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제작한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
이준익 "영웅보다 사소한 개인 그리고 싶었다"
설경구 "대본 읽고 눈물 핑 돌아"
변요한 "영화에 스며드는 것 중요했다"
배우 설경구(왼쪽부터), 변요한, 이준익 감독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설경구(왼쪽부터), 변요한, 이준익 감독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설경구, 변요한과 이준익 감독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으는 흑백영화 '자산어보'가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설경구, 변요한은 큰 울림과 잔잔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간 정약전과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함께 만들어가며 벗이 돼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작품이자 두 번째 흑백 영화. '자산어보'의 제작보고회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25일 오후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준익 감독과 배우 설경구, 변요한이 참석했다.

이준익 감독은 "어떤 학생이 자산어보가 한국사 문제에 자주 나오는 답이라더라. '정약용이 쓰지 않은 책은?'이라는 문제에서 말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해양생물에 대해 쓴 책"이라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어 "5년 전 쯤 학문이자 농민혁명인 동학에 관심을 갖다가 왜 이름을 동학이라고 지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 앞을 보니 서학이 있었고, 서학이 무엇인가를 쫓아가다 보니 정약전이 있었다. 정약전이 갖고 있는 근대성을 영화로 담으면 재밌겠구나 싶었다"고 연출 배경을 밝혔다.

이 감독은 "사람들이 내가 역사를 잘한다고 한다. '누명'을 썼는데 잘 모르니까 영화를 찍은 것"이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잘 모르는 것을 잘 대할 때 두 가지 태도가 있다. '잘 모르니 놔둬야겠다'와 '이게 뭐지?'하다가 푹 빠지는 것이다. 나는 푹 빠져 못 나오게 된 것이다. '역덕'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설경구가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설경구가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설경구는 유배지 흑산도에서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호기심 많은 학자 정약전 역을 맡았다. 설경구는 대본을 받았을 떄를 떠올리며 "처음에는 멀리서 봤다. 그러다 보니 따지게 되더라. 두 번째 볼 때 마음을 넣어서 봤다. 눈물이 핑 돌고 여운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첫 리딩 때 감독님에게 읽으면 읽을수록 여운이 있다고 했더니 이 책의 맛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사극이 처음인 설경구는 "수염, 갓, 도포가 어울릴까 걱정했다. 거기서 믿음을 주지 못하면 신이 갈수록 더 믿음을 주지 못할 텐데 싶었다. 주변에 많이 물어봤고 주변에서 많이 용기를 줬다. 꾸준히 말씀드린 것처럼 자연이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또한 "정약전 선생이라는 이름을 제 배역으로 쓰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자산어보'이기에 정약전 외에 다른 이름으로 배역을 쓸 순 없었다. 털 끝만큼도 정약전 선생을 따라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고, 흑산도라는 섬에 들어가서 선생이 자신의 자유로운 사상을 민초들에 의해 실천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민초들에게서 오히려 가르침을 받고 자기 사상을 실천하게 된 것 같다. 그런 것처럼 저도 이 이야기에 묻혀서 가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설경구와 영화 '소원' 이후 8년 만에 만나게 된 이 감독은 "설경구 씨와는 다시 하게 된 것 자체가 내게 행복이고 행운이다. 본인이 시나리오를 달라고 하길래 '잘됐다'하고 냅다 줬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어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10년간 방을 같이 썼다. 할아버지가 선비 느낌이 있었는데 설경구 씨가 현장에서 선비 같았다. 그게 나한테는 아련했다. 정약전과 우리 할아버지와 설경구가 일치된 게 감동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배우 변요한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변요한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변요한은 바다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글 공부에 몰두하는 창대 역을 맡았다. 극 중 창대는 나라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이라 믿으며, 물고기 잡는 것보다 글공부를 더욱 중시하는 인물이다.

변요한은 "감독님과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받았고, 정약전 역이 설경구 선배님이라더라. 글도 좋았다. 그럼 가야지 않겠나"고 작품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또한 "저는 설경구 선배님처럼 대본을 보고 처음에 울진 않고 글이 너무 좋다고 느꼈는데 촬영장에서 맨날 울었다"며 웃었다.

변요한은 "감독님이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주셨는데 배경이 전라도라 사투리를 구사해야 하고 어부라서 그 시대에 맞게 고기를 낚는 법도 알아야했다. 준비하다 보니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창대의 마음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창대가 어떤 식으로 그 시대를 볼까를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경구 선배님을 비롯해 많은 배우들과 호흡하며서 모든 걸 놔버리고 그 안에 스며들었을 때 창대의 눈이 생겼다. 즐겁게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준익 감독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 감독은 정약전이라는 인물을 조명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보통 영화에서는 시대적 영웅을 그리지 않나. 저도 그랬다. 유명하진 않지만 같은 시대를 버티고 이겨낸 사소한 개인과 그 주변을 그리다보면 나와 나의 마음이 담겨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두가 윤동주를 기억하는데 그 못지않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고, 박열이 있으면 후미코가 있었고, 정약용이 있으면 정약전이 있었다. 정약전 옆에는 창대가 있다. 그렇게 아래로 가다보면 그 시대의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영화 '동주'에 이어 '자산어보' 역시 흑백으로 만들게 됐다. 이 감독은 "어렸을 때 본 서부영화는 흑백이었고, 그 잔상이 너무 강렬했다. 1800년대가 배경인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1800년대를 흑백으로 보면 어떨까 했다. '서구는 이런데 우리는 더 좋지 않나?' 호기도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한 "'동주'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분위기를 담기에 백보다는 흑이 차지하고 있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만난 새로운 세상은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백이 더 컸다"고 다른 점을 설명했다.

이 감독과 배우들의 이 영화의 주인공이 '자연'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극 중 창대가 바다를 걸어가는 장면에 대해 이 감독은 "전날 어마어마한 태풍이 몰아쳤는데 그 태풍에 파도가 남아서 밀려오더라. 콘티도 없었는데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창대가 걸어가는 걸 찍고 싶었다. 분장 수정을 하고 있는 변요한을 얼른 불렀다. 수염도 안 붙였다고 하길래 뒷모습만 찍을 테니까 빨리 오라고 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배우 설경구(왼쪽), 변요한, 이준익 감독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 설경구(왼쪽), 변요한, 이준익 감독이 25일 열린 영화 '자산어보' 온라인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변요한은 '자산어보'만의 매력에 대해 "감독님의 말씀처럼 흑백이기에 선, 면, 형태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설경구 선배님의 말처럼 허투루 연기하면 다 걸린다. 이 인물의 본질과 변요한의 본질이 충돌하더라도 우선은 가야했다. 하지만 그게 고스란히 묻어났다고 생각한다"면서 "계속 보고 싶고 또 생각나는 여운이 우리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좋은 영감과 시간을 관객들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우리 영화가 여러분에게 힐링과 편안함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자산어보'는 오는 3월 31일 개봉한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