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
구가의 서
MBC 월화특별기획 <구가의 서> 21~22회, 2013년 6월 17~18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자홍명(윤세아)은 아들인 강치(이승기)와 사랑했던 구월령(최진혁)이 싸우는 것을 보고 괴로워한다. 과거의 기억을 잃고 천년악귀가 된 구월령이 마을 사람들을 몰살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자홍명은 구월령을 찾아가 목검으로 스스로의 심장을 찌른다. 결국 신수로 돌아온 구월령은 강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사라진다. 강치는 본격적으로 사람이 되기 위해 소정법사(김희원)를 찾지만 그로부터 여울(배수지)이 죽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진다. 닌자와 싸우던 중 이성을 잃고 여울을 다치게 한 데 충격을 받은 강치는 결국 여울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리뷰
모든 이야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갈등이 시작되는 것과 풀려나가는 것, 캐릭터가 만들어 지고 스스로 움직이는 방향성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픽션 하의 상황에서 긴장감과 탄력을 부여할 수 있는 ‘지점’이 결국 이야기 전체의 생명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구가의 서>의 이 ‘타이밍’은 극 초반 아주 좋은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속도감 있는 진행과 큰 서사를 충분히 이어갈 수 있을 만한 프리퀄은 수준이 높은 편이었고, 판타지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큰 이물감 없이 그려낸 이미지 구현의 질, 즉 ‘화면의 때깔’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인물들이 방대하게 많아지고, 서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구가의 서>는 적절한 지점에서 터뜨려야 할 사건의 비밀들과 캐릭터들의 무게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비척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강치와 여울의 서사가 제때에 정리되지 못했고, 조관웅(이성재)의 압도적인 존재감 하에 태서(유연석)와 청조(이유비)의 이야기도 좀처럼 추동력을 얻지 못했다. 자홍명이 다시 극 안으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심해졌다. 굳이 오래 감출 필요가 없었던 비밀을 지나치게 길게 끌고 가면서 비밀을 터뜨릴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 클라이맥스에 한번에 터뜨리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구월령-서화-조관웅’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무리하게 길게 끌고 나가면서 정작 주목을 받아야 할 ‘강치-여울-태서-청조’의 구도가 무너졌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조력자로 활약하며 캐릭터의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할 이순신(유동근)을 비롯한 담평준(조성하) 그리고 사군자의 역할 또한 구월령과 서화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으면서 활약 할 공간을 잃었다.

게다가 모든 관계가 꼬여 중심을 잃으면서 원래 하려던 거대한 서사에 대한 방향성은 표류했고, 결국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시야를 좁히는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신화로 시작해 인간의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영웅담으로 이어지는 거대 서사의 구조를 예고했던 <구가의 서>는 어느 순간부터 타이밍을 조금씩 놓쳐가며 시야를 넓힐 기회도 함께 놓쳤고, 이야기를 수습하기 위해 황급히 다시 시야를 좁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시야를 급격히 좁히는 과정을 통해 그나마 가장 중요한 강치와 여울의 이야기는 19부와 20부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이와 연결되는 태서와 청조의 이야기는 그저 장식물에 불과하게 그려졌다.

길을 잃은 중반부터 <구가의 서>는 중요한 인물들이 너무 과도하게 등장했고, 프리퀄 이야기의 매력에 빠진 나머지 정작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놓쳐버렸다. 공들인 캐스팅과 힘을 준 캐릭터들은 좋았지만, 생각해 보면 제대로 된 인물들이 매 회당 5분씩만 차지해도 위의 언급된 13명의 이야기가 중심을 제대로 잡기란 힘들 수 밖에 없었다. 마무리 2회를 앞둔 <구가의 서>가 비교적 감정 몰입도가 높은 ‘구월령-서화’, ‘강치-여울’로 이어지는 멜로로 시야를 좁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드라마 전체의 구성이나 캐릭터의 몰입도를 무너뜨리지는 않는 안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드라마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에 비해 그릇을 너무 작게 만들었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2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마무리가 되든 <구가의 서>가 뛰어 넘을 수 있었던 ‘어떠한 경계’를 기어이 보지 못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듯 하다.

수다 포인트
– 이순신과 거북선이 등장했는데 전쟁 안하는 사극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 강치는 사군자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태서는 친구라는 이유로 과제 스킵?!
- 인물이 많으니 5분씩만 나와도 드라마가 미어터질 지경. 이런걸 과유불급이라고 하나요.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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