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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과 인터뷰를 하기 약 열흘 전, 그의 새 앨범 음원을 미리 받아 들어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음원 들어봤니?”라는 문자에 “이승열 필생의 역작”이라고 서슴없이 답할 정도였으니까. 작년 이승열의 라이브를 보면서부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당시 그는 과거의 곡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심각하고, 실험적이고, 심지어 난해한 신곡들을 연달아 들려줬었다. 왜 그랬을까? 가령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의 경우 라이브를 통해 곡을 다듬고, 그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녹음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승열도 그런 맥락이었던 게다. 첨언하자면 최근 라이브에서 이승열은 기본 편성의 밴드에 노트북을 통한 샘플링, 베트남 악기 ‘단보우’를 통해 이색적인 사운드 운용을 들려줬었다. 그리고 새 앨범이자 정규 4집인 에서는 공연의 감흥을 한 번 더 반전시키는 놀라운 결과물을 들려주고 있다. 이것을 90년대 중반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군계일학의 록 사운드를 들려준 유앤미블루(이승열, 방준석의 밴드)의 충격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지난달 20일 텐아시아 사무실에서 이승열을 만났다.

Q. 올해 3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음악 쇼케이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공연했다.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며 현지 음악을 체득했는데,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적응한 본인의 음악을 현지인들에게 들려준 것이 아닌가?
이승열: 한국에 온지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내가 미국에 살 당시 동양인 스타는 브루스 리(이소룡) 정도였다. 그동안 동서양의 경계도 낮아지고, 서로에 대한 정보도 많아졌다. 그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이미지가 무조건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좋았다.

Q. 작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보니 전작 〈Why We Fail〉의 곡은 하지 않고 난해한 곡들만 연달아 들려주더라. 그래서 새 앨범이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음악을 만들려고 저런 라이브를 들려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승열: 작년 ‘펜타포트’ 공연이면… 맞다. 신곡을 위주로 공연했을 것이다. 난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새 앨범을 앞둔 경우에는 공연의 8할을 신곡으로 짠다. 그렇게 밴드의 합이 맞은 상태를 만들고 난 후 녹음실로 가는 것이다. 〈V〉의 수록곡들은 작년 4월부터 외부공연에서 연주를 했다.

Q. 녹음은 언제 들어갔나?
이승열: 작년 11월 나흘간 벨로주에서 6곡을 먼저 녹음했다. 나머지 네 곡은 그 이후로 띄엄띄엄 플럭서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재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쯤에 앨범 첫 곡인 ‘Minotaur’를 가장 먼저 썼고 ‘We Are Dying’ ‘Who?’ ‘개가 되고’ ‘Satin Camel’까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Q. 어떻게 벨로주에서 앨범을 녹음하게 됐나?
이승열: 작년에 벨로주에서 4회 정도 공연을 했는데 공간과 소리가 너무 좋았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녹화한 것이 인연이 돼서 공연도 하고 앨범 녹음까지 하게 된 것이다.

Q. 악기를 따로 녹음하는 일반적인 스튜디오 작업과 달리 라이브 형태의 녹음을 시도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승열: 기존 녹음방식에 지쳐 있었다. 일반적인 스튜디오 작업은 악기를 따로 녹음한 후 나중에 하나로 만든다. 그렇게 섞임이 없는 악기 소리들 사이에 인위적으로 공간감(ambience)을 만드는 작업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밴드의 앙상블을 앨범에 담게 됐다. 4~5테이크 정도를 녹음한 뒤 베스트를 골랐다. 앨범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밴드의 앙상블이 혼돈이다. 이런 악기 간의 공간감을 기존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낼 자신이 없더라. 하지만 공연 전 합주실에서 연습을 하면 그런 공간감이 살아있다. 그 느낌을 확장시켜보려 했다.

Q. 이번 앨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밴드의 앙상블이 아닌가 생각한다. 악기 편곡은 어느 정도까지 연주자들에게 맡겼나?
이승열: 난 데모를 악기별로 정교하게 쓰는 편이다. 각 악기 편곡이 완성된 다음에 합주에 들어갔다. 연주자에게 자유를 주는 부분은 정해진 리프 외에 간주 정도다. 단보우 연주자 프헝이 만든 약간의 멜로디 외에는 기본적으로 내가 만든 데모와 동일하다. 물론 밴드의 팀워크를 통해 점점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Q. 새 앨범에서는 베트남 민속악기 단보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악기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이승열: 우연이다. 운전 중에 자주 듣는 라디오 클래식 FM(93.1)을 틀어놨는데 국악 관현악단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현대음악 느낌의 곡이었는데 마지막에 나온 무반주 솔로연주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슨 악기인지 몰랐는데 수소문해보니 프헝이 연주한 단보우라는 악기였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 프헝을 만나게 됐다. 원래 베트남에서 단보우를 전공하고 한국에서는 국악 타악 박사과정을 7년째 밟고 있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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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앨범 제작까지 염두를 해두고 프헝을 만난 것인가?
이승열: 처음에는 함께 밴드를 해보자고 했다. 내 앨범과 데모를 들려 줬는데 처음에는 감이 잘 안 왔을 거다. 페스티벌과 단독공연을 여러 번 같이 하면서 손발을 맞춰나갔다. 클래식 연주자와 작업을 해본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사소통에 있어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그런데 프헝은 유연한 연주자라서 우리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앨범 작업 초기에는 주변에서 단보우의 비중이 너무 큰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하더라. 편애를 했나 싶다가도 앨범을 들어봤을 때 걱정할 정도의 수위는 아니었다.

Q. 처음에 앨범을 들었을 때 기존의 이승열 음악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단보우 소리, 그리고 중동 풍의 음계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이런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됐나?
이승열: 멜로디는 내가 써서 프헝에게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앨범을 구상하면서 내가 ‘이상한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웃음). 물라토 아스타케라는 에티오피아 뮤지션이었는데 그의 앨범들을 한 3개월 정도 들으면서 ‘그래 고정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야’라고 생각의 전환을 했다. 개인적으로 아랍 음계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기도하듯이 흥얼거리는 노래 말이다. 기존에 써보지 않은 멜로디를 쓰면서 ‘여기까지 해봤으면 문을 더 열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아랍권 보컬을 수소문했는데 마침 프헝의 전통음악 밴드에 오마르라는 보컬이 있어서 소개받게 됐다. 오마르는 인디밴드 ‘수리수리마하수리’의 공동 리더이기도 하다. 내가 의지를 보이니까 내가 동경하던 음악적 요소들이 하나하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뒤 안 돌아보고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저런 시도에 대해서 ‘오버’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Minotaur’에서 내레이션을 한 것은 오마르의 아이디어다. 소설 〈이방인〉에서 발췌한 구절을 읽은 것이다.

Q. 보컬에도 변화가 보인다. 이승열의 목소리는 때때로 노래를 한다기보다 흐느낌에 가까운 것 같다.
이승열: 보컬에 있어서도 후반작업을 최소화했다. 가사도 멜로디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데로 노래했다. 스튜디오가 아닌 라이브에서 노래할 때에 음정은 불안정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느낌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을 살리려 했다. 2차적인 가사 작업을 하지 않았고, 그런 맥락에서 영어가사의 경우에도 한글로 바꾸지 않았다.

Q. ‘Fear’ ‘Who?’ 등 긴 곡들이 유난히 많다. 과거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느낌도 나더라.
이승열: 그것은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들릴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은 곡들의 템포가 느리다보니 자연스레 러닝타임이 길어진 것 같다. 이제껏 러닝타임을 고려하면서 곡을 만든 적은 없다. 긴 곡 안에서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할 말을 다 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예전에는 긴 곡을 쓸 때 사족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검토를 하곤 했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이번 앨범에는 들어가야 할 이야기가 다 들어간 것 같다. 곡 진행 상 사족은 전혀 없었다.

Q. 이승열의 음악이 유앤미블루 시절부터 솔로에 이르기까지 영미 록의 범주에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 틀을 벗어난 것 같다.
이승열: 벗어나고 싶었다. 영미 권의 록을 안 찾아 들은 지 꽤 됐다. 운전하면서 음악 듣는 시간이 가장 많은데 라디오는 항상 클래식 국악 채널에 맞춰져 있다. 아마 3집 준비하면서부터 거의 새로운 음악을 못 들었던 것 같다. 음악 듣는 것도 즐거워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것도 사라지더라. 그냥 좋아하는 뮤지션이 앨범 내면 궁금해서 찾아보는 정도? 물라토 아스타케가 나에게는 오랜만에 술 한 잔 마실 때 틀어놓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Q. ‘Bluey’는 장필순이 피처링했다. 전작에서 한대수와 함께 한 ‘그들의 블루스’에 이은 블루스 연작이라고 하던데.
이승열: 이번 앨범에서 만든 지 가장 오래된 곡이다. 2008~2009년에 쓴 곡이라 앨범 흐름에 있어서는 튀는 곡이다. 말 그대로 블루지한 곡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블루스라는 장르, 스타일, 정신에 대한 묘한 동경이 있다. 내 음악을 할 때 그 동경을 놓지 않는 것이 개인적인 욕심이다. 전작에는 한 선생님과 했으니 이번에는 여성보컬과 해보고 싶었는데 맨 처음 떠오르는 분이 장필순 선배님이었다. 멀리 계시고 활동을 많이 안 하셔서 응해 주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흔쾌히 수락하셔서 정말 기뻤다. 장필순 선배님이 1995~1996년쯤에 라디오 DJ 하실 때 유앤미블루가 나가서 어쿠스틱 라이브를 했다가 죽을 쑨 적이 있다.(웃음) 제주도에 계셔서 녹음파일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작업 중에 전화 한 통화만 했는데 언제 소주 한잔 하자고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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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타리스트로서의 욕심도 있지 않나? 앨범에서 상당수의 기타 솔로도 본인이 직접 연주한다.
이승열: 유앤미블루 시절에는 한국에서 기타리스트에 대한 시각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기타리스트가 뜻하는 것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아서 기타 연주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적도 있다. 난 기타를 치지 않으면 음악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기타로 곡을 쓰고, 무대에서도 기타를 연주하니까. 기타 없이 노래를 하면 몰입도가 달라질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는 나에게 욕심이자… 필수?

Q. 소속사인 플럭서스뮤직의 김병찬 대표와는 굉장히 오랜 인연으로 알고 있다. 이승열의 첫인상에 대해 묻자 “당장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굉장히 훌륭한 잠재력을 지닌 친구였다”고 말하던데?
이승열: 유앤미블루 1집 녹음할 때 뮤지션과 엔지니어로 만났다. 당시 송홍섭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송스튜디오의 엔지니어이셔서 유앤미블루 1, 2집에 엔지니어, 연주자, 믹서로 참여했다. 이후 내가 솔로로 레이블을 찾는 상황에서 마침 회사를 만드신다고 하더라. 당시 ‘의욕과잉 데모’를 드렸는데 상업적인 면을 보고 계약하신 것 같지는 않다.(웃음) 간혹 푸시(Push)를 하시기도 하는데 자잘한 것이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지고 고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다. 아티스트가 되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형은 제가 슈퍼뮤지션이 되길 바라시는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내가 물은 적도 있다. 왜 그렇게 물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웃음)

Q. 이번 앨범에 대한 주위 음악 관계자들이 평가가 대단히 좋다. 〈V〉가 본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이승열: 글쎄? 모르겠다. 내가 항상 아쉬운 것은 내 예전 음반들을 잘 안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음반을 만들었을 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을 떠올리나보다. 오히려 보람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3집 〈Why We Fail〉을 작업할 때에는 녹음마저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봤다. 그리고 실제로 음악을 만드는 고통이 점점 줄고 있다. 4집 〈V〉은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3집보다는 4집을 더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Q. 1996년에 나온 유앤미블루 2집 〈Cry… Our Wanna Be Nation!〉의 속지를 보면 이승열이 직접 쓴 글이 있다. 거기서 가요계에 대해 가급적 많은 종류의 대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본인은 계속 그런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이승열: 그게 원래 앨범을 위한 글은 아니었고, 다른 곳에 올리기 위해 써놓았던 글이다. 난 버라이어티(variety)를 말한 것이다. 다양성이 있어야 대안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니까. 최근 인디음악을 트는 프로그램을 매주 한 번 진행하는데 그 안에 굉장한 버라이어티가 있다. 그 안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고 말이다. 나를 선택하는 팬들에게는 내가 대안이 되겠지?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플럭서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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