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10대 때 듣던 친구들은 이미 30대가 됐고 20대 때 듣던 친구들은 40대가 됐습니다.” 매일 저녁 여섯 시,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그 목소리로 DJ 배철수가 말했다. MBC 라디오 (이하 )가 오는 3월 19일 방송 20주년을 맞이한다. 방송 환경과 음악의 트렌드가 바뀌어도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팝 음악을 전해 온 20년의 세월을 기념하기 위한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 발매와 (이하 < Legend >) 출간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가 8일 오후 여의도 MBC 방송센터에서 열렸다.

배철수는 “사실 ‘레전드’라는 책 제목이 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인간 배철수나 DJ 배철수는 결코 전설이 될 수 없고 앞으로도 갈 길이 먼데, 다만 여기 수록된 백 장의 음반은 세계 음악계에서 전설이라 불릴 만하고 대한민국 방송 환경에서 가 처음 출발한 색깔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20년 동안 온 것은 우리 방송사의 전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력하게 반대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으로 입을 열었다. 의 배순탁 작가와 공동집필한 < Legend >에서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에 대해 “우리가 어렵고 힘들었을 때 마이클의 음악을 듣고 보면서 위로를 받았는데 정작 그가 힘들 땐 아무도 곁에 없었다. 난 그래서 너무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하는 건 절대 반댈세”, 레드 제플린의 < Led Zeppelin IV >에 대해서는 “‘Stairway to Heaven’만 찾지 마시고 이 앨범의 다른 곡도 꼭 한번 방문해 주시길. 제발…” 등 특유의 말투로 각 앨범에 대한 코멘터리를 남긴 배철수는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겠다. 그러나 방송을 듣다가 내가 허튼 소리라도 한다면 다음 날 바로 기사에 내 달라”는 말로 기자간담회를 마쳤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20돌을 축하한다. 하지만 8,90년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팝 음악을 들었던 데 비해 요즘에는 가요를 훨씬 많이 듣고 팝 음악 전문 프로그램도 만 남았다. 이런 환경적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배철수 :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젊은 세대가 팝을 많이 듣지 않는다는 건 우리 가요를 많이 듣는다는 면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웃기지만 80년대 조용필 선배를 비롯해 ‘위대한 밴드’ 송골매 같은 이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금 대세가 가요로 기운 거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친구들도 다 팝을 듣고 자라 어른이 돼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낸 거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로 열린 창을 닫고 세계 음악계의 흐름에서 뒤처진다면 우리 음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년 동안 방송하면서 ‘이런 미 제국주의자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게 뭐 그리 잘난 일이라고 자랑스러워하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지만 나는 가 대한민국 가요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팝 뿐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 음악 등도 더 소개해야 하는데 잘 안 하는 것 같다. 우리 프로에서도 가끔 했지만 팝만 소개하기에도 힘에 부쳤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음악 뿐 아니라 방송환경적인 변화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배철수 : 내가 처음 방송할 때는 신청곡을 엽서에 써서 방송사에 1주일 전에 도착하게 보내달라는 말을 계속 해야 했다. 엽서가 와서 읽어보고 선곡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녹음도 릴 테이프를 잘라서 붙이는 식으로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완벽한 디지털 환경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방송 중에 잘못한 말을 바로바로 지적하는 분도 많아졌지만 (웃음) 청취자와 DJ가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하는 매체가 되었다는 게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자 기회인 것 같다.

가 직배사들이 추천한 레이블이나 타이틀곡을 중심으로 트는 등 히트곡 위주의 선곡 때문에 음반 전체를 소개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배철수 : 20년 동안 한 번도 음반회사 친구들이 동그라미 쳐준 음악을 튼 적은 없다. 음반회사 레이블을 보고 튼 적도 없다. 내가 들어보고 좋으면 트는 거고 아니면 틀지 않는다. 왜 히트곡만 트냐는 불만을 토로하는 청취자들도 있지만 그러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나는 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게 대중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음반에서 1,3,5번 트랙이 히트했는데 굳이 B면 6번 곡을 신청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집에서 혼자 들으면 된다. 이건 전국으로 나가는 방송이고 대중 매체는 대중의 기호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 선택에 대해 그렇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밖에도 선곡에 있어 다른 기준이 있다면.
배철수 : 정말 어렵다. 대중은 취향이 다양하고 음악은 주관적이다. 7,80년대 팝을 틀면 ‘지금 2010년인데 고릿적 노래를 튼다’고 하고 신곡을 틀면 ‘좀 아는 노래를 틀어라’ 라고 하니 세대별로 반응도 다르고 균형 잡기도 어렵다. 내가 50대인데 가끔 대학 동창들을 만나면 ‘네 프로 이제 못 듣겠다. 아는 노래가 있어야 듣지’ 라고 하길래 ‘너네 들으라고 하는 거 아니거든?’이라고 대답했다. (웃음) 그러니까 6,70년대 팝 듣던 세대들은 떠난 거고 젊은 세대들은 왜 아직도 비틀즈, 레드 제플린 같은 걸 틀고 있냐고 하는 거다. 그래서 보통 방송 시작하는 여섯 시부터 한 시간 정도는 7~90년대 흘러간 팝을 틀되 ‘매일 듣는 사람도 지겹지 않게. 어쩌다 들은 사람도 낯설지 않게’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그리고 7시 이후에는 2000년대 이후 최신 팝송들을 내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전 스태프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

“365일 중 360일 정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스튜디오에 앉았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20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면서 스스로 나태해지거나 등한시한 부분은 없었는지.
배철수 : 게으름은 인간의 천성인데 나라고 늘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은 그렇게 타이트하게 살 수 없다. 대신 20년 동안 몇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일단 우리 프로그램에서 나가는 음악이 내가 모르는 상태인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그 날 방송되는 음악을 내가 다 알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생방송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꼭 스튜디오에 들어가 음악을 들어본다. 가끔 에서 두 곡을 잇따라 내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단 한 번도 아무렇게나 붙여서 내보낸 적은 없다. 템포나 리듬을 다 들어보고 비슷한 분위기의 두 곡을 묶어서 튼다. 혹시 가 첫 곡이 시작돼서 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물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면 그런 이유일 거다. 그리고 듣는 사람들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 전에는 기분 나쁜 사람과 말도 하지 않고, 기분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점점 폐쇄적이 되고 교우관계도 축소됐지만 1년 365일 중 360일 정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스튜디오에 앉았다.

에서는 에릭 클랩튼, 시카고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인터뷰를 한 적도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배철수 : 사실 내가 20년 전 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냥 음악 하다가 방송을 하게 된 30대였다. 그냥 좀 찌질했던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웃기지만 지난 20년 동안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각 분야의 대가들과 바로 마주앉아 그 양반들의 삶의 철학이나 자세, 성장해온 과정들을 듣고 느낀 게 진짜 많았다. 하지만 인터뷰라는 건 서로 일종의 기 싸움도 있어야 하는 거니까 아무리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뮤지션이라도 “훌륭하십니다”라고 우러러 보기보다는 도전적인 질문을 많이 했다. 하지만 딥 퍼플의 존 로드나 이언 길런 런, 블랙 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 같은 뮤지션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신처럼 생각했던 분들이라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 90도로 인사를 드리곤 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인터뷰하고 돌아간 뒤에 새해 카드도 보내왔고, 리키 마틴 같은 경우 네 번 정도 만났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터 굉장히 반가워하며 “마이 프렌드”라며 허그를 하는데 사실 남자들과 허그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웃음) 지난 번 서태지 씨가 나왔을 때도 허그를 하려고 해서 하지 말자고 했는데도 꼭 하고 가겠다고 하던데. (웃음) 어쨌든 어떤 사람이 오든 아티스트로 대하고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다 기분 좋게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다른 장르의 음악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은 없나.
배철수 : 한 10년 전부터 “너 언제까지 그렇게 젊은 친구들이랑 팝송 들으면서 지낼래? 너도 나이가 들었는데 주부 대상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겨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사람 일이 어찌될지 모르니까 내 생각도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대로가 좋다.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게 좋은데, 내가 철이 없어 그런지 또래보다는 2,30대와 얘기하는 게 훨씬 즐겁다. 가수는 노래를 잘 발표해야 하는데 데뷔곡이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이기 때문에 철없이 사는 거 같다. (웃음)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특히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선 진행자가 철들면 재미없을 거 같다.

“방송을 오래 하느냐는 청취자들이 결정하는 거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배철수 “딴따라는 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한국 음악에서의 고질적인 병폐인 표절 문제에 대해 지난 해 방송에서 우회적으로 지적했던 적이 있다. 좀 더 해 줄 얘기가 있다면.
배철수 : 나도 예전에 음악을 할 때 곡을 만들어서 멤버들에게 들려줬더니 무슨 곡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냥 찢은 노래가 많다. 사실 판정을 내리기는 너무 애매한 게 표절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음악이 없고 음 몇 개 섞어서 노래를 만드는데 어려서부터 음악을 계속 듣다 보면 잠재 의식 속에 들어와 있던 멜로디가 자기의 곡에 섞일 수가 있다. 그래서 사실 표절은 만든 인간이 제일 잘 안다. 의도를 가지고 곡을 베꼈을 수도 있고, 만들고 보니 어떤 곡과 좀 비슷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 양심의 문제인데, 그게 표절이다 아니다 라고 판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겠나. 하지만 지금 내가 음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표절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만한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20년을 왔다. 앞으로 를 얼마나 더 하게 될 것 같나.
배철수 : 가끔 받는 질문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실 방송을 오래 하느냐 빨리 그만두느냐는 방송사 사장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 고위층에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방송사 국장이나 PD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청취자들이 결정하는 거다. 청취자들이 내 방송을 계속 듣기를 원하시면 계속 할 거고 사람들이 더 찾지 않으면 그만둬야지. 그렇잖아도 며칠 전에 의 정홍대 PD와 얘기하길, 20년을 조용히 지나가려다가 일이 점점 커지니까 ‘야, 이거 이쯤해서 은퇴해줘야 진짜 멋있는데!’라는 농담도 했다. (웃음) 주변에서는 듣기 좋으라고 10년은 더 해서 30년 채우라는 말도 하지만 10년은 진짜 길다. 5년도 길고. 방송은 6개월 마다 개편을 하니까 그걸 한 번씩 넘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방송 10년을 넘긴 뒤로는 개편 때마다 “여러분하고 또 6개월 동안 즐겁게 방송해보죠” 라고 인사를 한다. 앞으로 6개월씩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고, 이렇게 말하면 잔칫날에 상 뒤집어엎는 얘기 같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지금 그만둬도 호상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정말로 언제라도 내가 방송하는 것이 나한테 재미가 없고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이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할 수밖에 없는 거라 주위 사람들 몇 명에게 얘기해 놓았다. 내가 방송에서 헛소리라도 좀 하는 것 같고 ‘이 아저씨 이제 안 되겠네’ 라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바로 얘기해 달라고. 그 때가 내가 방송을 그만둘 때일 것 같다. 오늘 오신 기자 분들도 혹시 방송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들면 다음 날 기사에 바로 써주시길 바란다.

사진제공. MBC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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