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발라드 황제. 대중들이 가수 신승훈을 부를 때 절대 빼놓지 않는 수식어다. 신승훈은 1990년 데뷔부터 30년 동안 음악만으로 외길 인생을 살아오며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싱어송 라이터로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신승훈=발라드'로 기억하지만, 그는 발라드라는 한 장르만 갇혀있지 않고 R&B, 재즈, 맘보, 디스코, 펑키,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내놓았다. 신승훈이 발라드 황제가 된 건 그가 부르는 발라드는 대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혜로우면서 슬픔이 있고, 마음에 돌을 던지듯 작은 울림을 주는 맑음이 신승훈을 황제로 만들었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아이 빌리브(I believe)' '날 울리지 마' '보이지 않는 사랑'등 수많은 명곡, 7연속 밀리언셀러, 한국 가요 음반 역사상 최대 누적판매량 1700만 장 기록, 1990년 최다 1위 등 기록을 세우며 대중음악의 레전드가 된 신승훈. 그가 데뷔 30주년 스페셜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My Personas)'을 통해 자신의 분신 같은 음악을 내놓는다. 신승훈이 가장 신승훈스럽게 만들고 부른 노래로만 채워졌다. 8일 오후 6시 발매되는 앨범에는 더블 타이틀곡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를 비롯한 8곡이 담겼다.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신승훈의 발라드를 5분으로 압축하여 표현한 노래고 '그러자 우리'는 먹먹한 감정을 담백하게 남아낸 발라드다. 앨범 발매 하루 전 신승훈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해 30년 활동과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30년 활동에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다.
신승훈 :
올해가 데뷔 30주년이라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직접 만나서 청음회를 하면서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화상 인터뷰를 하게 됐다. 화상 인터뷰가 낯설긴 하지만 유튜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다. 내가 곡을 쓰는 공간에서 하는 인터뷰라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웃음)

10.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신승훈 :
30주년이라서 지난 시간을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 시간을 열심히 할 거라는 말보다는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하하. 데뷔 10주년 때 가수 활동에 반환점을 돈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고 20주년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신승훈에게 20년만 보나? 나는 평생 음악을 할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30년이 되니까 이제는 반환점을 돈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갓 데뷔를 한 신인 때 한 획을 긋기보다는 점을 찍는 가수가 돼 하나의 선으로 보이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30년 동안 점을 찍고 보니 이제 선이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획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승훈'이라는 선이 가요계에 보이는 것 같다.

10. 반환점을 돌면서 그간 걸어온 음악의 길을 생각하니 어떤지 궁금하다.
신승훈 :
인생은 말 그대로 지나온 길이고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의미만 삼으려 한다. 지난 30년을 누렸던 영광을 기념하고 추억하고 또 하나하나 이야기에는 바쁘다.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

10. 30년 동안 수많은 명곡을 불렀다. 히트곡이 손에 꼽히지 않을 정도로 많은데, 신승훈의 시간을 대표할 수 있는 노래를 꼽아본다면?
신승훈 :
대표곡은 매 해 바뀐다. '보이지 않는 사랑' '그 후로 오랫동안' 등 내게 효자 같은 노래들이 있다. 30주년이 됐기 때문에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대표곡으로 하고 싶다. 이 곡으로 내가 시작됐지 않나. 30주년 기념 공연 타이틀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다. 나의 30주년에 의미 있는 노래일 것 같다.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10. 신승훈 하면 '발라드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영광스럽지만 족쇄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승훈 :
내가 발라드만 부른 게 아니다. 디스코도 하고 맘보도 하고 장르는 다 했는데 대중에게 있어서 신승훈은 발라드가 인상적인 것 같다. '신승훈은 발라드지', '신승훈이 발라드가 아니라 다른 장르를 하니까 어색해'라는 말도 꽤 많이 들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애증이 있는 별명이다. 이 수식어가 사랑스러운 칭호이기도 하고, '발라드 황제'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서 음악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주는 칭호도 된다.

10. '발라드 황제' 외에도 '국민 가수'라는 별명도 있다.
신승훈 :
국민 가수 타이틀은 예전에 반납했고 지금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나를 모른다. 내 데뷔곡을 '아이 빌리브'로 알고 있는 친구도 있다. (웃음)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건 아니라서 국민 가수는 아니다. 국민 가수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한 적도 없다. 그냥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분들과 함께 토닥토닥하면서 가는 게 좋다.

10. 30년을 음악만 해왔다. 가수로 작곡가로 또는 제작자로 가요계를 이끌어왔는데.
신승훈 :
가요계를 이끌어오지는 않았다. 그냥 묻어 온 게 맞는 것 같다. 가수인데 작곡가 협회도 나를 부르고 작사가 협회, 제작자 협회, 프로듀서 협회에서도 나를 부른다. 참 많은 일을 해왔다. 혜안까진 아니더라도 넓게 보는 시야를 갖게 된 것 같다.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10. 앨범명이 '내 분신 같은'이라는 뜻의 '페르소 나스'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앨범인지 간단하게 소개해준다면?
신승훈 :
봉준호 감독이 나의 페르소나는 송강호라고 했다. 나도 내 페르소나가 뭘까 생각해봤다. 그분에게 배우가 있다면 나에게는 음악이 있더라. 30년 동안 발표한 노래가 250곡이 넘는다. 노래 하나를 설명하면서 장르를 설명하고 가사를 설명하기보다는 신승훈의 명함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더블 타이틀곡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 이 두 곡은 30년 동안 해온 신승훈의 음악 중 가장 신승훈스러운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10.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5분 37초의 긴 노래다. 전주만 30초가 넘는데 특별히 길게 만든 이유가 있나?
신승훈 :
30주년을 맞은 가수가 무엇에 연연하겠는가. 요즘에는 30초 들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다음 노래로 넘어간다고 해서 전주를 짧게 만드는 게 추세라고 한다. 그에 대한 반항 심리는 아니고 이 노래는 그렇게 해야 했다. 30년 된 가수가 공격력을 갖고 노래를 만들었다기보다는 내 음악을 정리했고, 신승훈스럽게 만들었기에 듣는 분들도 그렇게 들어주셨으면 한다. 모험정신 하나도 없고 '땡스 투(thanks to)'의 느낌이다. 나를 사랑해준 여러분을 위한 노래다. 말 그대로 나의 분신이다.

10.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초기 신승훈의 노래 같은데 '늦어도 11월에는'에서는 창법의 변화도 느껴진다.
신승훈 :
'늦어도 11월에는'에서 변화를 시도한 건 맞다. 내가 악기 하나만 가지고 노래를 한 적이 없다. 이번에 처음으로 피아노 한 대로만 불렀다. 음학적 이야기인데, 피아노 소리에 내 목소리가 죽지 않으려면 폭을 넓혀서 불러야 했다. 그래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의 경우는 전형적인 신승훈 발라드다. '너 울어? 그러면 더 울려줄게' 이런 느낌이랄까.

10. 30년의 활동 중 구설수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놀랍다. 연예계 수도승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혹시 결혼에 대한 마음은 접었나?
신승훈 :
연예계 수도승, 연예계 주지스님 이런 말들이 있더라. 엣지없고 평탄하다는 건 인정한다. 노력한다는 말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재밌는 이슈를 만들 수 있도록 힘쓰겠다. '늦어도 11월에는'이라는 곡이 인간 신승훈에 대한 노래다. 나와 25년을 함께 한 양재선 작사가가 나에게 질문을 계속하면서 쓴 가사다. 가사 중에 '나에게 와줄 거라면 늦어도 11월엔 와달라' 는 말이 있는데, (결혼을) 아예 안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결혼을 접은 건 아니다.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가수 신승훈 / 사진제공=도로시컴퍼니
10. 비틀스의 존 레논,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신화가 됐고 폴 매카트니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레전드로 기록되고 있다. 신승훈은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신승훈 :
나도 폴 매카트니처럼 나이 들어가며 호흡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나를 잊고 지내다가도 '아 내 옆에는 신승훈이 있었어, 신승훈의 노래가 함께 했어'라고 기억되고 싶다.

10. 30년을 음악만 해왔다. 거꾸로 생각하면 음악을 할 날이 줄었다고 볼 수 있는데 세월에 대한 씁쓸함과 아쉬움도 느껴질 것 같다.
신승훈 :
콘서트에서 절대 키를 낮춰서 부르지 않는다. 원곡 그대로 부르는데 한 키나 한 키 반을 내려서 노래를 하게 된다면 그땐 정말 (음악을) 내려놔야하지 않겠나. (웃음) 앞으로 30년 해온 것 만큼 노래를 못 할 거다. 30년이 열정, 패기, 젊음의 신승훈이었다면 이제는 연륜과 스토리다. 신승훈이 세상의 스토리를 툭 던졌을 때 세월의 음악이 나오길 바란다. 지금까지 쌓은 연륜과 노하우로 세월을 덮어보겠다.

10. 최고의 기록을 세웠고, 영광스러운 수식어도 가지고 있다. 목표가 있다면?
신승훈 :
비틀스 '렛 잇 비(Let It Be)' 같은 노래를 만드는 게 목표다. 화려하지 않은데 먹먹한 감성이 오는 무게감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

10. 30년간 최정상 발라드 가수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신승훈 :
내 힘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힘이 떨어졌을 때 팬들이 있었고 대중이 있었다. '신승훈 노래 좋다' 혹은 '슬픈 노래 싫은데 신승훈 노래는 좋네' 이런 평가가 나의 힘이 됐다. 하나의 점을 찍을 때 힘든 게 툭툭 왔다. 그럴 때 마다 팬들의 사랑, 내 음악에 대한 기다림과 기대들이 원동력이 됐다.

10. 팬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신승훈 :
나의 30년은 자축할 것이 아니다. 다 팬 여러분이 만들어준 거다. 내 음악을 들어주고, 콘서트에 와서 즐겨주고 나 밖에 없다는 사랑과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했다. 서로의 마음에 케이크 하나씩 놓고 촛불을 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30주년 공연에서 웃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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