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무환(無患) : 영화를 보면 근심이 없음을 뜻한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콜미 바이 유어 네임' '하하하' '폭풍속으로' '첫 키스만 50번째' 포스터./ 사진=네이버 무비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콜미 바이 유어 네임' '하하하' '폭풍속으로' '첫 키스만 50번째' 포스터./ 사진=네이버 무비
싱그럽고 푸르른 여름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영화 5편을 소개한다.

기쿠지로의 여름
아홉 살 소년과 52세 철부지 건달 아저씨의 엄마찾아 600km 코믹 여행기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마사오는 여름방학이 싫다. 친구들이 모두 부모님과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난 탓에 놀 사람이 없는 마사오는 집에만 있어야 한다. 먼 곳으로 돈 벌러 갔다는 엄마의 주소가 적힌 사진을 발견하고 그림일기장과 방학숙제를 가방에 넣고 무작정 찾아 나선다. 이를 안 할머니의 친구가 아이 혼자 여행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동네 건달로 지내는 야쿠자 출신 남편을 보호자로 붙여준다. 슬리퍼를 끌고 동행에 나선 이 건달 아저씨는 보호자이긴 커녕 오히려 애물단지다. 아내로부터 받은 여행경비로 경륜장에서 도박하고 유흥주점에서 이틀을 보내고, 호텔에 들러 옷과 선글라스를 마구 사고 경찰관까지 출동하는 기행을 벌이다 결국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게 된다. 운전도 못 하는 사람이 택시를 훔쳐 몰다가 차를 망가뜨리기까지 한다. 그래도 히치하이킹 끝에 마사오 엄마 집에 이르렀으나, 엄마가 새 가정을 꾸린 것을 알게된다. 영화는 이제부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나는 뚱땡이 아저씨, 문어 아저씨, 시인 아저씨 등은 모두 건달 아저씨와 함께 마사오를 즐겁게 하는 온갖 놀이를 하며 그들 역시 동심에 젖어든다. 흡사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입증하듯 말이다. 건달 아저씨는 틈을 내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요양원에 가 보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는 돌아선다. 영화 제목이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왜 기쿠지로의 여름일까. 영화 마지막에서야 소개된 건달 아저씨의 이름이 기쿠지로다. 엄마 찾는 여정에서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기쿠지로라는 뜻에서 일까. 일본의 대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기쿠지로역과 함께 메가폰도 잡았다.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음악 'summer'는 단순한 멜로디의 적절한 반복과 변형을 통해 우리의 귀와 마음에 힐링을 안겨 준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
2018년 개봉이후 아카데미 각색상을 비롯해 전세계 영화제에서 70관왕을 차지한 화제작이다. 1980년대 초반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 지방의 여름을 배경으로 23세의 미국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와 17세의 이탈리아 소년 엘리오(티모시 살레메)간의 사랑을 다룬 퀴어 영화다. 영화는 이처럼 불편한 인물 설정에도 불구하고 역겹다기 보다는 아름답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게 매력이다. 게이들간의 구석진 성욕보다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애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보집처럼 펼쳐지는 이탈리아 소도시의 여름철 전원 풍경이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올리버와 엘리오가 수프얀 스티븐스의 를 배경음악으로 자기의 이름을 서로에게 불러주며 녹음이 우거진 비탈진 산길을 지나 웅장한 폭포를 향해 뛰어 오르는 장면은 영상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타인의 눈치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사랑의 감정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공감하게 한다. 엘리오가 사람의 엉덩이를 연상케하는 복숭아에 구멍을 낸 뒤 자위하는 장면이 자극적이라면, 아들의 동성애 기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감싸주는 교수 아버지의 배려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의 가사중에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동성 연인 헤파이스티온의 이름이 나온다. 알렉산더 대왕은 헤파이스티온이 갑작스런 병으로 죽자 의사를 바로 처형하고 사흘동안 식음을 전폐했으며, 이듬해 그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생전에 서로의 이름을 바꿔서 불렀다고 한다. 영화가 히트친 이후 영화 촬영지를 따라 여행을 다니니는 ‘콜바넴 투어’가 생겼다. 물론 퀴어 영화이다 보니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아름다움을 내세워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이며 이기적인 사랑을 눈감아 줄 수 없다는 비판이다. 안티 관객들이 붙인 희화적 영화 이름은 'Call Me by My Name'(그냥 내 이름으로 불러줘).

하하하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훨씬 인정받는 홍상수 감독의 2010년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중의적이다.너털웃음소리 ‘하하하’이기도 하고 여름을 뜻하는 '夏夏夏'이기도 하다. 우연히 같은 시기에 여름철 통영을 다녀온 선후배 조문경(김상경)과 방중식(유준상)이 청계산 자락에서 만나 서로 좋았던 통영 이야기 한토막씩을 한 후 '하하하' 하면서 막걸리 한잔씩을 비우는 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남자는 모두 '찌질이' 진상들이다. 홍상수의 페르소나 김상경은 자신을 영화감독 겸 교수라고 소개하나 영화 한편 찍은 것도 없고 교수 초빙받은 적도 없다. 다 큰 어른이 돼서도 어머니(윤여정)에게 손 내밀며 살고, 어머니의 옷이 노출이 심하다고 지적했다가 회초리를 맞고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운다. 대학교수 유준상은 스튜디어스 애인 연주(예지원)와 불륜여행을 왔고, 남들과 대화하다가 툭하면 자신이 우울증이 심하다며 약을 털어 넣는다. 중식의 후배인 시인 강정호(김강우)는 자신이 불리할 때는 실존주의를 운운하며 '개똥철학'으로 갈등을 뭉개버리고, 애인인 문화 설명가 왕성옥(문소리)과 자신을 좋아하는 외국인 회사 사장 비서 노정화(김규리)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위선'과 '허세'남이다. 문경과 중식 두 사람이 회상하는 통영의 여름 스토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동일 인물들이다. 다만 두 사람만 그것을 모를 뿐이다. 감독이 짜 놓은 프레임이 신선하다. 이야기는 결국 남녀관계로 귀착된다. 서로 꼬시고, 바람피고,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맘에 드는 이성을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각자들의 셈범을 읽을 수 있다. 관객들은 그 셈법이 내 것이랑 별반 다를 게 없구나 하는데서 '하하하' 웃을 수도 있고, 얽히고설킨 구애 과정을 보면서 끈적한 '여름(夏)'이 느껴질 수도있을 것이다. 나폴리 모텔 주변, 달동네 동피랑 마을, 문화 답사 코스 세병관과 부두 일대 등 통영 구석구석의 여름이 묻어 나온다.

'폭풍속으로'+'첫 키스만 50번째'
두 영화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여름색의 영화다. <푹풍속으로>는 지금까지 아케데미 감독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인 캐서린 비글로우가 감독을, 그의 전 남편인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을 맡은 영화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일대의 바다를 배경으로 스크린 가득한 파도와 서퍼들의 현란한 서핑 모습이 청량감 만점이다. 원제 는 서핑 용어이며, 미국 LA 지역의 서퍼족 무장 은행강도를 추적하는 신참 FBI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스릴러물이 기본 구도다. 서핑과 스카이다이빙 등 익스트림 스포츠의 쾌감, 서퍼 강도 보디(패트릭 스웨이지)와 FBI 신참요원 쟈니 유타(키아누 리브스)간 의리와 우정을 느끼게 하는 케미, 남성들의 마초 기질을 남성보다 더 잘 파악한 여성 감독의 연출력 등이 관람 포인트다.

<첫 키스만 50번째>는 고등학교때부터 클럽의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선 애덤 샌들러와 의 깜찍한 아역스타 출신인 드류 배리모어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하와이 오하우섬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두 배우의 찰떡 연기가 유쾌하면서도 훈훈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자동차 사고로 기억이 하룻밤을 넘어가지 못하는 골드필드 증후군에 걸린 루시. 그녀와 사랑에 빠진 수족관 조련사 헨리. 내일이면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와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기상천외한 작업을 벌이는 순정 스토리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신에게 매일 구애하게 된 것을 알게 된 루시의 가슴 찡한 한마디. “내일도 저를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내일도 제게 말을 걸어 주세요” 아침마다 상대방을 몰라보는 사람과 같이 산다면. 결코 쉽지 않은일이지만, 매일 첫키스의 설레임과 함께 그들 사이에는 권태기라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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