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 재난+코미디 장르 '싱크홀' 11일 개봉
데뷔 33년차 차승원, 1988년 모델라인 1기로 데뷔
데뷔 초반 '외모'에 가린 연기력
2000년대 초반 코미디 영화로 연타석 홈런
'독전' '낙원의 밤' 등에서 빌런으로 이미지 변신
배우 차승원./ 사진=영화 '싱크홀', '신라의 달밤', '독전', '낙원의 밤' 스틸컷.
배우 차승원./ 사진=영화 '싱크홀', '신라의 달밤', '독전', '낙원의 밤' 스틸컷.
≪노규민의 영화인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수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 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188cm 큰 키에, 쭉쭉 뻗은 팔과 다리. 어떤 옷을 입어도 핏이 사는 남자. 짙은 눈썹, 오뚝한 코, 날렵한 턱선, 까무잡잡한 피부톤까지 빚어 놓은 듯한 얼굴. 1970년생, 52세 나이를 믿기 힘들 만큼 동안 이미지. 그보다 놀라운 것은 늘 한결같아 보이는데, 데뷔 33년 차라는 사실. 영화 '싱크홀'로 여름 극장가 흥행 경쟁에 뛰어든 배우 차승원이다.

코로나 4차 대유행 속에 우려를 딛고 개봉한 한국영화 '모가디슈'가 흥행에 성공하며 200만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싱크홀'이 그 기세를 이어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1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싱크홀'은 개봉을 하루 앞둔 이 날 예매율 38%, 예매 관객 수 5만 3307명을 기록하며 흥행을 예고했다.

이런 '싱크홀'의 최전방엔 차승원이 있다. 11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이 500m 지하로 추락하는 재난을 그린 영화 '싱크홀'에서 '프로참견러' 만수로 열연하며 김성균, 이광수, 김혜준 등 후배 배우들을 이끈다. 특히 이 영화는 재난에 코미디를 뿌린 복합 장르의 오락영화로, 연기 스펙트럼 넓은 차승원의 활약에 기대가 모아진다.

'외모' 만큼은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 차승원이지만, 사실 그게 문제였다. 외모에 가려 오랜 시간 동안 '연기력'과 관련해 편견에 휩싸여 있었다. 애초 모델로 데뷔했고, 수십 년간 큰 변화 없는 비주얼 때문에 "차승원이 연기를 잘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차승원은 꽤 슬기롭게 배우 생활에 임했다. 1997년 영화 '홀레데이 인 서울'을 통해 연기를 시작한 그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자귀모'(1999) '세기말'(1999)까지 비중에 상관없이 열연했지만 본연의 '모델 아우라'를 완벽하게 벗어던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차승원은 1998년 SBS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의 '플러스 유' 등에서 남다른 입담을 과시하며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대중이 '차승원'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알아가기 시작할 때, 영화계는 '세기말'(1999)에서 열연한 차승원에게 주목했다. '세기말'의 경우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대중들에겐 각인 되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차승원은 '외모'가 다가 아닌 연기까지 (잘)할 줄 아는 배우임을 증명해내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듬해 차승원은 영화 '신혼여행'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공포와 코미디가 뒤섞인 이 작품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연기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기세를 몰아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2001), '광복절 특사'(2002), '선생 김봉두'(2003), '귀신이 산다'(2004) 등 코미디 영화로 연이어 흥행을 이끌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조각 같은 비주얼 따윈 과감하게 내려놓고 망가질 만큼 망가진 차승원의 대담함이 빛을 발했다. 정작 차승원은 '비주얼'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내려놨다. 그는 코미디 영화로 전성기를 누릴 당시 한 인터뷰를 통해 "처음엔 '연기 잘 하는 대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승원 나오는 영화는 돈 내고 봐도 아깝지 않다'라는 소릴 듣고 싶다"라고 말했다.
[노규민의 영화인싸] '데뷔 33년' 차승원, 루머·연기력 논란 넘어선 슬기로운 배우생활
이후 차승원은 또 한 번의 편견과 맞서게 됐다. 코미디를 너무 잘 해서, 이젠 '코미디만 잘 하는 배우'로 인식이 되기 시작한 것. 이를 깨기 위해 출연한 '혈의 누'(2005)는 결국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코미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러던 차승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철저하게 코미디를 지양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포화 속으로', '독전', '낙원의 밤' 등에 출연하며, 세월에 의해 다져진 깊이 있고 선 굵은 연기를 펼쳐 보였다. 특히 그가 빌런으로 나온 대부분의 영화가 성공하며, 비로소 관객들은 차승원이 안 웃겨도 된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다.

슬기로운 차승원은 코미디 영화 대신 예능에 출연해 대중을 웃겼다. '무한도전'에 출연해 유재석과 환상의 티키타카를 선보였고, '삼시세끼'에서 털털하고 사람냄새나는 모습, 의외의 요리 실력까지 자랑하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그리고 2009년 '힘을 내요 미스터 리'로 코미디 영화에 컴백했다. 유해진과 함께한 '이장과 군수'(2007) 이후 12년 만이었다. 이 영화는 추석 시즌에 개봉했는데도 118만 명밖에 동원하지 못했지만, 차승원은 한층 더 여유 있고 유연해진 코미디 연기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차승원은 1988년 모델라인 1기로 데뷔한 그 시절부터 33년 동안 계속해서 자신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벽을 허물어 나갔다. 차승원이 처음 모델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강동원, 김우빈, 이종석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각광 받는 요즘과는 달랐다. '남자 모델'이라해서 게이 취급을 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와 관련해 차승원도 여러 루머에 휩싸인 바 있다. 차승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에 도전했고, 예능 등을 통해 대중과 더욱 가까이서 호흡했다.
[노규민의 영화인싸] '데뷔 33년' 차승원, 루머·연기력 논란 넘어선 슬기로운 배우생활
2014년에는 양자 차노아가 대마초 흡입 및 청소년 성폭행 혐의로 피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른바 양자 관련 논란이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차승원이 3살 연상 아내의 이혼 경력과 차노아가 의붓아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 추락을 감수하고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밝혀져 화제가 됐다. 앞서 차승원은 "고등학교 때 나는 날라리였다. 아내와 교제 중에 속도위반을 했다"고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차노아 사건이 벌어지고, 차승원은 "가슴으로 낳은 아들로 생각하고 있으며, 끝까지 아들을 지킬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아들이 대형사고를 치며 논란이 발생했지만, 오히려 차승원의 진심이 대중에게 통하며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는 더욱 좋아졌다.

이처럼 배우로서, 또 인간 차승원으로서도 굴하지 않고 마이웨이한 그가 31번째로 도전한 영화 '싱크홀'은 또 남다르다. 이 영화는 재난물에 코미디가 뒤섞인 장르로, 차승원이 쌓아온 연기 스펙트럼을 제대로 펼친 작품이다. 제대로 익은 그의 연기가 재난+코미디라는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도 관전 포인트다.

'싱크홀'을 함께한 배우 이광수는 최근 '아침마당'에 출연해 차승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재석이 형한테 차승원 형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번에 직접 만나니 좋은 소문보다, 더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도 꼭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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