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영화人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
영화계 대표 주당…술로 '부국제' 성공 신화?
2019년 1회 강릉국제영화제 개최
"뚜렷한 정체성 가진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전 시킬 것"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사진=텐아시아DB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사진=텐아시아DB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중에 전반기 30년은 공직 생활, 후반기 30년은 영화와 함께 했습니다. 영화는 남은 인생에서 제게 반려(伴侶)라고 할 수 있죠."

한국을 넘어 전세계 영화인들의 마음을 훔친 영화계 살아있는 역사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대학때까지 영화 한 편 보지 않았다. 문화공보부에 들어가서야 영화를 접했고, 영화진흥공사로 가면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전세계적인 영화 축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었고,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야 '영화'를 깊이 사랑하게 됐다.

과거 김동호 이사장에겐 '술'이 인생의 동반자나 다름 없었다. 소문난 주당이었다. 남양주 종합촬영소를 만들 때 지역 주민들과 소주 100잔을 마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 때 언론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술로 성공 시켰다' '세계영화제를 술로 제패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 김동호 이사장은 일흔에 술을 끊고, 지금은 오롯이 영화와 함께 걷고 있다.

김동호 이사장은 1960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 7급 공무원 시험을 통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임관해 문화국장, 보도국장, 공보국장, 국제교류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부임 했다. 이어 1992년 예술의 전당 초대 사장, 1993년 문화부 차관을 겸임 했고, 같은 해에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일했다.

이후 1995년 공직에서 물러난 김동호 이사장은 이용관 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의 제안을 받아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직을 맡게 됐다.

2000년대 초반 1000만 관객 시대가 열리고, 한국영화계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에 발맞춰 부산국제영화제도 성장을 거듭했다. 김동호 이사장은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영화'와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헌신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도쿄, 홍콩국제영화제와 더불어 아시아 최대 규모 영화제로서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TEN피플] '한국 영화제의 아버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관객은 영화제의 존재 이유"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으로 이끈 김동호 이사장은 자신이 태어난 강원도로 무대를 옮겼다. 2019년 8월 23일, 김동호 이사장은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으로 임명 됐다. 같은해 11월 8일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개막식 레드카펫에는 자문위원장 안성기를 비롯해 배우 김래원, 나문희, 김수안, 고보결, 권율, 문소리, 박명훈, 예지원 등이 등장했다.

7일간 32개국 73편의 초청작이 상영 됐고, 좌석점유율은 84%를 기록했다. 총 2만 3천여명이 관람해 14일 폐막 했다. 당시 부산영화제만큼의 화제성은 없었지만, 많은 배우들이 뜻을 모아준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당시 김동호 이사장은 "강릉시의 전폭적인 지원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 강릉이 세계적인 영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2회째를 맞이한 강릉국제영화제에도 제동이 걸렸다. 개막식 대신 약식으로 개막작 상영회가 열렸고 레드카펫, 포토월은 진행하지 않았다. 영화제는 상영작을 150편에서 25편으로 줄였고, 열흘에서 사흘로 단축 돼 조용히 폐막했다.

그리고 1년을 기다렸다. 시작부터 제동이 걸렸지만, 김동호 이사장을 필두로 집행부는 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더 깊이 연구하고 갈고 닦고 준비했다. 그만큼 규모가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가 오는 22일 개막한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배우 이정재, 이유미를 비롯해 정우성, 조인성, 강수연 등 쟁쟁한 배우들이 개막식 행사에 참여한다.

김동호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대에 많은 영화제들이 여러 형태로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만나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오프라인으로 영화를 상영하되, 방역지침에 따라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영화제를 개최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1937년생, 올해 85세인 김동호 이사장의 목소리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침체되는 영화계와 영화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는 영화인, 관객들을 그냥 넋놓고 바라볼 수 만은 없었던 그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펼쳐지는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는 개막작 '스트로베리 맨션'(미국. 앨버트 버니, 켄터커 오들리 감독)을 비롯해 42개국 116편이 상영된다. 상영관은 CGV강릉,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대도호부 관아 관아극장, 작은공연장 등 4곳이며, 강릉아트센터, 고래책방, 구슬샘 문화창고, 명주예술마당,봉봉방앗간, 임당생활문화센터, 중앙동 살맛터, 지앤지오 말글터 등에서 행사를 개최한다.

김동호 이사장은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점을 설명했다. 그는 "시내 중심가를 비롯해 문화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특히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책방이나 문화공간에서 문인들이 영화를 보고 관객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이 준비 돼 있다. 이 계절 가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영화제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개막식에는 톱 배우들을 비롯해 전세계 영화제 수장, 감독, 부산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굵직한 영화제 위원장들이 대거 참석한다.

"영화제는 수준 높은 영화와 관객, 게스트들이 있어서 존재하고 지속 발전 됩니다. 특히 영화제의 뚜렷한 색깔과 정체성이 있어야 하죠. 강릉국제영화제는 문학을 중점으로, 전세계 영화제 수장들이 강릉에 와서 영화의 과거와 미래를 토론하는 축제로 특화 시킬 계획입니다."

김동호 이사장은 명실상부 한국영화계의 기둥이다. 반평생 넘게 '영화'에 애정을 쏟아 붓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의 저력은 이제 강릉국제영화제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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