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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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블랙코미디일까.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다. 대종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男女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을 확정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빚어졌다. ‘국제시장’ 황정민은 뮤지컬 준비로, ‘암살’ 하정우는 해외 체류로, ‘베테랑-사도’ 유아인은 드라마 촬영으로, ‘더 폰’ 손현주는 개인일정으로 불참하겠다는 뜻을 대종상 측에 전달했다. ‘국제시장’ 김윤진, ‘암살’ 전지현, ‘차이나타운’ 김혜수, ‘미쓰와이프’ 엄정화, ‘뷰티인사이드’ 한효주도 불참을 알린 상태다. 그럼에도 대종상 측은 시상식을 강행한단다. 이 비극의 시작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설마) 모르는 것인지, 모르고 싶은 것인지, ‘아 몰라’ 하는 것인지,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일명 ‘대종상의 셀프디스’라 할만하다.

대종상의 셀프디스는 지난달 14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에서 조근우 본부장이 “올해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배우에게 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포문을 열었다. 대종상의 권위를 스스로 ‘참가상’ 수준으로 떨어트리는 셀프디스. 그들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A에게 상을 줄 생각이었는데, A가 오지 않자 참석한 B에게 “그럼 네가 받을래?” 하는 꼴.

받는 사람마저 민망한 트로피에 영광 따위 있을리 만무하다. 논란이 커졌을 때 주최 측은 이를 수습할 일말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대종상은 이후 어떠한 입장 표명도 내놓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 사이 고원원(高圓)과 순홍뢰(孫紅雷)를 해외부문 남녀주연으로 선정했다가 번복했다가 다시 선정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고, 온라인 투표 과정에서 신인여배우 후보에 오른 박소담의 정보를 다른 여배우로 잘못 표기하는 실수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 뿐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었다. ‘베테랑’의 그 유명한 대사를 빌리자면, “어이가 없네~!”

# ‘애니깽’ 사태부터 이규태 회장 비리까지, 대종상의 흑역사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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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대종상 ‘흑역사’를 들춰보면 그러하다. 70~80년대 충무로에는 외화수입을 제한하는 외화수입쿼터제가 있었다. 국내영화보다 외화가 더 돈이 됐던 그 시절,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를 따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제작하거나, 영화제에서 상을 타거나. 쿼터를 받기 위한 수입사/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대종상 입맛에 맞춘 영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 대종상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대중의 뇌에 깊이 각인된 건, ‘애니깽’ 사태다. 1996년 대종상은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애니깽’에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몰아주며 추문의 대상이 됐다. 2000년에는 한 신인 배우가 뒷돈을 대고 대종상 신인상을 챙겼다. 권위는 타락하고, 공정성을 설 자리를 잃었다. 장나라가 미개봉작 ‘하늘과 바다’ 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등극했던 지난 2009년에도 논란은 가문의 저주처럼 대종상을 떠나지 않았다. 일명 ‘광해의 난’이라 불린 지난 2012년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개 부문을 독식한 당시의 시상식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민망한, 밋밋하고 긴장감도 없는 자리였다.

대종상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대종상에도 큰 타격을 안겼다. 올해까지 임기였던 이규태 회장의 퇴진 후 원로 영화인들이 대종상 주도권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과연 대종상이 누구를 위한 상인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대종상 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워낙 뼛속까지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 옳은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그렇게 영화상 자체가 중심을 잃은 상황에서 출석 운운하는, 셀프디스가 등장한 것이다.

# 아카데미의 ‘셀카’, 대종상의 ‘셀프디스’
아카데미시상식
아카데미시상식
지난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슈가 됐던 것은 일명 ‘셀카’다. 무대와 객석을 오가던 사회자 드제너러스는 시상식 중반 배우들에게 셀카를 찍자고 즉흥적으로 제안했고,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웃으며 화답했다.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자레드 레토, 브레들리 쿠퍼 등이 함께 한 이 사진은 아카데미가 지닌 권위와 명성의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셀카’로 영화인들의 1년 노고를 서로 축하할 때, 국내 최고령 시상식 대종상은 ‘셀프디스’로 제 살만 깎아 먹고 있다. 너무 깎여서 이젠 깎일 살도 없어 보이지만.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팽현준 기자 pang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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