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라미란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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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30편, 드라마 17편. 배우 라미란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최근 영화 ‘히말라야’에서는 여성 산악인 조명애 역을 맡아 한계에 도전하는 뚝심과 담력을 지닌 인물을 그려냈으며,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는 쌍문동 치타여사 ‘라미란’으로 엄마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하는 활약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많이 일하는 것처럼 안 보이려고’, ‘잘 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도드라지지 않게, 송곳처럼 삐져나오지 않고 어느 작품이든 있는 듯 없는 듯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라미란. 빛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우리 뒤에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를 울고 웃기는 작품 안에서 항상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키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연기하는 배우 라미란을 만났다.

10.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끝났다. 종영 소감을 부탁한다.
라미란: 처음 시작할 때 감독님이 너무 엄살을 부려서 덩달아 ‘이번에 잘 되겠나’ 싶은 생각으로 시작을 했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고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공감해주셔서 촬영하면서도 즐거웠고, 끝나고 나서도 많이 사랑 받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응팔’은 나한테도 인생작품이 될 것 같다.

10. 극중 라미란 여사와 실제 미란은 많이 비슷한가?
라미란: 평소 나의 모습과 닮은 부분이 많다. 작가님이나 감독님도 배우들 인터뷰를 하면서 실제 모습을 참조하는 것 같다. 평소에 미란처럼 잘 안 웃는다. 누가 웃겨도 어디 한 번 더 웃겨보라고 잘 웃질 않는다. 또, 가진 게 많이 없어서 잘 못하는데 뭔가를 남들에게 퍼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다.

10. 극중 가족들과 사이가 꽤 돈독해졌을 거 같다.
라미란: 가족끼리는 식구니까 같이 밥을 많이 먹었다. 첫 촬영 때였나. 김성균이 유행어를 하는데 아무도 받아주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즐기고 있더라. 옆에서 그러고 있는 걸 계속 보면 짜증나거든. 그래서 진짜 짜증낸 적도 있다. 라 여사가 이런 기분이겠거니 생각도 들었고. (웃음)

10. ‘쌍문동 치타여사’의 의상은 누구 아이디어였나?
라미란: 대본에 그렇게 설정돼있었다. ‘치타무늬 가디건’을 입으라고. 의상 팀이 옷을 준비하느라 애썼다. 요즘 호피무늬 옷이 나오질 않아서 재래시장을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하더라. 한 겨울에 시원한 옷을 입고 열심히 촬영했다.

10. 이일화, 김선영, 라미란이 결성한 ‘쌍문동 태티서’의 ‘케미’도 좋았다.
라미란: 순회공연이 120개 정도 잡혔으면 했는데… (웃음) 일화 언니가 그동안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는 동일 선배하고만 얘기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있어서 언니도 좋아했을 것 같다. 우리끼리 촬영 끝나고도 참 알콩달콩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에도 이렇게 헤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감독님이 ‘골목 평상 신’을 강조해서 배우들끼리도 ‘케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 ‘응팔’에서 망가진 장면도 많았다. 너무 자신을 내려놓았던 것은 아닌가? (웃음)
라미란: 회를 거듭할수록 계속 하얗게 불태워야 했다. 전국 노래자랑 예선을 찍을 때에도 대본에 ‘입 반주를 하며 열심히 한다’는 지문이 있었다. 감독님에게 “이러다 나 밑천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더니 자기 알 바 아니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 정말 가슴이 덜컹덜컹 거렸다. ‘응팔’은 지문의 힘이 대단한 작품이다. 여권 신에서도 아들에게 영어를 읽어달라고 말할 때, ‘무안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라는 지문이 있었다. 이건 어떤 웃음이지? 한참 고민해야 했다. 이렇게 나도 모르는 부분들이 있었다. ‘응팔’ 대본에는 신선함이 있었다. 읽다보면 재밌는 줄 알았는데 울컥하고, 슬플 것 같은데 웃음이 터지곤 했다.
라미란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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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류준열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데, 아들이라고 했을 때?
라미란: 처음 감독님과 미팅을 할 때, 내가 잘 생긴 남자 배우가 아들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감독님이 “기대하지 마라”고 하시는 거다. 정환이(류준열)를 만났는데 딱 보는 순간, 다들 외탁했다고 다들 그러더라. 못 생긴 것 같은데 날 닮았다니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웃음) 그런데 원래 친구들이 더 매력이 있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얼굴. 왜 못생긴 남자한테 빠지면 약도 없다고 하지 않냐. 지금 많은 분들이 그런 것 같다. 다들 정환이한테 헤어 나오기가 힘드실 거다.

10. 아들 정환이가 덕선(혜리)의 신랑이 안됐다.
라미란: 아들이 막판에 자꾸 사천에 내려가는 거다.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네티즌들이 나보고 왜 자꾸 우냐고 그러더라. 저러다 정환이가 죽는 거 아니냐고, 복선이라는 얘기도 봤었다. 정환이 고백신을 봤는데 좀 안타까웠다. 혼자 속앓이하다가 짝사랑이 끝난 거니까. 장난스럽게 끝내지 말고 진짜 진지하게 고백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택이(박보검)는 사실 바둑 밖에 모르고 약도 먹고, 남편감으론 별로다. (웃음) 정환이 스타일이 결혼하고 살면 더 행복한데 덕선이가 우리 아들을 받아주지 않아서 좀 서운했다.

10. 정환이에게 따로 위로해줬는지?
라미란: 정환이가 끝 무렵에 한 가닥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정환이는 “저는 여기가 끝인 것 같아요”라며 약간 접은 것 같더라고. 실제로 많이 마음 아파하더라. 덕선이도 정환이가 고백할 때 엄청 울었다고 들었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배우들이 아직도 ‘응팔’ 캐릭터에 빠져있는 것 같더라. 나는 많이 해봤으니까‘응팔’ 끝나면 거품도 금방 빠지니 얼른 캐릭터에서 나오라고 말했다. (웃음) 이제는 이걸 잊고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할 때다. ‘응팔’ 때문에 작품을 너무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들이니까 여러 가지 많이 해보라고, 다 해보라고 조언해줬다.

10. 골목길 모든 가족들이 쌍문동 떠나면서 ‘응팔’이 끝났다. 그 이후 정환이 가족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미란: 판교로 이사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균이 참 선견지명이 있다. 주식이나 이런 것에서 동일 선배보다 훨씬 시대를 앞서간다. 아마 판교에서 가서도 떵떵 거리며 살지 않을까. 큰 아들도 외식 사업가로 돈도 잘 벌고. 정환이가 사천에 가있긴 한데… 가끔 볼 수 있을 거다. 덕선이네도 판교로 이사 와서 자주 만났을 것 같다. 내가 정환이의 마음을 알게 됐으니까 덕선이를 아주 그냥… 왜 그랬냐고 우리 아들을 왜 찼냐고 물어보고 싶다. (웃음)

10.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언제였나?
라미란: 첫 회에 무뚝뚝한 아들한테 서운해서 아들 방에 들어가서 애기하는 장면이 있다. 나도 아들이 하나인데, 리딩 때부터 정말 서운하더라. 그래서 준열이를 두고 “못된 거 아니다. 나쁜 아이가 아니다. 시크한 거다”라고 최면 걸다시피 되뇌고 연기를 했었다.

10. ‘응팔’ 캐릭터 중에서 자녀 삼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하다.
라미란: 딸이 없어서 그런지 덕선이를 딸 삼고 싶다. 덕선이의 착하고 싹싹하고 밝고 잘 웃는 그런 면들이 되게 좋을 것 같다. 딸 있는 사람들이 부럽더라.

10. 연기하는 입장에서 ‘응팔’만의 특별한 점을 꼽아보라면?
라미란: ‘응팔’은 근래 보기 힘든 드라마다. 보통 아이들의 사랑 얘기가 다뤄지면서 어른들의 이야기는 뒤로 빠지는데 ‘응팔’은 그렇지 않았다.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드라마 같으면 주변인으로 머물다가 캐릭터가 소진되는 건데, 이 집 얘기 저 집 얘기 하지 않나. ‘전원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말도 들어봤다. 우리 어머니도 올해 연세가 여든이신데 ‘응팔’ 끝나니까 이제 뭐를 봐야하느냐고 하셨다. 그만큼 ‘응팔’은 모두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던 것 같다.
라미란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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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 내가 떴구나’하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
라미란: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게 떴다는 증거 아닐까.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나. 정말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동네 마트 같은 곳을 가면 주변에서 자꾸 ‘정봉(안재홍)이 엄마’라고 말씀하신다. ‘막돼먹은 영애씨’ 할 때는 ‘라 과장’이라고 부르시더니 요즘에는 ‘정봉이 엄마’, ‘치타엄마’라고 부르신다. 나이 많은 분들도 날 알아보신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10. 최근 온라인에 ‘소녀 라미란’ 사진이 공개됐다.
라미란: 아마 친구 딸이 올린 것 같다. 사진이 공개된 것은 놀랍지 않았다. ‘오늘 낮에 찍으셨나?’란 댓글이 더 웃겼다. 아마 60세에도 이 얼굴이지 않을까.

10. 다양한 작품에서 정말 많은 아줌마 역할을 보여줬다. 아줌마 연기를 잘하는 노하우가 따로 있나?
라미란: 교과서적인 대답이지만 대본에 충실하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응팔’에서 애드리브를 많이 한 줄 아시던데 거의 대본에 쓰여 있는 대로 연기했다. 김성균을 중간에 발로 밟는 것만 애드리브였다. 김성균이 잘 맞아줘서 고맙다. (웃음) 특별히 아줌마라고 해서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 연기를 시작부터 아줌마로 했고. 대신 우악스러운 아줌마는 피하려고 노력한다. 보시는 분들이 매번 똑같은 캐릭터만 보시면 지겨우실 거고, 내 입장에서도 힘든 일이니까.

10.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혹시 멜로에 대한 욕심은 없나?
라미란: 앞으로 멜로를 하려면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얼굴로 좀 힘든 것 같다. 지금까지 아무도 안 불러주는 거 보면. (웃음) 다른 것들은 거의 다 해봤는데 멜로는 못해봤으니까 멜로 한 번 해보고 싶다.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웃음).

10. ‘응답하라’가 또 나온다면 출연 생각이 있나? 만약 출연한다면 어떤 캐릭터가 좋을까?
라미란: 감독님이 워낙 새로운 얼굴들을 좋아하셔서 다음 시리즈에선 안 불러줄 것 같다. 감독님이 불러주신다면 나야 감사한 일이지. 다음에는 내 남편 찾기를 하면 어떨까. (웃음)상대역으로 젊은 친구들은 얘기하면 댓글에 ‘철컹철컹’이라는 댓글이 달리고, 그래서 작년부터 유해진 선배를 얘기했더니 반응이 없더라고.

10. 1988년도의 라미란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라미란: 1988년에 중1이었는데 그 때는 강원도 정선의 고한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 때 중학교가 산 중턱에 있었다. 등교를 하려면 산을 올라야 했고, 눈이 많이 오면 학교에 못 갔다. 입학 전에 숏컷을 했었는데, 입학식 날 너무 추워서 귀에 동상이 걸렸다. 그 시절 되게 남자처럼 하고 다녔다. 반장갑을 끼고 반달가방을 메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터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완전 여자가 된 거다.
라미란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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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굉장히 다작을 하고 있다.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라미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일하는 기간보다 쉴 때가 더 많았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작품이 잘 되고 많이 알아봐주셔서 그런 부담은 있다. 너무 많이 나와 질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작품을 해야지 나도 살고, 또 일을 안 하면 배우가 아니지 않나. 캐릭터가 겹치지 않게, 보기에 질리지 않게 더 열심히, 매 작품마다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지가 소진이 많이 됐으니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건방진 생각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연기를 할 거다.

10. 배우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라미란: 최대한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 너무 도드라지지 않게, 송곳처럼 삐져나오지 않고 어느 작품이든 있는 듯 없는 듯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다. 꼭대기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은 배우를 시작했을 때부터 거의 안 했다. 어딘가 꼭대기에 올라가면 내려올 때가 있는데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연도 좋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라면 조연이든, 단역이든, 주연이든 상관없다.

10. 3년 전, 아들이 라면을 끓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연극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연극에 대한 미련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 생각은 유효한가?
라미란: 진작 라면을 혼자 끓이고 있다. 참기름을 넣는 기술도 있다. (웃음) 당시에 아이가 혼자 있을 정도가 되면 연극을 하고 싶단 뜻으로 말했다. 지금 아들이 6학년 올라가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위험한 것 같다. 공연은 늘 하고 싶다. 3년 전부터 공연하자는 연락도 많았다. 지금 아이를 친정어머니가 봐주는데 공연이라는 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병행하면서 연극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연극은 많은 사람들과 같이 만드는 것인데 스케줄 될 때만 연습에 참여하는 것은 내가 불안해서 안 된다. 공연에만 올인할 수 있을 때,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아이에게도 손이 덜 가고 아이가 인성이 갖춰졌을 때 그 때 다시 연극을 해보고 싶다.

10. 2015년은 본인에게 어떤 해였나? 그리고 2016년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라미란 : 나름대로 2015년 잘 숨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이렇게 봇물 터지듯이 작품들이 잘 돼 정말 바쁜 사람이 됐다. 드라마는 ‘막돼먹은 영애씨’와 ‘응팔’ 밖에 안 했는데 엄청 잘 뻥튀기가 됐다. (웃음) 2016년은 그 뻥튀기를 잘 먹을 해다. ‘라미란.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가 아닌가’란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많이 일하는 것처럼 안 보이게 숨어서 열심히 연기하겠다. (웃음)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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