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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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 오로지 ‘돈’이 전부였던 그는 매일 같이 들리던 국밥집 아들 진우가 용공조작사건으로 잡혀가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영화 ‘변호인’의 뼈대다. 그리고 이 뼈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닿아있다. 1981년 부림사건과 노 전 대통령이 바로 ‘변호인’의 모티브다. 영화 속 진우가 휘말린 용공조작사건이 바로 부림사건인 셈이다. 또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 변호사가 곧 노 전 대통령이다. 때문에 제작 초기서부터 사회적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더욱이 송강호는 올해 ‘설국열차’, ‘관상’ 그리고 ‘변호인’까지 연이어 3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앞선 두 작품이 모두 900만 관객을 넘기는 초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굳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도 올해 최고의 흥행을 일군 송강호의 차기작이란 점에서 ‘변호인’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강호를 만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논란 그리고 흥행을 물었다.

Q. ‘설국열차’, ‘관상’ 그리고 ‘변호인’까지 연이어 3편 개봉이다. 장르도, 소재도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개봉하는 소감도 각기 다를 것 같다.
송강호 : 개봉만 이렇게 할뿐 촬영은 정신없지 않았다. ‘설국열차’도, ‘관상’도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에 쫓기듯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대중영화로서 3편을 선보이다보니 관객들도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 하실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게 장르도 다르고, 캐릭터도 완전 다르다. 배경도 과거, 현재, 미래다. ‘변호인’이 30년 전이지만 어쨌든 현대적인 이야기니까. 이처럼 시공간의 차이점이 확연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질려하진 않을 것 같다.

Q. 앞선 두 편 모두 900만 돌파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렸다. 이번엔 어떤가. 앞선 영화의 흥행을 이어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송강호 :
행복한 해가 있듯 우울한 해도 있다.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과정이다. 좋아할 필요도 없고, 너무 우울해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18년째 영화를 하는데 18년 동안 그런 마음으로 해 왔다. 그 중 올해는 정말 행복한 해인 것 같다.

Q. 어찌됐든 연달이 주연작 3편이 개봉하다 보니 ‘급전이 필요했나’란 기사도 나오고. (웃음)
송강호 :
기사 늦게 봤고. 여러 반응 중에 하나라 생각해 불편함은 전혀 없다. ‘설국열차’, ‘관상’ 등 어떤 영화든 반응이 다양하다. 많은 사랑을 받아서 1,000만에 가까운 기록도 나왔지만 그 영화들도 다양한 반응이 있다. ‘변호인’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작품에 비해 성격이 다른 건 있지만 기본적으로 열려 있다. 다만 우리 입장에선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걱정이다. 언론시사회 후 기자회견 할 때 고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그 분이라고 말을 하느냐는 기사도 나오는데 그것 역시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다. 제작진에서 부탁하지도 않았고, 배우들끼리 어떤 약속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 영화는 그런 선입견에서 출발한 영화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다. 헌정영화, 미화영화 또는 정치적인 잣대 속에서 영화를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 모티프를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을 통해 2010년대를 살아가는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이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변호인-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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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기사를 보니 ‘관상’은 정말 잘하고 싶었고, ‘변호인’은 편안했다는 말을 했던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송강호 : ‘변호인’이란 작품이 편했다 보다는 ‘설국열차’, ‘관상’ 등 큰 작품을 마치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임한다는, 그런 편안함이다. 솔직히 ‘설국열차’는 봉준호라는 핵우산 아래에 있다. 무슨 짓을 해도 막강한 아티스트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편했다. ‘관상’은 처음 사극이고, 팩션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내경을 만들어야 하는 중압감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선배다 보니 이 영화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함도 있었다. ‘관상’은 그런 점에서 어려웠고, 잘하고 싶었다는 의미다.

Q. 영화의 주된 배경이 1980년대다. 실제 송강호의 80년대는 어땠나.
송강호 :
격동의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그리고 연극까지. 이 모든 키워드가 80년대에 다 나온다. 90년대는 연기자 생활만 쭉 이어진다. (웃음).

Q. 80년대가 격변의 시대로 기록되는데 그 때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부채의식 같은 게 있나.
송강호 :
군대 있을 때 6월 항쟁이 일어났다. (87년도에 입대를 했나 보다.) 87년 1월에 입대를 했고, 최전방에서 근무했다. 인터넷도 전혀 없을 때였고, 사실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잘 몰랐다. 특히 철책 근무를 서게 되면 밤에 근무하고, 낮에 잔다. 그걸 6~7개월 반복하고. 13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갔고, 민간인을 처음 본 게 1년 1개월이 지나서였다. 그럴 정도니 사람이 얼마나 반가웠겠나. 그리고 솔직히 부채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 당시에 사회적인 자각이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평범한 학창시절과 평범한 생활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기본적인 상식이 나를 지배했을 거다. 그 상식이 이 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 감정이, 이 영화가 결코 낯설지는 않다.

Q. 국밥집 아들 진우의 변호를 맡게 된 게 송우석의 인생을 바꾼 순간이다. 그렇다면 송우석을 연기한 송강호에게는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 있나.
송강호 :
그런 결정적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계속 배우만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삶이다. 여러 직업을 해보지도 않았고, 오로지 연기만 해 왔다. 그래서 아직까지 인생의 맛을 잘 모른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살아봐야 할 것 같다. (웃음)

변호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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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근래 들어 대사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논리적이고 지적인 것 같다.
송강호 :
올해가 아니라 역대 최고다. ‘관상’을 찍을 때 이렇게 많은 대사는 처음이라고 한재림 감독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고, 대사도 많고. 편집된 부분도 있을 텐데 그것까지 생각하면 대사가 엄청 많은 거다. 그런데 그 뒤에 이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영화가 기다릴 줄 누가 알았겠나. 앞으로도 어떤 영화를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사 많은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을 거다. 특히 법정 공판 장면과 초반 일상적인 장면은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했다. 일상적인 부분은 늘 해왔듯 현장 중심적이고, 애드리브도 좀 하고, 생동감을 찾으려고 평소대로 했는데 공판 장면은 좀 달랐다. 5번의 공판이 나오는데 자칫 잘못하면 평면적이고, 지루해질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매 공판마다 키포인트가 다르고, 그 키포인트를 가장 특징적으로 잘 표현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양수리 촬영장에서 10일 동안 모든 공판 장면을 찍었는데 촬영 5일 전에 혼자 들어가서 리허설도 해보고, 감정도 연습했다. 그 소식을 듣고, 감독, 촬영 감독도 달려왔다. 촬영 감독은 내가 연습하는 거 보고 카메라 위치 생각하고. 그렇게 5일 동안 리허설을 했다. 이렇게 한 게 처음이다.

Q. 근데 송강호는 그분을 지지하는 쪽이었나.
송강호 :
이 영화를 설명하는데 배우 송강호의 사적인 견해는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가장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상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준에서 봤을 때, 특히 80년대 이 분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치열함 등은 지금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봐도 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Q. 방금 전 공판 장면의 경우 많은 준비와 리허설을 했다고 해서 물어본 거다. 앞서 실제 인물을 묘사하려고 한 적 없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지지자였다면 자신도 모르게 투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송강호 :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했다. 대본이 주고, 장면이 주는 가장 객관적인, 그러면서 가장 냉정한 시각으로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보여 지는 측면은 뜨겁게 보여 질지언정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사심보다는 객관적인 사실과 느낌을 가지려고 애를 썼다. 배우로서 가장 최선의 감정을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Q. 여러 번의 법정신에서 어느 순간에는 성대모사처럼 들리기도 하던데.
송강호 :
기본적으로 그분의 묘사를 위해 노력한 적은 없다. 이 영화 캐스팅의 첫 번째 이유는 부산 출신이란 점이다. 아무래도 언어적 측면, 언어가 주는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 중 한명이기 때문에 1순위로 올랐던 것 같다. 그래서 관객들이 비슷한 이미지를 받아들인다면, 언어에서 그분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외모도, 키도 전혀 다르지 않나. (웃음). 물론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은 당연히 그 시대에 맞게 했던 거고. 일부러 연기 자체를 흡사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변호인-송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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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말 많은 대사를 소화했는데 그 중 가장 짜릿하고,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
송강호 :
글쎄. 좋은 대사가 많다. 예고편에 나갔던 4차 공판 대사도 좋고. 그런데 기자회견 때도 말했지만 공판을 하다 보니 헌법 조항들을 외우게 되는데 정말 언어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삶의 이상을 정확하게 적혀 있는 게 헌법인 것 같다. 감독님은 두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국민이 못산다고 민주주의도 법의 보호를 못 받는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다’와 맨 마지막에 ‘그러니까 법조인이 제일 앞에 서야지요’란 대사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 맞다.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처음 영화를 본 게 기술시사였는데 내가 했는데도 ‘저렇게 멋진 대사가 있었네’라고 했던 게 있다. 공판 장면에서 곽도원에게 “그게 진짜 애국이야”라고 말하는 게 있다. 그 대사가 정말 좋다.

Q. ‘변호인’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큰 재미다.
송강호 :
곽도원은 처음 같이 했다. 아, ‘놈놈놈’도 했는데 그땐 무리들 중 한명이어서 연기를 맞춰보고 그러진 않았다. 좋은 배우들은 딱딱 받아주는 게 있는데 도원이가 놀라운 지점이 있었다. 오달수는 여러 번 호흡을 맞췄다. 눈빛만 봐도 참…. 너무 웃겨서 연기를 못한다. (웃음). 임시완은 어린 나이에 처음 영화를 하는 건데 좋은 배우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김영애는 관록의 연기란 걸 몸소 보여줬다. 참으로 놀라웠다. 관록이 주는 내공 같다. 저 정도 연기를 하려면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Q. 분명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또 송강호를 넘어 송강호 가족에게도 악플 등 언어적 폭력이 가해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걱정이 있을 것 같다.
송강호 :
영화의 내용이나 지향점 자체가 그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부분이 생긴다면, 그것도 일종의 견해 중 하나니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정말 그런 영화가 아닌데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관객들의 판단이 제일 정확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개봉하면 오히려 더 잠잠해질 수 있다. 개봉전이기 때문에 보지 않고, 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변호인-송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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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택 여부를 두고 고민할 때 ‘겁날 게 뭐 있나’란 아내의 말이 있었다고. 지금까지 송강호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크게 궁금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웃음).
송강호 :
(웃음). 외적인 뭔가에 겁을 낸 게 아니라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여전히 그분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개 배우인 내가 그럴 정도 능력이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뭐 이것 역시 일종의 ‘겁’이라고 한다면 ‘겁’이지만, 여하튼 스스로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집사람 입장에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그리고 어떤 누구든 제일 결정적인 건 집안에서 일어난다. (웃음). 아무리 옆에 뛰어난 감독과 배우, 스승이 조언을 해도 결정적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건 집안에서 일어난다.

Q. ‘밀양’으로 호흡을 맞췄던 전도연도 ‘집으로 가는 길’을 들고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1주일 격차가 있긴 하지만 같은 시기 개봉이다. 이에 전도연이 ‘피하고 싶은 상대’라고 송강호를 꼽았는데.
송강호 :
(웃음). 그 동영상 봤다. 사실 문자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서로 VIP 시사도 오고자가는 약속까지 했지만 같은 시기에 개봉하게 되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저런 홍보 일정도 겹치고. 그래서 서로 아쉽다는 문자도 했다. ‘용의자’도 마찬가지였다. 박희순이 친한 후배여서 12월에 서로서로 봐주고 격려하자 했다. 어찌됐던 전도연 씨가 열연을 펼쳤다고 하고. 정말 다 잘 됐으면 좋겠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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