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개봉', 스크린 확보 경쟁의 영향
2000년대 주5일제 시행되며 土→水까지 앞당겨져
'변칙 개봉' 편법도 발생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명량'은 수요일에 개봉했다.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명량'은 수요일에 개봉했다.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김지원의 인서트≫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목요일 오후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스크린 확보에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

영화 '명량', '극한직업', '신과함께-죄와벌', '국제시장', '어벤져스: 엔드게임', 역대 박스오피스 5위 오른 명작들이다.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수요일에 개봉했다는 점.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없었던 2019년 흥행작 5위까지를 살펴보더라도 '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앞서 언급했듯 수요일에 개봉했고 '겨울왕국2', '알라딘', '기생충'은 목요일에 관객을 만났다. '평일의 마법'에 빠진듯 영화는 왜 대부분 수요일이나 목요일부터 극장에 걸리는 것일까.

2000년대 이전에는 토요일 개봉이 관례였다. 통상적으로 주말에 관객이 몰리기 때문이다. 1999년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주연의 '쉬리'는 토요일에 개봉했다.

'토요일 개봉' 관례는 우연한 계기로 사라진다. 2000년대 시작된 주5일제가 영화판을 바꿔놓은 것. 변화는 외화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 금요일 개봉은 2001년 '진주만'과 '툼 레이더'가 처음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주5일제가 일반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화인 이 작품들이 '금요일 개봉'의 시작을 끊었다.

주5일제가 국내에도 정착하면서 금요일에서 하루 앞당긴 목요일 개봉이 시도됐다. 금요일도 주말로 간주되면서 '주말 직전 평일'인 목요일 개봉이 시작된 것이다. 2005년 외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한국영화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등이 '목요일 개봉'의 도입 초기 작품들이다.


영화 산업이 커지고 극장 배급 체계의 변화는 개봉일을 수요일까지 앞당겼다. 중소규모 극장의 개별 배급에서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영화의 스크린 점유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 거대 멀티플렉스에 의해 배정 받는 스크린 수가 좌우되면서 개봉 첫 주에 유의미한 스코어를 내지 못하면 2주차부터는 스크린 확보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 때문에 배급사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하루라도 더 선보여 첫 주 관객을 늘리고 계속해서 스크린 확보에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수요일 개봉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수요일 개봉이 점차 일반화됐다.

2014년 1월,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영화, 공연, 관람 등에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이 시행되면서 수요일 개봉에 효과를 보려는 영화들도 늘어났다. '명량',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엑시트' 등도 문화가 있는 날에 개봉한 작품들이다.
'변칙 개봉' 논란이 있었던 영화 '부산행'. / 사진제공=NEW
'변칙 개봉' 논란이 있었던 영화 '부산행'. / 사진제공=NEW
대작들의 수요일 개봉을 피해 중소 규모 작품들은 목요일에 개봉하기도 한다. 대작들도 마케팅 전략적 이유로 목요일을 개봉일로 고르기도 한다. 국내 대작들의 경우에는 수요일 개봉 후 목요일에 관객 수가 감소했다가 주말에 다시 회복된다는 점을 감안해, 아예 목요일 개봉을 선택하기도 한다. 수요일 개봉은 입소문을 내서 주말 관객을 늘리기 위한 전략인데, 기대치 이하로 영화가 완성된 경우 일부러 입소문을 내지 않기 위해 목요일 개봉을 하기도 한다. 외화의 경우 현지 상황에 따르기도 한다. '수, 목 개봉'은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 관객들을 계속해서 불러모으기 위한 배급사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의 결과물인 셈이다.

스크린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은 꼼수 개봉이라는 새로운 풍조를 낳기도 했다. 개봉 전 주말에 유료시사회 등을 통해 관객을 더 끌어모으고 예매율도 높이는 꼼수를 쓰는 것이다. 최종 관객 수 1157만 명을 기록한 '부산행'은 2016년 7월 20일이 정식 개봉일이었으나, 전 주말인 15~17일 3일간 유료시사회를 진행했고, 이에 개봉 전부터 57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대작이 스크린을 차고 앉은 피해는 고스란히 작은 규모의 영화가 입게 된다. 대형 배급사들은 '변칙 개봉'이 시장 질서를 망가뜨린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이런 꼼수를 쓴다. 과도한 경쟁이 낳은 폐단이다.

그렇다면 수요일보다 개봉 요일이 더 앞당겨지진 않을까. 한 영화계 관계자는 "월, 화는 평균적으로 다른 요일에 비해 관객 수가 적기 때문에 '유의미한 스코어'를 내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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