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분 길이 애니보며 10분 눈물 참기 챌린지 바람
美 총기 소지 문제에 대한 경종 올려
상실의 아픔을 무채색으로 표현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김지원의 탈고리즘≫
더이상 볼 게 없다고요? 아닙니다. 당신이 알고리즘에 갇힌 것 뿐입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탈'알고리즘 할 수 있는 다양한 OTT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오스카의 수상의 영광을 누린 10분 안에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애니'


러닝타임은 12분. 짧은 영화라고 해도 출근길에 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영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쪽 볼은 눈물로 젖고 눈이 붓기 시작하죠. 노래 2~3곡 들을 시간이면 영화가 끝나지만 두시간 가까운 영화보다 더 큰 여운이 남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왜 이 작품이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았는지 알게 되는 것은 찰나의 순간입니다.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기다란 테이블 끝에서 말 한 마디 없이 식사를 하는 부부. 멀찍이 떨어져 앉은 부부는 그리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아 보입니다. 대화도 없는데 밥을 먹는 데 열중하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파스타 사이에서 미트볼을 발견하고 무엇인가 떠오른 듯 남편에게 말 한 마디 붙일 요량이었는지 고개를 듭니다. 그 순간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버립니다. 부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번에 이야기할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입니다. 1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출퇴근, 등하교 시간을 이용해 금방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눈물을 쏟고 난 뒤 부은 눈으로 출근하거나 등교할 수 있거든요. 해외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눈물 참기 챌린지'가 유행할 정도입니다. 왜냐고요? 이 영화는 자식을 잃은 가족의 모습을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씩씩하고 명랑했던 딸은 어쩌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걸까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한 딸. 학생들의 생기로 가득차야 할 학교에 울려퍼진 건 '탕탕탕', 총소리입니다. 부부의 딸은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였던 겁니다.

영화는 미국 사회에 끊이지 않는 총기 난사 사건이 가져오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영화에는 부모와 딸의 영혼이 등장하는데요, 딸과 함께할 때 이 가족의 영혼도 더할 나위 행복합니다. 부모의 영혼의 연애 중인 딸을 몰래 훔쳐보려고 하자 딸의 영혼이 손사래를 치며 둘을 돌려보내는 장면은 웃음을 줍니다. 딸이 떠나고 난 후 부모의 영혼도 생기를 잃습니다. 부부의 영혼끼리는 싸우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려 애써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부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거리를 좁혀 슬픔을 함께 이겨내고 싶은 속마음과 달리 실제로는 체념한 상태의 부부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는 것이죠.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 / 사진제공=넷플릭스
이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는 흑백이지만 아이와 관련된 사물들에는 채색이 돼 있다는 점입니다. 집 외벽에 덕지덕지 칠해져있는 하늘색 페인트는 딸과의 추억이 있는 것이고 빨랫감 속에 섞여있는 하늘색 티셔츠는 딸이 입던 겁니다. 부부의 삶에 푸른색이 돼준 아이가 떠난 후, 부부의 삶은 무채색이 된 거죠. 색의 대비가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합니다. 미국 국기 역시 채색이 돼 있는데요, 미국 정부를 향한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이같이 표현한 것 같네요.

짧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상실의 아픔과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까지 개인적, 사회적 메시지를 간결하고 깊이 있게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총기 소지가 금지된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와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상실의 아픔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이 영화는 최근 열렸던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노영란 씨가 제작을 맡기도 했습니다. 노 애니메이터는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절제하는 대신에 섬세하게 아픔을 드러내려고 했다고 하네요.

저는 '눈물 참기 챌린지'에 성공했을까요?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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