 기리고 있다.

‘역적’은 실존 인물 홍길동을 소재로 하는 만큼 홍길동의 고향인 장성에서 촬영을 진행, 의미를 더했다. 홍길동테마파크와 필암서원을 오가며 장성의 풍광과 더불어 홍길동의 혼을 담았다.

드라마는 실존 인물 홍길동에 ‘역사’, ‘씨종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더해 임금임에도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연산과 씨종의 자식임에도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한 홍길동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짚어낸다. 무엇이 홍길동을 한국인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만들었을까? 그 강인한 생명력은 무엇일까? 매주 월, 화요일 밤 10시 ‘역적’이 홍길동의 자취를 좇는다.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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