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뭐 봤어?]〈구가의 서〉, 멜로로 무너진 이야기의 균형
방송 화면" />MBC <구가의 서> 방송 화면

MBC 월화특별기획 <구가의 서> 6월 3,4일 17,18회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조관웅(이성재) 측의 사람에게 납치된 여울(배수지)은 갑자기 나타난 구월령(최진혁)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하지만, 그로부터 도망친다. 여울을 찾은 강치(이승기)는 아버지인 월령과 대적하고, 월령은 여울을 향한 강치의 마음에 충격을 받고 사라진다. 강치와 여울 그리고 곤(성준)은 궁본 상단의 속셈을 알기 위해 천수련(정혜영)이 연회를 베푸는 동안 백년객관에 잠입해 들어가고, 강치는 도망치던 중 자홍명(윤세아)과 마주친다. 첩보를 통해 모은 지도를 잃어버린 자홍명은 조관웅에게 강치를 잡아달라 부탁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리뷰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급작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들이 해결되지 못한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진 방송이었다. 지난 2~3주간의 방송이 갑자기 등장한 인물들의 역사와 현재를 풀어내느라 지나치게 주인공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구가의 서>는 이번에는 반대로 강치(이승기)와 여울(배수지)의 멜로 라인에 속도를 내며 안목을 좁히느라 주변 인물들을 순식간에 불필요한 들러리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보다 강치와 여울의 멜로를 살리느라 그나마 위태롭게라도 살아있던 주변 인물들과 주인공 간의 이야기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한참 멜로에 물이 오른 강치와 여울을 제외하자면, 엉뚱하게도 모든 사람들의 사건과 정황은 이미 ‘임진왜란’의 서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방향성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이순신(유동근)은 물론 여울의 아버지인 담평준(조성하)을 비롯 사군자는 다가오는 임진왜란에 대한 위기감과 대책을 고심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쁜 상황이며 심지어 이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조관웅(이성재)과 자홍명(윤세아)까지도 이 사건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치와 여울은 그 동안 밀려있는 과거와 멜로 관계를 정리하느라 더 바쁘다. 더 큰 문제는 그 와중에 이순신(유동근), 청조(이유비), 태서(유연석) 등의 인물이 급격하게 소외되었다는 사실이다. 태서나 청조는 주인공과의 팽팽한 삼각관계 조차 형성할 수 없을 만큼 캐릭터 존재감을 잃은 상황이고 이순신 역시 멜로가 부각된 이번 방송에서 그 존재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인물들과 주인공들간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맞이해야 할 지금까지도 요원하게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점은 캐릭터 간의 균형뿐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에 있다. 극의 후반부는 긴장감이 극대화 되어야 한다. 점점 안목을 넓히며 거시적인 관점의 서사로 나아가 남아있던 갈등을 폭발시킬 준비를 해야 할 지금 시점에 <구가의 서>는 엉뚱하게도 미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며 극의 긴장감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쯤 <구가의 서>가 긴장감을 높이며 가장 집중해야 할 이야기는 강치의 여울과의 짙어지는 멜로가 아니라 강치를 둘러싼 사람들의 강치에 대한 깊은 신뢰이며, 이를 통해 극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꼭 전쟁이라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지금 <구가의 서>가 해야 할 일은 거시적 관점으로 ‘안목을 넓히는 것’이지 강치와 여울의 멜로에 많은 시간을 써 가며 미시적인 이야기들을 해결하느라 헐떡거릴 시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가의 서>는 거시적인 관점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강치와 여울의 이야기로 한 없이 시야를 좁히면서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됐다. 이처럼 이야기의 안목이 넓어지지 못하고 좁아지게 된 것은 미리 깔아둔 암시와 인물들간 관계 균형의 조율 실패와, 수많은 캐릭터들을 계산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방치하면서 발생한 상황이다. 인물이 많고, 암시가 많으며, 다양한 장르를 접목할수록 이야기의 구조와 계산은 치밀해져야 하는데 <구가의 서>는 그저 인물들의 감정대로 흘러가도록 방임함으로써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며 결말로 가는 추진력을 잃도록 만들었다.

<구가의 서>가 극 초반 보여준 야심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이야기, 캐릭터를 살릴 좋은 배우들, 소위 ‘때깔’있는 화면, 여기에 신화와 설화에 역사까지 한 데 묶으며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욕심을 담기에는 24부작이라는 그릇과 치밀하지 못했던 구조가 너무 버거웠다. 아직 앞으로의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구가의 서>가 이토록 넓게 벌여 둔 이야기를 깔끔하게 수습하고 나아가기엔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왔다. <구가의 서>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기엔, 이젠 너무 늦었다는 사실이 느껴져 아쉬울 뿐이다.

수다 포인트
- 분명 이연희와 윤세아는 다른 얼굴인데, 한 번에 알아보는 조관웅의 눈썰미!
- 2단 콤보 키스씬을 보는 순간… “키스 말고 전쟁하라고…”를 외친 게 저 뿐만이 아니기를…
- 이건 뭐 인물이 너무 많아 한 회에 한 씬 들이밀기도 힘드니, 슈퍼주니어 13명이 한 곡 나눠 부르는 뭐 그런 느낌이네요.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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