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다 자극 없다 안 섹시하다 / 우리가 걸어온 길 서로가 이해하길 / 널 먹이는 버릇은 내 뱃속을 채우는 일 / 어제의 난 소멸되고 또 다른 나 / 숨 쉬는 게 지겨워질 쯤 그때 / 나도 몰랐던 세상이 말한다 / 어쩜 그리 추잡한 인생은 잘도 간다 /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을 먹어버리고 싶어 / 여기에 없는 너를 여기에서 본다 / 변함없는 나의 노래 그칠 줄을 모르네

‘텐아시아’에서는 매주 ‘요주의 10음반’을 선정해 기사를 싣고 있다. 매 기사의 제목으로 쓰인 노래 가사를 이어붙이니 위와 같다. 지난 4월 13일부터 6월 22일까지 총 10번의 기사를 통해 100장의 앨범을 소개했다. 그 중 상반기 결산과 함께 10장의 국내앨범을 골라봤다.

이승열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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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은 정말로 변신이 절실했나보다. 이승열의 팬이라면 유앤미블루 시절 앨범부터 전작인 〈Why We Fail〉까지의 음악과 이번 〈V〉의 음악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이승열의 라이브를 봤을 때부터 도대체 어떤 차기작을 내놓으려고 저리도 심각하고,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했다. 치열한 음악적 탐구와 고민의 산물로 여겨지는 새 앨범에서 이승열은 기존의 자신을 뒤엎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제까지 이승열의 음악이 영미 록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면 〈V〉에서는 이를 벗어나고 있는 것. 그는 단보우의 이국적인 사운드와 아랍풍의 보컬, 그리고 분절된 밴드 사운드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꺼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승열 역대 앨범 중 가장 난해한 경우로 분류될지 모르겠지만 혼돈 속에서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We Are Dying’ ‘Who?’ ‘Fear’ ‘Cynic’ 등의 곡들은 반복해 청취할수록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2013년 최고의 앨범’ 후보로 거론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본다.

선우정아 〈It’s Okay, D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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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는 독특한 이력의 뮤지션이다. 2NE1의 ‘아파’, GD&TOP의 ‘Oh Yeah’를 만든 작곡가임과 동시에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 러쉬 라이프의 보컬을 맡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극과 극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음악적 오지랖은 출중한 음악으로 귀결된다. 선우정아는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 부를 줄 아는 아티스트다. 어린 소녀가 나를 봐 달라고 조르는 듯한데, 그 음악적 완성도는 대단하다. 가령 ‘Purple Daddy’와 같은 선우정아가 아니고서는 국내에서 만들어내기 힘든 음악일 것이다. 퓨어킴, 정란과 함께 최근 등장한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뮤지션.

샤이니 〈Why So Serious? - The Misconceptions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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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그룹이 두 장짜리 정규앨범을 내놓다니! 이건 분명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 현존하는 보이밴드 중 최고의 대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물량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지난 2월에 나온 3집의 1부 〈Dream Girl - The Misconceptions of You〉는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지향점에 걸맞게 팝적인 노선을 취했다. 새 앨범은 전작과 달리 매 곡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1부가 가벼웠다는 것이 아니다. 1부가 ‘브라이트사이드’였다면 2부는 ‘다크사이드’라 할 만큼 분위기의 차이가 있다. 1, 2부의 공통점은 기존 보이밴드의 음악과 비교를 불허할 만큼 놀라운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 ‘SHINE(MedusaⅠ)’과 ‘Dangerous(MedusaⅡ)’, ‘오르골(Orgel)’과 같은 곡은 분명히 기존 아이돌 댄스에서 진보된(progressive)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제 샤이니 앞엔 그 누구도 없다.

정란 〈Nomad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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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란의 데뷔앨범. 대선 전날인 작년 12월 18일에 운 좋게도 이 앨범을 발매되기 전에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정란과 몇몇 음악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 음악을 들었으니 정란에게 뭔가 말해줘야 할 텐데, 딱히 떠오르는 비교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007 제임스 본드 OST의 느낌”이라고 말해줬더란다. 실제로 이 앨범은 마치 007 제임스 본드의 역대 음악처럼 어떠한 일관된 색은 지니고 있으며 상당한 스케일, 그리고 놀라운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일관된 색’은 정란의 것이며, ‘놀라운 완성도’는 프로듀서 루베 사마마의 것일 것이다. 정란의 색은 “머리를 만져주고 쓰다듬으면 간지럽게 느낄 거야”라고 노래하는 가사처럼 매혹적이고, 듣는 이의 얼굴에 홍조를 띠게 한다.

김바다 〈N. Surf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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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다의 팬들이라면 그의 멋진 컴백을 바라고, 바랬을 것이다. MBC 〈나는 가수다〉 경연에 나섰던 시나위의 김바다, 그리고 작년 음악 페스티벌에 오른 아트 오브 파티스의 김바다는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서는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과거는 과거이고 앞으로 할 음악은 많기 때문이다. 김바다는 훌훌 털고 첫 솔로앨범으로 돌아왔다. 〈N. Surf Part 1〉에 담긴 각기 다른 스타일의 네 곡은 김바다의 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렉트로니카로 채색된 록 사운드, 댄서블한 비트가 강조된 음악은 김바다의 목소리를 거치면 심오한 에너지를 얻는다. 특히 ‘N. Surf’는 근래 보기 드문 섹시한 곡. 솔로 아티스트로서 김바다의 면모를 보여준 이 앨범은 최근 국내에 늘어나고 있는 일렉트로 팝 밴드들에게 선배로서 관록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용필만 멋진 컴백이 아니다. 김바다 역시 멋지게 돌아왔다.

조용필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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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은 음원차트 1위를 넘어 이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분석되고 있다. 음악만 놓고 보면 밝고 경쾌하다. 아마도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힘을 뺀 앨범이 아닐까 한다. 조용필의 전작인 18집 만 들어봐도 상당히 스케일이 크고 심각했다. 그런데 조용필의 공연장을 찾거나 앨범을 구입하는 열성 팬이 아닌, 그냥 조용필의 왕년의 히트곡을 좋아하는 정도인 일반적인 한국사람 중에 18집 수록곡 하나라도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사람들이 조용필의 신곡을 즐기고 있다. 조용필이 내심 바랐던 것은 ‘군림하는 가왕’이 아니라 ‘사랑받는 가수’가 아니었을까? 거장이 컴백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는 거장이 자신을 낮추고 대중의 기호에 맞게 돌아왔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컴백으로 기억될 것이다.

레인보우99 〈Dream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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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 이 앨범은 말 그대로 ‘드림 팝’을 담고 있다. 대개 앨범이름을 ‘하드록’, ‘헤비메탈’과 같은 장르 명으로 짓지는 않는다.(간혹 ‘블루스’라는 앨범제목은 있지만) 그만큼 이 앨범은 드림 팝 계열인 포스트 록, 슈게이징 계열의 사운드를 진지하게 담고 있으며 앰비언트 성향의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보다 확장된 음악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레인보우99(류승현) 개인의 ‘스산한’ 감성이 담겼다. 황보령 스맥소프트, 어른아이, 올드피쉬, 하이미스터메모리 등에서 기타를 연주해온 류승현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 레인보우99에서 사운드 메이커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제목이 드림 팝이지만, 장르음악이라기보다 류승현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그것이 청자에 대한 공감으로 다가온다.

나윤선 〈L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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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윤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여태껏 이 땅에서 재즈 뮤지션에게 이 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이게 단지 ‘한류’ 내지 ‘국위선양’이 조명 받는 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윤선의 표현력은 재즈를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의 가슴도 뜨겁게 만들 정도로 대단하다. 처음 그녀의 공연을 봤을 때에는 무당과 같은 귀기에 놀랐다. 이후 뮤지컬을 보는듯한 퍼포먼스에 요동쳤으며, 나중에 얼핏 가요적인 느낌의 친숙함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느리게’라는 뜻의 앨범 명처럼 8집 〈Lento〉에서 나윤선은 내부로 수렴하는 노래를 들려준다. 물론 ‘Momento Magico’와 같은 곡에서는 이제 자신의 소리라 할 수 있는 현란한 스캣을 들려주기도 한다. 나인 인치 네일스를 커버한 ‘Hurt’는 3집 〈Down By Love〉에 담긴 ‘Manic Depression’(지미 헨드릭스 곡) 만큼이나 멋지다. ‘아리랑’이 가슴을 움직였다면 나윤선의 전작들도 들어봤으면 한다. 재즈를 몰라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박성연 〈Park Sung Yeon With St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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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즈의 대모’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24인조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앨범. 일흔을 앞에 둔 박성연은 앨범재킷에서 활짝 웃고 있고, 앨범 속지에는 1969년 첫 공연의 사진, 해먼드오르간의 거장 잭 맥더프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도 있다. 사진 속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앨범에는 사진보다 아름다운 노래들이 담겼다. 박성연의 노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숙성되는 재즈 보컬의 표상과도 같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듯이 야누스를 꿋꿋이 지켜온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통해 녹음된 박성연의 노래는 가슴 저리다 못해 뜨겁게 적시는 감동을 전한다. 최희정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은 오케스트라와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인 송영주(피아노), 최은창(베이스), 오종대(드럼)의 앙상블은 박성연의 노래를 훌륭하게 보좌하고 있다. 무반주로 노래하는 ‘Danny Boy’에서 목소리의 떨림, 숨소리 하나하나는 박성연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재즈는 마법이 아니지만, 박성연의 노래는 마법과 같다.

아시안 체어샷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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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해서, 놀라운 데뷔앨범이 나왔다. 3인조 밴드 아시안 체어샷은 시조새 출신의 황영원, 네스티요나 출신 손희남, 배다른 형제 출신 박계완이 뭉친 ‘중고신인’ 밴드. 아마 ‘초짜’ 밴드의 데뷔앨범이라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EP에 실린 네 곡 안에는 록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팀 이름처럼 동양적인 록을 들려주는데, 기존에 시도된 ‘한국적인 록’과는 궤를 달리 한다.(팬들 사이에서는 ‘사찰 메탈’이라 불린다고) 아마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 명의 연주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헤비하고 폭발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며 처연한 멜로디가 반전을 전한다. 특히 기타리스트 손희남의 톤 메이킹은 주목할 만하다. ‘소녀’는 마치 ‘헤비한 비틀즈’같다. 올해 안으로 정규 1집이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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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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