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사진=네이버 나우 캡처
봉준호 감독./ 사진=네이버 나우 캡처
'명장' 봉준호 감독이 달변가 다운 입담으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빛냈다.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스페셜 대담이 펼쳐졌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오늘 자리는 제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궁금한 게 많다. 직업적인 비밀을 파내고 싶어서 많은 욕심을 가지고 질문 하겠다.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지리라 예상된다. 관객들이 질문할 기회가 있을 지 보장 못하겟다. 제가 미친듯이 하겠다"라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깊은 밑바닥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라고 시작부터 유쾌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자동차 신 촬영을 궁금해 했다. 그는 "감독 입장에서 자동차 신에 대한 부담이 있다. 관객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불편한 게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촬영 방법을 설명한 봉 감독은 "저같은 감독은 불가능한데 체구가 슬림하신 분들은 차에 구겨지듯 숨어서 찍기도 한다. 제가 '기생충'에서 썼던 방법은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송강호-이선균의 자동차 신도 대부분 멈춰있는 상태로 찍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봉준호 감독을 향해 자신의 스승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왜 좋냐고 물었다. 이에 봉 감독은 "작품세계 자체가 좋다. 아마 저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팬클럽 회장 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봉 감독은 "90년대 큐어(1997)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사실 제가 '살인의 추억'을 준비할 때 큐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금은 살인범이 교도소에 있지만, 당시에는 영구미제 사건으로, 범인을 몰랐다. 시나리오 쓸 때 사건과 관련 된 형사, 주민 등을 만나 인터뷰 했는데 가장 만나고 싶은 범인을 못 만났다.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큐어'를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살인마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실제 세계에서 만날 수 없었던 연쇄 살인범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빚어낸 캐릭터를 보면서 '저런 인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BIFF] "물리적으로 벗었다"…봉준호 감독, 역시 달변가 [종합]
봉 감독은 "'큐어'에 나오는 살인마가 경찰이나 일본 관료들과 하는 기막히고 이상한 대사들이 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또한 봉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홍상수 감독을 소환했다. 그는 "만약에 이자리에 홍상수 감독님이 계셨다면 에릭 로메르 감독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본인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 오늘 상영했던 '우연과 상상'을 보면서 에릭 로메르 감독의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제게 실제 스승이지만 에릭 로메르 감독은 가공의 스승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감독, 에릭 로메르는 흉내내고 싶은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홍상수 감독님도 너무 좋아한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를 보면서 현대의 거장이라고 느꼈다"라고 했다.

봉준호 감독이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며 계속해서 궁금해 하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점점 제가 옷을 한장한장 벗는 느낌"이라며 쑥쓰러워 햇다. 그러자 봉준호 감독은 "저는 물리적으로도 벗었다. 부산날씨가 은근히 덥다"며 외투를 벗었다는 것을 강조해 웃음을 자아냈다.

아울러 봉준호 감독은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오디션장에서 시나리오 중 어느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해보라고 부탁 하는 것은 저 부터도 불편하고 민망하다. 정말 싫다"라며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한시간 정도 얘기 해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연기적인 부분은 배우가 했던 단편영화나 연극같은 공연 보면 된다. 그런 방식으로 캐스팅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당시 박명훈 배우도 제가 좋아했던 독립영화를 보고 캐스팅 했다"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은 캐스팅과 관련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연기 잘하는 배우를 모셔 오려고 애쓴다. 연기 잘하는게 최고다"라며 "그러나 연기 잘하는 개념이 무엇인지 수십 수백가지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제 자신에게 모순이 있다. 제가 상상한, 제가 구상한 것이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걸 갑자기 보여줘서 저를 놀래켰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전체적으로 돌이켜 보면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했다.

대담 말미 봉준호 감독은 "저는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다. 영화 만드는 모든 과정이 불안감의 표현이다. 제가 불안감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확신의 감독이다. 영화에 대한 철학이 바위 덩어리 같다. 반면 저는 어디로 어떻게 달아날 것인가, 여러가지 회피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과정에서 만든 영화인데 좋다, 재밌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독창적이다 라고 말씀 해주시더라. 풍부한 해석에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부산=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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