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 이혼 이후 첫 인터뷰
"이혼하면 불행? 응원해 주셨으면"
"이제 혼자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cover story] 다시 피어나는 구혜선 "새로운 도전 응원해 주세요"
인생은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다. 불규칙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것은 삶의 희로애락과 맞닿는다. 서른 일곱 구혜선은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더욱 똑바로 바라보는 시간을 지내고 있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연예계에서 배우를 ‘업’으로 삼은 구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용기 있게, 당당하게 대중 앞에 서려 하고 있다. 모진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꺾이지 않겠다는 기개로 다시 아름답게 피어났다.
10.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금잔디’ 시절이 생각나네요.
14kg을 감량했어요. 어느 날 몸무게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목표를 정하고, 주변에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알렸죠. 식단 관리를 철저히 했어요. 밥을 줄이고 술도 끊었죠. 연기할 때는 힘들어서 많이 먹어도 빠졌는데, 스스로에게 관대했나 봐요.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했어요. 제 심리를 분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배고플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것 말이에요. 진짜 배고픈 건지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죠. 원래 쉬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한동안 나태해진 것 같아요. ‘쉬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놓게 되죠. 기분도 가라앉고… 안 되겠다 싶었어요. 요즘은 잠자는 시간 외에 무엇이든 하려고 해요. 쉬는 건 죽어서 해도 된다, 그냥 이번 생엔 ‘빡세게’ 살자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웃음)

10.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어떻게 지냈나요?
예전엔 영혼 없이 일만 한 것 같아요. 지금은 ‘열정을 가지고’ 일하죠. 지금도 그렇게 크게 성숙한 건 아니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인정하는 것, 내려놓는 것을 배웠어요. 중반인 지금은 오히려 아무것도 놓을 수 없게 됐고요. 깊은 우울감에 빠지면 자꾸 편해지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돼요. 스스로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에요.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대학교에 복학했는데 열일곱 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조별 과제를 해요. 사실 정신연령은 비슷한데
요즘 친구들은 뭔가 다르더라고요. 술자리도 같이 하고, 끼여 보려고 노력해요. ‘라떼는 말이야’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는데 애들이 너무 재밌어하죠. 카톡도 그 친구들에게 배웠어요. ‘조선시대에서 왔냐’고 하더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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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늦깎이 학교생활이 삶의 활력소가 된 모양이네요.
어렸을 때 학교에 다녔다면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도 말하죠. 얘들아 이게 얼마나 재밌는건데…하고요. 엄청 활기를 얻어서 제가 20대인 줄 가끔 착각도 해요. 학교에 가면 매일 업 돼있어요. 스스로 에너지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배출을 못하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아파요. 유독 제가 생각이 많거든요. 활기차게 생활하니 걱정이 줄고, 자존감이 지붕을 뚫고 나갈 것 같아요. 30대가 되고 나면 많은 가능성이 없어질 거라는
편견이 있었죠. 지금 제겐 지난날이 너무 젊은 날이었고, 도리어 앞으로가 더 기대되요.

10.소속사도 바뀌었어요. 구혜선 씨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요.
사실 제가 주변 사람을 잘 못 바꾸는 편이에요. 모든 부분에서요. 사람이 바뀌게 되면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껴요. 인간관계도 좁고, 한번 관계를 맺으면 겉으론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을 많이 주거든요. 많은 사람들과 하는 일이기에 파트너십, 프렌드십, 패밀리십이 중요하죠. 제가 함께했던 파트너들은 다 10년이 넘었어요. 미미엔터테인먼트 김성훈 대표님은 제가 스물세 살 때 ‘왕과 나’ 촬영하면서 뵀으니 14년 정도 됐네요. 저를 존중해 주고, 사람답게 대우해 주세요. 매니지먼트는 인간관계가 중요한 직업이잖아요. 사람은 물건이 아니니까, 일하다 보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게 돼요. 손익 관계보다 일단 신뢰가 중요하죠.

10.2017년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건강상 이유로 하차한 이후 안방극장에선 자주 볼 수 없게 됐어요.
그때 굉장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결혼과는 무관하게 인생에서 슬럼프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이었죠. 밑도 끝도 없이 내려가다가 드라마를 포기하게 된 상황이었어요. 제 인생에 뭘 포기한 적은 없는데, 마치 스스로를 토막 내는 느낌이랄까. 올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만약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죽지 뭐’라며 열정을 쏟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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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아웃’이었나 보네요.
그 단어 만든 사람 도대체 누구예요?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나서 더 번아웃한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인터넷에 세 글자만 치면 자가진단법이 뜨는데, 다 내 이야기 같잖아요. 우울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하니 점점 커지죠. 심리적인 감정은 전염성이 굉장히 빨라요. 공감이 오염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지 3~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구혜선과 또 다른 구혜선이 매일 아침 싸우기도 하죠.
스스로에게 혹독하게 이야기했던 편인데 요즘은 유머가 통하기 시작했어요. 전, 제가 베스트 프렌드거든요. 타인에게도 굉장히 직설적인 편인데 스위트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저 자신에게도 말이죠.

10.그런 감정을 어떻게 이겨냈죠? 원동력이 있었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거예요. 사실 이만큼 벌던 게 줄어들고, 생활에 대해 걱정하면 끝이 없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좋아하는 걸 해야지’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굉장한 축복을 받은 부분인데, 젊었을 때 벌어놓은 것들이 있거든요. 청춘을 소모하며 일을 한 거예요. 그렇게 벌어놓은 걸로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 싶었어요. 밥은 굶어도 영화는, 그림은 해야 해요. 영화 찍을 때는 밥을 먹으라고 해도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나중엔 손이 덜덜덜 떨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배고픈 기분을 못 느꼈어요. 마음이 충만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욕망이 식탐으로 가버리면… 아찔하네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라고 생각해요.
[cover story] 다시 피어나는 구혜선 "새로운 도전 응원해 주세요"
10.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려고 해요.
이혼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 생각은 달라요. 희망찬 판타지가 결혼이라면 현실을 깨달은 후에 하는 게 이혼이라고 생각해요. 응원해 주셨으면 해요.

10.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잊혀질 권리, 지워질 권리는 추구하기 힘들어요. 모든 행보에 과거의 일들이 엮이게 되죠.
잊힐 수 없다는 건, 싸이월드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뭔가 하나씩 망해야 잊혀지나 싶어요.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가 망하면 혹은 죽으면 잊을 거야 라는 생각도 했어요. 역설적인 건데, 사고가 발생하고 문제가 일어나는 순간 사람은 행복할 기회를 얻어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순간 불행이 시작돼요. 바닥을 찍으면 다시 행복할 방법을 생각하죠. 맨땅에 헤딩하는 순간 튀어 오르는 것처럼요.

제 삶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생각해요. 사고가 났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했지만 결국 잘 마무리가 됐어요. 내 권리 찾아서 뭐해? 나만 잘 살면 되지 하는 용기도 생겼죠. 정확하게 부서졌을 때, 이래도 되네? 하는 용기 말이에요. 망가지지 않고 내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어가고 싶은 욕구도 있고요. 남들 눈엔 코미디일 수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문제에 있어선 진지하죠. 지나고 보니 그렇게까지 지킬 것도 아니었네, 가벼운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0.혼자 사는 삶은 어떤가요.
파주로 이사를 했는데, 어머니께도 집이 어딘지 말씀을 안 드렸어요. 저희 매니저밖에 몰라요. 철저히 혼자 지내고 있죠. 예전에 결혼이라는 걸 생각했을 땐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간 것 같아요.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럴 때인가, 결혼해야 하는구나 싶었어요. 분위기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기분이죠. 내 인생인데,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사람들이 저한테 빌딩 왜 안 샀냐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한테 저는 이야기해요. ‘내가 빌딩’이라고. 저는 가족들에게 다 주고,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어요. 빌딩보다 제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제 집을 짓겠지만 지금은 조금 자유롭고 싶어요.

창작에 열중하다 보니 다른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졌어요. 인간은 속세를 떠나기 힘들잖아요. 적당히 속세가 존재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환경에 있죠. 배달 어플은 제 목숨이에요. (웃음) 예전엔 냉장고 없는 삶이 목표였는데, 지금 그렇게 살 수 있게 됐어요. 식재료는 필요 없어요. 대신 물감과 책은 냉장고만큼 필요하죠. 제 집엔 딱 물 끓여 마실 수 있는 커피포트가 다예요. 하나씩 비우는 삶을 살고 있죠.
[cover story] 다시 피어나는 구혜선 "새로운 도전 응원해 주세요"
10.배우 구혜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아요.
작품도 빨리 들어가고 싶긴 한데, 음반으로 먼저 만나 뵙게 될 것 같아요. 누구나 편히 들을 수 있는 뉴에이지 음반이고, 9월 발매를 생각하고 있어요. 백색소음처럼 플레이해 놓고 자기 할 일 하면 되는 그런 음악이에요. 뉴에이지는 10년이 지나도 유행을 안 타는 것 같아요. 점점 유행 없는 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어요. 제가 만든 영화에도 전자기기가 안 나오죠. 나와봐야 선 있는 전화기 정도예요.

매일 아침 일어나 플랜을 짜고 있어요. 혼자 작업하는 사람이라 계획이 없으면 차일피일 미루기 마련이죠. 오늘 이거 끝내기 전까지 못 잔다라고 생각하면 잠을 자고 싶어서라도 빨리 끝내요. 나름 양도 많아지고 질도 좋아졌어요. 예전엔 온갖 괴로움에 허우적대면 더 좋은 게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부류의 아티스트는 아닌 것 같아요. 마감일을 정해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지금 전 혼자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김예랑 기자 nor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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