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따라 다니다 영화판 진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주연, 각본, 감독 '호평'
배우 류승범 주연 내세워 인지도 상승
'베테랑'으로 1000만 관객 돌파, '군함도' 실패
신작 '모가디슈' 개봉 7일 만에 100만 '흥행세'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
"니들은 왜 잘생긴 애가 감독을 하고, 못생긴 애가 배우를 하니?"

류승완-류승범 형제를 길러준 할머니가 남겼다는 이 명언 아닌 명언은 영화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일화다. 공감이 가는 건 왜일까.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동생 류승범만큼이나 많은 영화에 직접 출연했다. 일찍부터 '영화'에 빠져있던 그는 배우로, 감독으로 현장을 종횡무진 했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는 주연으로 출연해 진짜 형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보였고, '짝패'에서는 충청도 사투리로 코믹 연기까지 선보였다. 그 외에 '오아시스' '복수는 나의 것' '경주' '평양성' '마마' 등 수많은 작품에서 단역이나 조연으로 활약했다. 배우로도 끼를 분출했지만, 배우 황정민은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대지마"라고 했다.

황정민의 말 한마디가 그를 움직였을까. 연출에 집중한 류 감독은 동생 류승범을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쌓기 시작 했고, 어느덧 '최고의 액션 영화감독'을 넘어 '1000만 영화감독'을 찍고 명장 반열에 오른다. '군함도'로 폭망도 경험했지만, 실패는 약이 됐다. '모가디슈'로 다시 한번 자신의 저력을 입증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모가디슈'가 개봉 7일 만에 100만을 돌파하는 놀라운 흥행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극장 관객을 모으기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는데도, 정면돌파가 통한 것이다. 이 영화는 류 감독의 14번째 연출작이다. 2년 이상 공백 없이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었던 류 감독은 '군함도' 이후 4년이 지난 뒤에야 '모가디슈' 메가폰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류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성룡 영화 '취권'을 보고 액션 스타를 꿈꿨다. 당시만 해도 태권도만 잘하면 액션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도장엘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영화에 출연하는 것 보다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 방향을 틀었다. 점심값을 아껴 20만 원짜리 8mm 중고 비디오카메라를 구매해 습작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그 카메라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류승범 때문에 망가졌단다.

20대 초, 류 감독은 박찬욱 감독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용기 있게 말했다. 한동안 류 감독은 박 감독의 제자가 돼 늘 그를 붙어 다녔다. 박 감독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카메오로도 출연했다. 이후 류 감독은 '3인조'(박찬욱 감독), '여고괴담'(박기형 감독), '닥터K'(곽경택 감독)의 연출부원을 시작으로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1998년 '나쁜영화'(장선우 감독)의 자투리 필름과 380만 원 예산으로 단편 '패싸움'을 제작해 부산 단편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0년, '패싸움'이 발판이 된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다.

이때만 해도 류 감독은 류승범과 고구마 장사를 하거나, 지하철 보수 공사 현장 등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애초 장편으로 생각하고 각본을 썼지만, 제작 여건이 안 돼 4개의 에피소드로 조각내어 적은 비용으로 완성한 영화다. 자신이 직접 출연했고, 류승범을 이 작품으로 데뷔시켰다. 결국 류 감독 나름의 궁여지책이 빛을 발했다. 제작비 6500만 원을 들인 독립영화였는데, 전국 관객 8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력'도 기대할만한 연출자임을 각인시켰다.
[노규민의 영화인싸] 4번타자 류승완, '군함도' 폭망 딛고 '모가디슈'로 홈런 칠까
이후 상업영화 데뷔작 '피도 눈물도 없이'(2002)부터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주먹이 운다'(2005), '짝패'(2006)까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류 감독 영화의 액션은 시원시원 타격감이 남달랐고, 웃음과 감동이 적당히 버무려져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배우로 성공한 '류승범 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작품 '부당거래'(2010). 류 감독은 이 영화로 272만 명을 동원, '류승완 필모중 최고 작품'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이어 '베를린'(2013)으로 흥행 2연타를 쳤다. '부당거래' 이후 류 감독에겐 거대 제작비가 붙기 시작했고, 당시 100억 원이 넘는 돈으로 '베를린'을 만들어 716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섰다.

'류승완의 페르소나는 류승범'이란 말은 어느덧 지워지기 시작했다. 전도연부터 최민식, 황정민 등 충무로 최고 배우들로 영화를 작업한 그는 감독으로서 높은 레벨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베테랑'으로 홈런을 쳤다.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등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워 자신의 최고 흥행작인 '베를린'을 뛰어넘었다. 최종 1341만 명을 동원했다. 많은 제작비를 들여 해외로케까지 소화한 '베를린'과는 달리, 최대한 힘을 빼고 초창기 류승완 스타일의 장점을 살린 영화라는 호평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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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만 칠 수 있을까. 류 감독은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다시 한번 초호화 캐스팅을 완성하고, 손익분기점 800만을 이끌어야 하는 초특급 블록버스터 영화 '군함도'를 내놓았지만 '베테랑'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했다. '군함도'는 역사 왜곡,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휩싸였고, 지나친 신파 탓에 스토리도 낙제점을 받았다.

류 감독 영화에는 늘 정두홍 무술 감독이 함께했다. 역동적인 액션을 잘 찍어 '충무로의 액션 키드'로 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류 감독은 시원시원한 액션 영화에 사회를 비판하는 문제를 잘 녹여내기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고향인 온양을 모델로 한 지방 소도시가 서울의 자본에 의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그린 '짝패'나, 재벌들의 인간답지 않은 충격적인 행태를 담은 '베테랑' 등이 특히 그렇다.

류 감독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동생 배우 시킨 것과 결혼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화제작자인 아내 강혜정과 외유내강이라는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다. '짝패' 이후 자신이 연출한 영화 모두를 제작했고, '해결사' '여교사' '사바하' '엑시트' 등을 제작해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 인정받았다.

야구팀으로 치자면 류 감독은 중심타선에 서 있다. '군함도' 이후를 제외하고는 큰 공백 없이 꾸준하게 작품을 내놓았고, 흥행 면에서 안타 내지는 홈런을 쳤다. 타율이 좋은 편이다. 류 감독은 '군함도'의 실패를 거울삼아, '모가디슈' 때는 실책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개봉 전 언론 시사회에서도 절실함을 내비쳤다.

'모가디슈'의 총제작비는 255억 원이다. 그러나 극장들이 극심한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계를 위해 총제작비의 50%가 회수될 때까지 매출 전액을 배급사에 지원하기로 했고, '모가디슈'의 손익분기점은 300만 명 수준으로 낮아졌다. 어찌 됐든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류 감독은 4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모가디슈'로 다시 한번 흥행 홈런을 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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