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근 '죽밤' 통해 명품 연기
닥터 장 역 맡아 '폭소 유발'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 않았다"
40살 전후로 연기 가치관, 패턴 바꿔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의 양동근./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의 양동근./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
연기경력 33년차 배우 양동근(42)이 '폭소 유발자'로 돌아왔다.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독보적인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스크린을 '웃음'으로 꽉 채웠다. 양동근은 연신 "저는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 않았다. 감독님의 디렉션 따라 진지하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시실리2km'로 마니아층까지 형성한 신정원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감독 특유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빵빵 터지는 '병맛'이 짙은 영화다.

양동근을 비롯해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이미도 등 베테랑 연기파 배우들이 코미디, 스릴러, SF, 액션이 오묘하게 뒤섞인 이상야릇한 영화를 끌고 간다. 코미디의 중심엔 양동근이 있다. 양동근은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닥터 장 역을 맡아 소희(이정현 분)의 수상한 남편 만길(김성오 분)의 실체를 알아낸다.

"저는 진지충입니다. 웃긴 DNA가 없어요. 오히려 아내한테도 썰렁하다고 핀잔만 받습니다. 그저 대본과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했어요."

양동근은 "신 감독님이 영화의 일등공신"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그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특히 이번 영화는 감독님이 생각하는 그림이 딱 펼쳐져야 했다. 저는 그저 감독님이 생각하는 영화에서 미장센일 뿐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양동근은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툭툭 웃음을 주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호흡에 지쳐있을 때 나타난 신선한 작품"이라며 "요즘 세대 관객들은 색깔이 확실할 때 열광하지 않나. 신 감독님이 '시실리 2km'때도 이런식으로 연출했지만 그땐 좀 빨랐다고 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먹힌다. 때가 왔다"고 자신했다.

양동근은 "이번 영화처럼 글(시나리오)이 잘 써져 있을 때 제 코믹 연기가 산다. 웃기려고 작정한 글은 딱 봐도 느껴지고, 제 자신도 연기하기 힘들다"라며 "저는 애드리브 감각도 없다. 그저 대본에 충실한다"라고 겸손해 했다.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양동근./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양동근./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
"마음을 고쳐먹고 시도한 첫 작품이에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아 신기합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해주는 칭찬의 질감도 예전과 확실히 달라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언론시사회' 이후 호평 받았다. 특히 양동근의 연기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양동근은 "내 계산대로 좌지우지 된 노선이 아니라, 감독님을 믿고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했는데 반응이 새롭다. 배우인생을 새로 시작한 느낌이 들더라. 남자 배우는 40부터다"라며 웃었다.

40살을 전후로, 연기에 관한 가치관이 달라졌단다. 양동근은 "영화는 무엇인가, 배우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30대까지의 배우 생활을 돌아보면 현장을 즐기지 못 했더라.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지고 처절하게 연기했다"며 "그랬더니 늘 똑같은 연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해야할 일인데 이게 물리면 고달프지 않나. 그때 연기를 즐겨야 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또한 양동근은 "예술가로 접근하지 않기로 했다. 배우는 기술직이다. '연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산업현장에 투입됐을뿐이다. 30년 넘게 구력을 쌓은 기술직이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하면서 다른 재미를 찾아가려고 했다"면서 "혼신을 다한 연기로 만족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에너지로는 롱런을 못 하겠더라. 영화를 배우가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대신, 감독의 예술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독이 그리는 그림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제 자신을 완전히 버렸어요. 즐기려면 그 방법 뿐이었죠. 현장에서 즐겨본 적이 있나 싶어요. 그동안의 내 패턴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마침 이번 영화에선 그렇게 해도 됐어요."

양동근은 신 감독 스타일과 절묘하게 맞았다고 손뼉을 쳤다. 그는 "감독님이 현장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 갔다. 대사는 완벽하게 숙지하고, 머리는 비워놓고 갔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감독을 전적으로 믿었다. 다만 양동근은 "대사가 좀 많았다. 다들 고생스럽게 찍었는데 편집하면 아깝지 않나.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속도에 신경을 썼다. 제 대사는 특히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거기서 처지면 상당부분 편집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대사 템포를 빠르게 가져 가려고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양동근./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양동근./ 사진제공=TCO(주)더콘텐츠온
대중에겐 어느새 '믿보배'로 자리 했지만, 걸어온 33년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양동근은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우여곡절도 많았고 위기도 많았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다른걸 할 재주도, 의지도 없었다. 오래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권태도 느끼지만, 10년차, 20년차, 30년차가 될 때마다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달라지더라. 그러면서 새로운 철학을 찾게 됐다"고 했다.

'믿보배'로 인정 받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냐고 물었더니 "외모가 좀 부족한 것 같다. 그게 제일 아쉽다"고 했다. 양동근은 '다음 생에도 배우를 하겠느냐'는 질문엔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생은 믿지 않는다. 이번 생이 끝"이라고 말했다. '웃긴 DNA'가 없다던 양동근은 영화 밖에서도 연신 웃음을 안기며 33년차 배우의 여유를 과시했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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